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어급' 기업들이 코스피·코스닥 상장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하반기 IPO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 박기훈 기자
[프라임경제] 올해 상반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글로벌 통화 긴축, 경기침체 우려 등 악재 속에 국내 증시 분위기가 침체 중인 가운데 '兆 단위' 몸값을 자랑하는 업체들이 하반기 IPO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어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상반기 IPO 시장은 기업공개 계획을 미루거나 철회한 기업들이 눈에 띄게 많아지면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지난 1월 현대엔지니어링이 회사가치 평가 어려움을 이유로 공모 철회 신고서를 공시한 이후 SK쉴더스, 원스토어 등 주목받던 이른바 '대어급' 기업들이 모두 상장 철회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또한 지난 5일 기준 올해 상장한 기업 중 상장일 종가가 공모가를 상회한 기업 수는 30개 중 18개(60%)로 나타났다. 지난 2년간으로 본다면 약 80% 내외, 코로나19 이후 자산 시장이 급등하기 이전인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기준으로 봐도 약 70%의 기업이 상장일 종가가 공모가를 상회했던 높은 비율에 비하면 낮아진 모습이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에는 공모주 투자심리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쏟아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쏘카, 현대오일뱅크, 케이뱅크, 컬리 등 굵직한 기업들의 잇따른 IPO 시장 출격이다. 코스닥 시장에선 WCP, 라이온하트 등 조 단위 몸값을 자랑하는 업체들이 대기하고 있다.
◆ 유니콘 특례상장부터 '3수생'까지
대어급 업체로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는 곳은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 쏘카다.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 특례상장 1호 기업으로 코스피 상장을 준비 중인 쏘카는 지난 4월 상장 예비 심사를 통과했다. 그러나 일정이 다소 지연돼 6월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당초 6월 상장 계획이었으나 재무적 투자자(FI)와의 마찰로 증권신고서 제출이 지연된 것으로 알려졌다.

쏘카는 유니콘 특례상장 1호 기업으로 코스피 상장을 준비 중이다 ⓒ 쏘카
쏘카는 현대글로비스, 롯데 등 대형 물류·유통 기업과 업무 협약을 통한 사업영역 확장을 진행하면서 몸값을 높였다. 공모가 밴드 상단 기준 공모금액은 2048억원, 예상 시가총액은 1조5000억원이다. 어려운 증시 상황을 반영해 예상 가격보다 할인율을 높였고, 기존 투자자 보호예수를 통해 상장 직후 유통 가능 물량을 16.3%로 줄였다.
쏘카는 오는 8월1일부터 2일까지 기관 수요 예측 후 8일과 9일 일반공모 청약 예정이었으나2~3일 가량 공모 일정이 연기될 전망이다.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쏘카는 공모 일정 연기 내용을 담은 정정 증권신고서를 오는 13일께 금융감독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이와 관련해 WCP(더블유씨피)와 공모 일정이 겹치자 투자자 확보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 부담이 돼 결국 일정을 미루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IPO 삼수생' 현대오일밴크가 오는 11월 상장에 나선다. 사진은 충남 서산 소재 현대오일뱅크 공장 전경. ⓒ 현대오일뱅크
2012년과 2018년에 이어 도전하는 'IPO 삼수생' 현대오일뱅크도 오는 11월 상장에 나선다. 지난해 12월 청구서를 제출하고 약 7개월만인 지난 6월29일 코스피 상장 예비 심사 승인을 받았다. 기업 가치는 최대 10조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대 주주는 현대중공업지주 및 특수관계인(지분율 74.1%)이며, 뒤를 이어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기업 아람코가 지분 17%를 갖고 있다.
3년 전 2대주주인 아람코에게 8조원으로 프리IPO를 유지해 그 이상의 가치평가가 가능한가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많았으나, 최근 국제유가 급등으로 정유업이 초호황을 누리면서 올해 안에 기업 공개를 완료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구주매출 비중이 많다는 부분이 약점이지만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정유업 의존도를 낮추고 화이트 바이오 등 신사업 발굴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인터넷전문은행 1호' 케이뱅크 역시 연내 상장을 그대로 진행할 계획임을 밝히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케이뱅크는 지난 6월30일 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했기에 연말 경 상장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장에서는 케이뱅크 상장 후 시가총액을 6조원 안팎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서울 중구 소재 케이뱅크 사옥 전경 ⓒ 케이뱅크
케이뱅크는 가상화폐 거래소인 업비트와의 독점적인 계좌 제휴를 통해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한 이후 실적 개선을 이뤄냈다. 올해 1분기 잠정 순이익 245억원을 기록한 바 있으며, 이는 지난해 연간 순이익 224억원을 넘어선 수치이자 분기 최대 실적이다.
다만 업계에선 인터넷전문은행 중 처음으로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카카오뱅크(323410)가 최근 몸값이 급락한 만큼, 케이뱅크가 원하는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신선식품 새벽 배송기업인 컬리(마켓컬리)도 IPO에 나선다. 지난 5월31일 공식 심사 기간은 끝났지만 상장 예비심사 연장 신청을 한 상태로, 재무적 투자자(FI)들의 의결권 위임과 보호 예수 물량 관련 검토가 지연되며 상장이 미뤄졌다.
하지만 지난 5일 상장의 걸림돌이었던 FI들의 보유지분 의무보유 확약서를 거래소에 제출하면서 오는 7월 말에서 8월 초 예비 심사를 통과해 공모를 추진할 전망이다. 컬리는 연간 매출액 증가에도 영업 적자폭이 확대되며 지난해까지 누적적자가 5000억원에 달했다. 이에 쏘카와 마찬가지로 유니콘 특례 요건 적용으로 진행될 계획이다.
이밖에도 SSG닷컴(쓱닷컴), 오아시스마켓 등이 나란히 하반기 국내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 코스닥에 진출하는 兆 단위 공모주 '주목'
올해 코스닥 공모 기업의 '톱2'로 기록될 WCP와 라이온하트도 주목 대상이다.

WCP는 테슬라 특례상장 요건을 통해 코스닥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 WCP 홈페이지 갈무리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테슬라 특례상장 요건을 통해 증시 입성에 도전하는 WCP를 눈여겨보고 있다. 테슬라 요건은 적자를 기록하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생산기반 확충 등을 위한 투자를 지속할 경우 상장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WCP는 예심을 청구한 지난해 순손실 99억원을 기록하며 해당 자격 요건을 충족했으며 공모자금 역시 전부 시설투자에 사용할 예정이다.
더블유씨피는 지난 2016년 설립된 2차전지 분리막 개발사로, 지난해 말 기준 세계 2차전지 분리막 시장 점유율 4위(7.0%)다.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 등 고객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과 거래를 시작한 지난 2019년 이후 급격한 매출 성장세를 이루고 있다.
총 공모주식수는 900만주(신주 734만344주, 구주 165만9656주)로 공모가 희망밴드는 8만~10만원이다. 상장 후 예상 시가총액은 2조7207억~3조4010억원이다.
WCP가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수요예측과 일반 개인 청약 등 공모 일정이 쏘카의 기존 공모 일정과 겹치며 업계의 주목과 우려를 동시에 받았었다. 조 단위 기업이 나란히 같은 날 공모를 진행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되면 결국 한 회사는 참패를 거두게 되는 상황이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 다행히도 이 맞대결은 앞서 언급한 쏘카의 공모 일정 연기로 인해 해프닝으로 끝나게 됐다.
라이온하트스튜디오(이하 라이온하트)는 코스피와 코스닥 통틀어 하반기 IPO 최대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업계에서 거론되는 예상 기업가치만 7조원~8조원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라이온하트의 매출액은 2325억원, 영업이익은 2153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92.6%에 달했다.

기업가치만 놓고 보면 라이온하트는 코스피·코스닥 통틀어 최대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 라이온하트스튜디오 홈페이지 갈무리
특히 최근 카카오게임즈가 라이온하트의 지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라이온하트스튜디오가 4조원에 가까운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지난 1일 카카오게임즈에 따르면 유럽법인을 통해 라이온하트 주식 30.37%를 전체 1조2401억원에 취득하기로 결정하면서 보유 지분율을 54.95%까지 끌어올렸다. 앞서 선급금 4500억원을 낸 데 이어 잔금 7541억원을 추가로 지급한 결과다.
업계에 따르면 라이온하트는 이달 중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할 방침이다. 내부적으로는 연내 상장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이 계획이다. 앞서 지난 4월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네 곳을 주관사로 선정한 바 있다.
다만 향후 일정에 대해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스팩 합병, 바이오 기업의 부활 등도 '긍정적'
대어급 기업들의 등장 외에도 하반기 IPO 전망을 밝게 하는 요소는 또 있다. 그 중 하나는 스팩 합병 상장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2월부터 스팩이 소멸되고 회사가 존속법인으로 남는 '스팩소멸합병' 방식을 허용했다. 기존에는 스팩이 존속법인으로 남고 회사(피합병 법인)가 소멸되는 '스팩존속합병' 방식만 가능했었으나 이제는 존속 법인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스팩소멸합병 방식으로 합병을 하면 기업이 존속기업이 되기 때문에 법인격과 업력이 소멸되던 기존의 단점을 피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이 보다 활발해질 것이라는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에 대해 배정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스팩 합병을 통한 우회 상장은 직상장과는 달리 수요 예측 등의 절차가 필요 없어 시장 인지도가 낮은 기업의 경우 가치 평가에 유리하다"며 "투자자 역시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고 원금 손실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안정성을 보장 받으며 기업 인수합병 시장 투자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은 지난 7~8일 국내외 기관 투자자를 대상 수요예측을 진행해 공모가를 3만원으로 확정했다. ⓒ 루닛
주춤했던 바이오 벤처 기업들의 하반기 기업 공개도 상반기보다 활발해질 예정이다.
배 연구원은 "기술 특례로 상장한 일부 바이오 기업들의 잇따른 악재로 IPO의 문턱이 높아진 탓에 바이오 업계의 자금 조달은 어려움을 겪었었다"며 "최근 신약 개발 회사인 에이프릴바이오와 의료 AI 기업 루닛이 상장 승인되며 자금 조달 시장 내에서의 바이오 업계 부담이 줄어든 듯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