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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예비후보, 민생정치 꿈 풀칠하는 '부산의 도배재이'

북·강서구을 전략공천설 등 뒤숭숭…야전 누벼온 민생경제통 출마선언

서경수 기자 | sks@newsprime.co.kr | 2020.02.10 20:17:27

[프라임경제] 부산 북구강서구을은 젊은 표심이 강세인 지역구다. 당연히 더불어민주당 바람이 보수 야당보다 셀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고, 민주당 공천을 받기 위한 노력이 판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 곳이기에 전략공천설에 민감하게 휘둘리기도 한다. 실제로 북·강서구을에서는 국제금융 관련 경력이 있는 영입인사를 내리꽂을 수 있다는 등 구체적인 루머가 돈 적도 있다는 게 지역인사들의 전언.

정진우 더불어민주당 부산 북·강서구을 국회의원 예비후보. ⓒ 프라임경제

이런 경우 당의 고심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들도 있지만, 늘상 지역을 다지며 야전을 경험해온 이들의 박탈감이 더 큰 문제라는 점을 안타까워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경남 진주 출신인 정진우 전 부대변인(현 중진공 상임이사)이 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과거 보수텃밭이던 시절,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바통을 이어 받아 치른 17·18·20대 세 번의 총선과 한 차례에 구청장 도전기는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경상도 대학생'이 왜 '전라도 DJ'를? 꿋꿋한 정치소신 외길  

현재 중소기업진흥공단 상임이사인 그를 '전 부대변인'으로 칭하는 게 익숙하고 편한 이유는 바로 그의 글발과 정치적 소신, 그리고 정치 경력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비서실 부실장 등 여러 당직을 거쳤지만, 옛 민주통합당 부대변인과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대위 부대변인 등 주로 부대변인으로서 기억되는 인물이다. 이런 여러 자리를 통해 말과 글로 당의 체면을 세워왔다.

정치권 사정을 아는 이들은 공감하겠지만, 어느 곳이든 금배지를 단 이들이 차지하는 대변인 못지 않게 정확하고 빠른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사투를 벌이는 이들이 바로 부대변인들이다. 그 정당 혹은 캠프, 단체 등 여러 곳의 입장과 철학을 꿰고 또한 사심없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하므로 이 자리에서 대과없이 잘 넘겼다는 점은 빛은 안 나도 대단히 큰 경험으로 평가받는다.

민주당 라인의 철학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 중 하나로 그를 꼽아도 무리가 아닌 것은 바로 '정통 DJ맨' 그 중에서도 그 보기 드물다는 '원조 경상도 DJ팬'이기 때문. 요새는 친노나 친문 등 키워드를 부각하는 게 당내 입지 확보에 도움이 되는 추세라 하지만, 그는 DJ부터 자신의 정치적 계보를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정진우 전 부대변인이 1971년 7대 대통령선거 당시 김대중 후보의 선거포스터를 보며 감회에 젖었다. ⓒ 정진우 선거사무소

물론 정 전 부대변인에게도 친문 및 친노 훈장이 없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대위 부대변인을 역임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정치의 벽을 깨고자 어려운 가운데서도 출마했던 바로 그 지역구를 물려받은 사람이다. 

오래 이 지역에서 주민들과 동고동락해 온 그이기에, 주변에서는 떳떳하게 공천에서 밀려나는 게 아니라면 적어도 전략공천에 자리를 뺏겨서는 안 된다는 호소를 하고 있다.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한 데다, 동아대에서 공부한 그는 정통 경상도 사나이. 하지만 그는 대학생 시절 민주화 열망으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빠져든다. "경상도 놈이 전라도 놈을 왜 찍느냐?"거나 "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전라도 놈 선거운동을 하고 다니냐?"는 핀잔과 타박을 들으면서도 그는 DJ 정치철학을 주변에 알리고자 애썼다.

1987년 대선에서 당시 YS 거점이던 부산에선 '참으로 드물게도' 손수 DJ 선거벽보를 붙이러 다니던 그는 학생운동에도 열을 올렸다. 민주화의 한 수확으로 열린 총장직선제 무렵, 그는 동아대 22대 총학생회에서 기획부장으로 활약했다.

이렇게 민주화와 DJ를 위해 '도배재이(도배장이의 경상도 방언 발음)' 노릇에 열정을 불태우던 그에게 옛 새정치국민회의를 직장으로 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당 조직국을 거쳐 새천년민주당 시절 당료(당 사무직원) 생활을 하며 정치 잔뼈가 굵었다. 

그는 호남당이던 상황의 윤활유였고, 그 와중에 노무현 대망론을 일찍이 깨치고 퍼뜨리는 데 앞장선 선구자이기도 했다.

일찍 노무현 알아본 선구자, 경제안목 키우며 은둔

그는 경제를 배우고 정치현실에 접목, 당을 탄탄히 키우는 데 보람을 찾아왔다. 연세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았고 일본 모모야마대 경영학부 객원연구원으로 지내기도 하는 등 경제적 기본 실력이 높다. 

그가 DJ에게 흠뻑 빠지고 평생을 자숙하는 맥락 중 하나가 바로 DJ의 대중경제론이라는 풀이가 유력하다. 김 전 대통령은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을 상당 부분 받아들여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경제를 외쳤었다.

정 전 대변인 역시 공리공론에 치우친 경제 이야기 대신 민생과 접목되고 당의 철학을 경제적으로 풀어내는 안건들을 잡아내는 데 탁월한 장기가 있다. 한때 몸소 택시기사를 하는 등 실물경제에 대한 경험도 생생하다. 그런 만큼 실물과 이론 어느 면에서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런 그가 경제 이슈를 주제로 상대 정파를 날카롭게 비판한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2012년 선거에서 부산 버스 준공영제를 외친 일, 재계는 민주당의 복지투자 재원 조달 구상을 헐뜯지 말라는 취지의 논평(2012년 6월7일)을 내놓은 것 등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정진우 전 부대변인이 '촛불 집회'에 참석해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박근혜 정권퇴진을 외치고 있다. ⓒ 정진우 선거사무소

'한국경제와 사회대타협' 등 다양한 책을 쓰기도 했지만 그의 장기는 SNS를 통해 날카로운 글을 써내는 것이다. 대학생 시절 DJ 포스터를 손수 풀칠하면서 도배했던 것처럼 SNS를 경제와 사회 이슈에 대한 자기만의 시각으로 도배하듯 휘저어 많은 고정팬들이 있다.

여러 선거를 어렵게 치르고 떨어지면서도 지역을 지키고 사람들과 부대껴온 그는 당이 이상한 판단 대신 객관적이고 시스템에 기반한 공천을 해줘야 한다고 주문한다. 

오늘 날 이런 상황을 예견한 것일까? 일찍이 그는 2015년 11월6일 SNS글을 통해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당이라는 공식시스템이 그러한 권위를 대체할 수 있어야 했다"면서 '포스트 DJ시대의 공천권 문제와 잡음 해결책을 거론한 바 있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 당내 여러 동지들과의 선의의 경쟁, 그리고 총선 본선을 통과해 낼 수 있을까? 21대 총선으로 국회에 진출한 뒤, 정 전 대변인이 DJ와 노통 철학을 나름대로 어떻게 재해석하고 또 그 성과물들을 도배해 나갈지 기대를 거는 이들이 없지 않다. 이야깃거리가 넘치는 상황 속에서도 '도배재이 정진우'를 둘러싼 공천 이슈가 부산 정치권의 한 자락을 장식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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