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해 폭증한 대출로 배를 불렸던 은행은 올해 치솟은 금리로 돈을 쓸어 담았다. 은행권 이자폭리 논란에 당국은 예대금리차 공시제도를 도입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내년에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어 은행권 호실적은 이어질 전망이다.
◆이자이익 '역대급 실적'
올해 4대 은행(신한·국민·우리·하나)의 3분기 누적 순이익은 총 9조768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1%(8조2704억원) 증가했다. 순수수익이 무려 1조4985억원이 늘어난 역대 최고 실적이다.
은행권의 호실적은 고객들에게 받아들인 이자이익에서 기반한다. 4대 은행이 3분기까지 벌어들인 이자이익을 더하면 총 24조3097억원이다. 올해 개인에서 매수한 채권규모(20조원)보다 더 많은 돈을 은행은 이자이익으로만 벌었다.
반면 그동안 은행권에서 수익구조 다변화를 위해 늘리겠다던 비이자이익은 오히려 줄었다. 4대 은행의 수수료 이익과 유가증권 수익 등을 종합한 비이자이익은 1조289억원 규모다. 이는 지난해동기 2조2724억원 대비 54.7% 감소했다. 결국 올해 은행권을 요약하면 이자이익만 성장했다.
통상 은행의 주요 수입은 대출이자와 예금이자의 차이에서 발생한 이자이익, 즉 예대마진이다. 은행권은 이번 호실적을 금리인상기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올해 은행권 실적에 과도한 '이자 폭리'란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이는 평소보다 크게 벌어진 예대금리차에 기인한다.
예금과 대출의 금리차이인 예대금리차는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된 지난해 3분기 2.13%p에서 4분기 2.21%p로 늘어났다. 예대금리차가 점점 벌어지자 은행에서 대출금리를 빠르게 올리고 예금금리의 경우 천천히 인상한단 의혹이 이어졌다.
본격적인 금리인상기에 들어선 올해부터 예대금리차는 더욱 증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잔액 기준 국내 은행 예대금리차는 1분기 2.32%p, 2분기 2.40%p로 점점 벌어졌다. 이에 대해 은행권은 대출금리가 빠르게 오르는 건 당연하단 입장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출의 상당수가 변동금리 조건이기에 기준금리 인상이 빠르게 적용된다"며 "예금의 경우 절반 이상이 저금리 수시입출금 통장 등 '저원가성' 상품이기 때문에 예대금리차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금리 올려라, 내려라" 오락가락 금융당국
'이자폭리'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자, 금융당국은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칼을 빼 들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7월6일 '금리정보 공시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함에 따라 은행연합회 예대금리차 공시제도가 도입됐다. 이제 은행연합회는 매월 20일 홈페이지에 은행별 예금과 대출의 금리차이를 비교 공시해야 한다. 금융위는 공시제도를 통해 은행 간 대출 금리인하 경쟁을 유도할 계획이다. 또 은행에서 금리를 정할 때 원칙이 미비한 점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예대금리차 비교 공시는 초기에 효과가 있는 듯 보였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공시 첫 달인 7월 2.02%p를 기록했던 11개 은행의 예대금리차 평균은 금리인상이 지속됐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월 1.55%p로 낮아졌다. 예대금리차 확대에 대해 "구조상 어쩔 수 없다"던 은행의 입장이 무색해진 부분이다.
하지만 낮아지던 예대금리차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은행연합회 11월 기준 공시를 살펴보면 은행의 평균 예대금리차가 1.61%p로 다시 증가했다. 이는 또다시 이어진 금융당국의 개입 때문이다. 은행들은 예대금리차 공시제도가 시작되자 경쟁적으로 예·적금 금리를 높였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보다 시중은행들의 예금 금리가 높아지자 제2금융권에서 경쟁력 저하를 겪었다.
이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은행장들에게 "은행권으로 자금이 쏠려 제2금융권 등에서 유동성 부족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경제에 부담을 줄일 방안을 고민해 달라"고 직접 주문했다. 사실상 금융당국이 은행들에 '예·적금 금리 인상 자제령'을 내린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예대금리차 공시를 제도화하면서 예·적금 금리 경쟁을 부추긴 것은 당국인데, 이제 와서 인상을 자제하라고 하니 당황스럽다"며 "예·적금을 냅두고 어떻게 예대금리차를 줄이라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꼬집었다.
◆금리인상기, 깊어진 중앙은행의 '고민'
이처럼 당국이 갈피를 못 잡는 가운데 은행권의 내년도 실적 예상은 밝기만 하다. 올해 은행권 이자이익에 크게 기여한 세계적인 금리인상기가 내년에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선제적으로 금리인상에 나선 국가는 한국이다. 한국은행은 이주열 총재가 재임 중이던 지난해 8월 코로나19기간 시장에 풀어둔 돈을 다시 거둬들이고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문제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미국 때문에 예상과 달리 빠르게 오르고 있단 점이다.
지금의 금리인상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서 주도하고 있다. 미국이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것은 '물가 상승' 때문이다. 한국은행에서 선제적으로 움직인 8월 당시만 해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물가상승은 일시적"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 연준의 실수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과 달리 지난해 11월 미국 물가상승률은 1982년 이후 최고 수준인 6.8%를 기록했다. 예상 밖의 물가상승률에 연준은 기존 입장을 버리고 매파(통화긴축 선호)적으로 돌변했다.
이후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3년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해 4차례 연속 자이언트스텝(0.75% 인상) 등을 밟아 왔다. 이로 인해 미국의 기준금리는 올해초 제로금리(0.00~0.25%)에서 연말 4.25~4.50%까지 치솟았다.
선제적인 인상에 나섰던 한국은행은 미 연준이 유례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자 계산이 복잡해졌다. 연준이 두 번째 자이언트스텝을 밟은 지난 7월28일 기점으로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 기준금리를 앞질렀기 때문이다.
금리가 역전되면, 국내에 머물던 외국 투자자들은 자본을 빼 수익성 높은 미국으로 몰려가게 된다. 아울러 원화가치도 떨어져 원·달러 환율이 올라간다. 이러한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은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
한국은행은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3.25%까지 끌어올렸지만, 미국과 금리격차가 22년 만에 가장 큰 1.25%p로 벌어졌다. 여기에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 15일 "물가 상승이 지속적으로 하락추세에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금리인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연준의 물가상승률 목표치는 2%다. 미국 물가상승률은 지난 6월 9.1%로 고점을 찍은 이후 점점 낮아져 11월 7.1%를 기록했지만, 아직 연준의 목표치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아울러 양국 간 금리 격차뿐만 아니라 한국도 높은 물가상승률이 나타난 상황이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부동산 가격 △경제성장 둔화 △대출자 부담 등으로 한국은행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