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대연8구역 재개발 예정지에서 주민들과 홍보요원들 간에 잦은 마찰로 소동을 빚어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 대연8구역조합 제보자
여느 재개발지역이 그러하듯 이곳 역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조합원 간에 불협화음이 충돌로 이어지고, 시공사 약속불이행 문제를 놓고 첨예한 대립으로 갈등에 골이 깊어지면서 신뢰에도 금이 간 모양새다.
분쟁의 양쪽 당사자 그룹에서 서로 '조합원 쟁탈전'을 벌이느라 조용하던 주택가 골목 어귀에는 낮이고 밤이고 낯선 이들이 진을 친다.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잦다 보니 112 경찰차가 출동하는 횟수도 점차 늘고 있다. 주민들은 편안한 잠을 언제 이뤘는지 기억이 희미할 지경이다.
'대연8구역'은 사업비가 9000억원에 달하고 '서금사 5구역'과 더불어 올해 부산지역 재개발 중에 최대어로 꼽힌다. 조합원수가 1350명으로, 30개 동을 세 개 단지로 나눠 총 3540세대를 짓는 대규모사업 예정지다. 지난해 10월19일 단독입찰에 나선 (주)포스코건설이 시공권을 따냈다.
◆갈등의 원인 '민원처리비 3000만원' 지급불이행이 논란 키워
사업설명회가 지난해 10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포스코건설은 시공사에 선정되면 7일 이내에 민원처리비 명목으로 조합원당 3000만원을 지급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 조합원들 입에서 탄성을 자아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이행되지 못했다. 시공사가 조합원 전체에게 현금을 일괄 지급하는 것은 매표행위로 볼 수 있어 논란의 소지가 있다. 현행 계약업무 처리기준에 따르면, 건설사가 재건축부담금과 시공과 관련 없는 사항에 대한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는 제안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애초부터 이행하기 힘든 공약이었던 셈이다.
이에 반발하고 나선 대연8구역 일부 조합원들은 시공사 선정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지난 2월8일 부산동부지법이 이를 인용하면서 현재 사업진행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법원은 "제안한 재산상의 이익이 임시총회에서 시공사로 선정하는 결의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채권자(조합원) 손을 들어 주었다. 당시 시공사 선정과정에서 민원처리비공약(3000만원)이 표심에 상당한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채무자(조합) 측은 법원 결정에 불복하고 즉각 원안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날 판결에 대한 이의제기신청 외는 아직 본안소송 건은 진행 안 된 상태다.
이에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입찰보증금 500억원이 낙찰 이후 사업비로 대여 전환되고, 대여 전환된 사업비를 조합이 조합원에게 지급하는 구조"라며, "사업제안서에도 명확히 조합설립동의자에 한해 그 규모만큼 대여한다고 명시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오는 4월28일 가처분이의신청 결과가 언제 나올지 단언할 수 없고, 본안소송은 비대위 측(채권자)이 주체라고 반박했다.
◆포스코건설, 대연8구역 시공사 지위 유지 '먹구름'
어쨌든 이번 법원 가처분결정에 따라 시공사로서의 위상이 상당히 위축된 것은 사실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보통의 가처분은 대상이 없는 상태로 진행될 때가 많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번 대연8구역 경우는 채무자(조합)와 이해보조참관인으로 국내 초일류 로펌을 동원한 가운데 벌어진 다툼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한 법률 전문가는 "원래 가처분이의는 채권자가 일방 진행하는 경우에 채무자가 전혀 대응을 못해 구제기회를 한 번 더 주기 위한 제도"라면서 "이번처럼 조합원 측이 9번, 조합 측 3번 그리고 보조 법률법인 쪽에서 4번이나 서면서를 내고, 치열하게 진행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양측에서 일반재판 못지않은 법리 다툼을 벌였고, 앞에 결정이 명백하게 잘못된 판결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볼 때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재판부가 가처분 결정문에 명시했듯이 건설사의 현금지급 홍보가 시공사 선정에 결정적인 포인트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주목한 것이 이유라는 것이다.
아울러 업계 관계자는 민원처리비용에 대해 "보통은 이주를 앞두고 조합원이 수중에 돈이 없어 건물임차인을 내보낼 여력이 없을 경우에 사용된다"며 "자칫 착공이 늦춰져 사업이 지연될 수 있어 임차인과 협상을 통해 조합 또는 시공사의 금전적 지원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연8구역과 같이 건설사가 조합원 전원을 상대로 현금을 일률적으로 지급하겠다는 공약은 국토부에서 '재개발·재건축 처리기준' 발표가 나고 시행된 이후로는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입찰보증금은 조합동의자에 한해서 조합이 조합원에게 지급하는 것이고, 당사는 대여한 이상 조합의 지급방식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며 "정비구역변경, 건축심의, 사업시행인가는 조합이 주도적으로 추진 가능하며 조합과 비대위 모두 사업이 미뤄지지 않도록 지혜롭게 처리할 것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투구 양상 치달아, 조합원간 첨예한 갈등 봉합은 요원
앞서 언급한대로 '대연8구역'은 조합원간에 시공사 선정을 놓고 지도부가 둘로 쪼개진 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시공사 선정 직후 자리에서 물러난 전 조합장측은 이번 법원 가처분 결과가 나오자 이를 토대로 공정한 경쟁 입찰을 통해 시공사 재선정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포스코건설의 재입찰도 수용한다는 자세다. 이들은 현재 임시총회발의자대표회를 결성하고 '시공사 철회에 대한 임시총회개최'에 필요한 주민동의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
반면 현 조합장 측은 포스코건설이 시공사에 선정된 가장 큰 요인은 '민원지원금'이 아닌 건설비 최저가 입찰과 단독시공 및 그 외 부수적인 매력에서 조합원 다수의 지지를 얻은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들 역시 반드시 포스코건설 만을 고집하지 않고 조합원 다수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양측은 각각 자신들 편에 홍보요원들을 현장에 투입하고, 상대방의 동태를 살피는 데 전념하고 있다. 모두 합쳐 100명은 족히 넘는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한쪽이 동의서를 받으러 조합원 집을 방문하면, 다른 한쪽이 나중에 찾아가 재차 설득해 마음을 돌려놓는 작업이 반복되고 있다.
오는 5월1일 정기 및 임시총회 개최가 예정 돼 있다. 이날의 주요안건 중에는 △시공사 지위 확인의 건 △ 시공사 가계약 체결 심의의 건을 비롯해 △협력업체 선정의 건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 계약 체결의 건 등 여러 민감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른바 임시총회발의자대표회 측은 "법원에 가처분 결정이 내려진 상황에서 이날 총회 안건 의결사항은 전혀 법적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조합측은 "판결의 적법성을 따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가처분결정에 따른 조합원들의 시공사에 대한 재신임을 묻겠다는 의도"라며 예정된 총회를 강행할 뜻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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