
올 한해 국내 증시는 여러 글로벌 악재로 인한 '3高 현상'에 신음했다. '兆 단위' 몸값을 자랑하는 업체들이 IPO 시장을 노크했지만 '용두사미'에 그치면서 침체일로를 벗어나지 못했다. = 박기훈 기자
[프라임경제] 올 한해 국내 증시는 여러 글로벌 악재로 인한 '3高 현상'에 신음했다. '兆 단위' 몸값을 자랑하는 업체들이 IPO(기업공개) 시장을 노크했지만 '용두사미'에 그치면서 침체일로를 벗어나지 못했다. 설상가상, 내년까지 이러한 분위기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상장 철회 '러쉬'…공모 규모 지난해 比 20% 이상↓
지난 22일 코스피 시장에 입성한 바이오노트를 끝으로 올해 IPO 시장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신규 상장한 기업은 73개사(스팩·재상장 등 제외)다. 이는 지난해 94개사 대비 약 22.34% 하락한 수치다.
특히 올해는 회사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 받기 어려운 환경 속에 상장 철회가 줄줄이 이어졌다.
올해 상장을 철회한 기업은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원스토어 △태림페이퍼 △현대오일뱅크 △골프존커머스 △라이온하트스튜디오 △밀리의 서재 △제이오 △바이오인프라 △자람테크놀로지 총 12개사다. 이는 지난해 2개사(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 에스엠상선) 대비 500% 늘었다. 이밖에도 CJ올리브영, SSG닷컴 등은 상장 계획을 연기했다.
코스피 시장은 상장기업 수에서 더욱 암담했다. 지난해 코스피 시장에 입성한 기업 수는 19개사(리츠 4개사 포함)였다. 반면 올해는 63.15% 줄어든 7개사(리츠 3개사)에 불과했다.
전체 IPO 공모 규모는 약 16조1010억원이다. 지난해 기록했던 20조4500억원 대비 21.26% 하락했다. LG에너지솔루션 공모금액 12조7500억원을 제외하면 3조2510억원으로 84.10%나 빠진 액수다.
◆ 얼어붙은 투심…공모가·경쟁률 '뚝'
얼어붙은 투심과 시장의 매서운 한파는 수요 예측과 일반 청약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기업들은 공모가 할인을 단행했지만 결과는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올해 공모 결과에서 공모가 희망 밴드 최상단을 터치하거나 초과한 기업은 38개사다. 이는 지난해 77개사 대비 약 절반 수준이다. 희망 밴드 내 혹은 하단을 기록한 기업은 지난해 6개사에서 올해 7개사로 약 20% 늘었다. 특히 희망밴드에 미달한 기업은 지난해 6개사에서 올해 22개사로 약 266.66% 증가했다.
수요 예측 평균 경쟁률은 지난해 1180대 1 대비 약 29.74% 낮은 829대 1을 기록했다. 일반 청약 경쟁률은 지난해 1095대 1 보다 약 33.69% 떨어진 726대 1이다. 특히 일반 청약의 경우엔 10대 1 이하 비율이 지난해(4개사) 대비 350% 증가(18개사)했다.
특히 이러한 하락세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4분기에 더욱 심화됐다. 4분기 들어 공모밴드를 초과한 기업은 한 곳도 없었으며, 수요예측 및 청약경쟁률이 한 자릿수를 기록하는 곳들도 많았다.
다만, 수요 예측에서 최대 경쟁률 기록은 지난해를 경신한 것이 이례적이다. 올해 최대 경쟁률은 성일하이텍이 기록한 2269.7대 1이다. 이는 지난해 아스플로가 기록한 2142.7대 1을 넘어선 기록이다.
유진형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글로벌 금리 상승과 상장 시장의 지수 하락에 따라, 공모 시장에 대한 수요가 공모주 시장의 공급 감소량 이상으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고 짚었다.
◆ 장외시장, 몸값 절반 이상 '추락'
어렵사리 상장에 완주한 기업들 역시 보람을 느끼기엔 초라했다. 올해 상장 첫날 '따상(시초가가 공모가 대비 두 배로 형성된 뒤 상한가로 마감)'에 성공한 기업은 케이옥션, 유일로보틱스, 포바이포 등 3곳에 불과하다. '따상'은 '따따상'도 기록하며 흥행했던 지난해 IPO 시장과는 천지차이다.
공모주의 수익률도 저조했다. 올해 상장한 73개사 중 지난 22일 종가 기준 공모가를 웃돈 기업은 24개사로 약 3분의 1 수준이다. 올해 무상증자를 진행한 8개 종목을 제외해도 반도 안 되는 수치다.
이같은 IPO 시장의 한파는 장외시장으로도 이어지며 비상장 기업들의 가치 하락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른바 예비 상장 종목들로 꼽히는 기업들, 그중에서도 대기업 못지않게 네임 밸류가 높은 기업들의 가치가 폭락하는 경우도 나왔다.
지난 23일 기준 12월 K-OTC 시장의 시가총액은 약 17조8481억원으로 집계됐다. K-OTC는 금융투자협회에서 운영하는 제도권 비상장 주식 거래 시장이다. 해당 수치는 올해 최고 수치였던 지난 2월의 약 34조4214억원보다 48.14% 줄었다.
같은날 비상장 주식 거래소인 증권플러스에 따르면, 비상장의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들의 주가는 그야말로 곤두박질쳤다. 특히 빗썸과 두나무는 연초 대비 각각 약 83.27%, 78.03% 추락하면서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냈다.
이밖에도 △비바리퍼블리카 △컬리 △야놀자 △케이뱅크 △현대오일뱅크는 각각 연초 대비 78.46%, 73.95%, 56.85%, 45.49%, 40.00% 내림세를 보였다.
이러한 현상과 관련해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IPO 시장의 부정적인 분위기로 인해 해당 기업들이 당분간 IPO 시장에 나서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가치 하락을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며 "그동안 비상장 기업들의 몸값이 높게 책정되면서 소위 '거품'이 빠지게 된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 "IPO 침체,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
내년에도 '兆 단위' 몸값을 자랑하는 업체들이 IPO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 대표적으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모빌리티 △LG CNS △SK에코플랜트 △CJ올리브영 등이다. 올해 상장을 철회했던 기업들도 상장 예비심사를 다시 받아 재도전할 가능성이 높다. △11번가 △오아시스 △CJ올리브영 등도 입성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증권가에선 IPO 시장 침체가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시중금리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올해 상장한 기업들의 주가 하락으로 투자금 회수를 하지 못하고 발이 묶인 기관 투자자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 연구원은 "최근 IPO 시장 부진은 인플레이션 위험 확대와 금리 상승이라는 매크로 변수가 주된 원인"이라면서 "금리 상승은 공모 투자자의 요구 수익률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에, 이전과 같은 공모 조건으로는 투자자를 끌어모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모 규모가 400억원 이상인 중대형 IPO는 공모가 밴드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지 않는 이상 추진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면서 "수급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타는 소규모 IPO의 경우엔 공모에 흥행하는 사례들이 자주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모 시장에 참여하는 기간과 개인의 수요 기반이 줄어든 상황에서 더욱 특정 섹터와 테마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올해 시장이 하락하는 중에도 소부장 기업들과 폐배터리, 로봇 분야는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면서 상장 이후 성과 또한 상대적으로 양호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내년에도 IPO 종목들간의 경쟁률과 수익률 양극화가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한 금융당국의 IPO 제도 개선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유 연구원은 "거래소는 금융위와 정책 논의를 통해 IPO 시장의 건전성 제고를 위한 제도 초안을 공개하며 새로운 정책 도입을 준비 중"이라며 "공모주 투자자 입장에서 IPO 참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제도 변경 사항인 만큼 향후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