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영남알프스' 언저리의 한 마을길을 중년의 남성이 걷는다. 높은 산세를 멀리하고 봄철 농사 준비가 한창이다. 그런 길을 따라 걷던 이 남자는 만나는 동네 어르신들을 살갑게 대하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묻고 답한다.
때때로 낯선 사람으로 그를 대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아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게 느껴진다. 영락없이 순찰도는 '시골경찰'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중년 신사의 경력은 관운이 좋다는 평만으로는 부족할 정도. 경찰대학장과 울산지방경찰청장을 지내고 울산 울주군에 돌아온 그는 서범수 자유한국당 울산시 울주군 당협위원장이다.
그는 스스로를 아직은 정치 신인이라고 규정하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울산에서 근무(울산경찰청장 역임)를 했다고는 하지만, (울주) 지역에까지 아직 널리 얼굴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처음에는 이방인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벌써 웬만한 현안 파악과 기초 다지기는 다 된 분위기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울주는 광역시인 울산의 외곽에 해당하는 군 지역으로, 광활한 넓이만큼이나 동네별로 특색이 모두 다르다.
권역별로 나눈다면 평야와 산지가 어우러진 서부 언양읍(농업, 축산) 및 중부권 범서읍(산업단지) 사이에도 주요산업구성 결이 다르고, 남부권을 보면 아예 바닷가로 앞의 지역들과 다른 서생(수산업)까지 있다. 투표 성향으로만 봐도, 다른 지역은 보수당 텃밭으로 볼수 있으나 8만 인구의 범서는 젊은 외부 인구의 유입이 많은 산업단지로 보수파가 열세인 것도 두루 꿰고 있다.
'보수 문화가 강한 영남알프스'라고 이 지역을 '한 줄 요약'하는 게 얼마나 무모한지 알 수 있다면서 자연스럽게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고 그는 웃는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서씨 집성촌 아들" 인사하고 현안 귀동냥
나름 눈썰미 있게 빠른 속도로 어느 정도 지역에 녹아든 비결을 묻자, 두 가지 답이 돌아왔다. 하나는 "울산에서 근무했었다"는 점을 소개하고, 또 하나는 "나도 울주의 아들"이라고 털어놓는다는 것. 그는 서울대 농대를 나와 행정고시에 합격, 수산청(오늘날의 해양수산부) 사무관을 거쳐 경찰에 입직했다. 동래경찰서장과 부산경찰청 수사과장, 경무과장 등을 지냈고 경찰대학장과 울산경찰청장 등에까지 올랐다.

서범수 자유한국당 울주 당협위원장이 시장을 찾아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서범수 제공사진
무엇보다, 그는 사실 울산경찰청장을 지내기 전에도 울산경찰청 차장으로 발령받아 일했던 적이 있다. 더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울산경찰청 방범과장으로 명받고 지역생활을 하기도 했다. 울산에 '이미 세 차례'나 금의환향하면서 경력을 쌓은 것. 울주 출생자로 남다른 감회가 있을 법하다.
부산 연고자라는 점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울주에 있는 서씨 집성촌에서 태어났고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버스 회사를 경영했고, 초대 민선 해운대구청장을 지내기도 했다.
서병수 전 부산시장이 그의 큰형이다. 경영인과 행정가, 정치인의 면모를 모두 가졌던 부친에게서 정치적 면모를 가장 많이 물려받은 게 큰형이라면 자신은 행정가로서의 성격을 좀 더 받은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큰형은 정치를 하고 자신은 바쁜 경찰 생활을 하면서 이리저리 치이고 돌아다니는 동안, 둘째형과 셋째형이 집안을 챙기는 역할을 해준 점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갖고 있다. 교수인 부인과 자제를 챙기며 이제 좀 가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관료 생활을 하면서 예산과 법률 체계에 대한 갈증이 컸다. 이를 고치고 새로 연구하는 역할을 하러 정치에 투신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고향이자 3번이나 중요한 자리를 역임했던 터전인 울산(울주)에서 해보자는 욕심도 들었다. 이런 각오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디션 정치신인으로 발탁되는 과정을 견뎌낸 원동력이다.
◆치열한 오디션 뚫었어도 어쩐지 찬밥 대우? 그래도 행복
한국당이 지역 당협에 쇄신 바람을 불어넣고자 초강수를 띄웠던 일이 아직도 회자된다. 그런 치열한 각축전 와중에도, 울주는 특히 뜨거운 경쟁 구도가 있었다.
서 위원장은 "전국 수백여 곳 지역구 가운데 단 15개 지역만 유투브로 생방송되는 공개오디션 대상에 올랐다"고 회고한다. 울주군은 9명에 후보자가 나섰는데, 그는 중간 심사에서 청년후보에게 5표차로 뒤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선에서 오히려 5표차로 제치며 지난 2월9일 위원장 자리를 거머쥐었다.
서 위원장은 "당시 오디션은 정치 입문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으로 무척 떨렸다"고 털어놨다. 그가 이처럼 짜릿한 승부를 떳떳하게 펼칠 수 있었던 점은 형(서병수 전 부산시장)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혼자 극복해 보라는 조언과 거절을 당한 새옹지마 효과이기도 하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낙선하긴 했으나 당내에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거물이던 형이라면 도움을 조금은 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기대가 사실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형은 스스로 길을 개척해 보는 게 처음엔 돌아가더라도 정치적으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해줬다.
이렇게 혼자 힘으로 첫 관문을 돌파하니, 그 다음의 어려움은 사실 조금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되는 배짱과 여유가 생겼다.

울주군은 보수색이 강하기는 하지만 지역별로 특색이 있어 발품을 부지런히 팔며 민심을 파악해야 한다고 서범수 자유한국당 울주 당협위원장은 강조한다. 사진은 마을 주민들을 찾아 의견을 구하는 모습. ⓒ 서범수 제공사진
정치권 신인이자 금배지가 없는 원외위원장이다 보니, 사무실조차 얻는 데 애를 먹는 게 현실. 또다른 각도에서도 지역 정치 활동에 어려움이 있다. 지난 6월 이후 울주군수나 울산광역시장 모두 민주당 일색으로 바뀌어서, 그야말로 서 위원장은 행사장의 찬밥 신세이기 쉽다.
그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나는 신인이니까"라고 스스로를 다잡고 있다. 사실 지역을 돌면서 그간 내심 느꼈던 게 "속칭 윗동네 공기만 너무 많이 마시며 살아왔다"는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는 것. 그런 발로 바닥을 다지며 뛰는 현장 감각과 지역 민심을 경청하는 자세 덕에 (나쁜 의미에서의) 경찰 고위직 티가 빠르게 빠진 것이라는 놀림도 동료 한국당 관계자들에게서 받고 있다.
◆'잘난 경찰 간부 출신의 차가움 없어' 장점, 합리적 정치인 목표
그의 이력을 보면 수사(일선경찰서장이나 부산경찰청 수사과장) 경력들도 있지만 경찰의 안살림을 책임지는 경무(부산경찰청 경무과장) 파트의 강점이 있다. 그런 배경과 정치 신인으로서 겸손하게 시작하자는 각오가 겹치면서 확실히 지역 활동에 득이 되고 있다. 날카롭거나 고압적인 자세가 없다는 평이 나오고 있는 것.
울주는 원전 기금 등으로 재정이 탄탄해 지역 살림이 어려운 다른 지역보다는 안심이 된다고 그는 분석한다. 이는 확실히 큰 장점. 하지만 그것만으로 지역이 잘 굴러가고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역을 돌아다녀 보면 여러 문제가 있는데 우선 57세인 서 위원장이 청년일 정도로 노령화 현상이 피부로 와닿는다는 것. 이런 지역 상황을 극복하면서 어떻게 곳곳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안이 무엇인지 저절로 고민하게 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지역의 당협위원장이라고 모두 다음 선거(지금으로서는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게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이 문제만은 생각할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지금 총선에 자기가 당의 공천을 받는 것 이상의 큰 그림 때문에 걱정이 많다.
"(같은 당의) 많은 사람들이 다 나름대로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며 그간 지역 정치 상황에 대해 진단하고 거기에 나름의 의의를 부여한 서 위원장은 그러나 "좋든 싫든 위원장 중심으로 결집해야만 승산 있다. 개인 이익에 앞서 당이 우선 돼야만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특히 서 위원장은 "가장 염려되는 것이라면 다른 당 후보가 아닌, 우리 당 출신 정치인이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다음 총선 구도에 대한 조심스러운 전망도 곁들였다.
이는 특히 지역의 현역 국회의원인 강길부 무소속 의원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강 의원은 옛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국회에 입성, 무소속과 보수 정당 공천 등 여러 번 깃발을 바꾸며 4선을 했다. 서 위원장은 강 의원에 대한 직접적 비판 등 거론은 자제하면서도 "나는 공천 결과에 100% 승복, 백의종군할 것이라고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이 부족하지만, 지역을 챙기고 정책 개발 능력도 갖춘 정치인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그는 문 대통령 대북정책에 대해 "북 비핵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좀 더 압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선 경협은 좀 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당도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하지 않고, 청와대나 여권에 협력할 일은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는 합리적 보수성향을 드러냈다.
그는 아직 성급하다며 직접 언급을 피하지만, 그의 가슴 한켠에 울산경찰청 방범과장, 차장, 그리고 청장에 이은 4번째 금의환향이 울주에서의 21대 총선 당선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4선 의원(강길부 의원) 격침으로 4번째 금의환향을 쏘아올릴 수 있을지 서 위원장의 앞날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