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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걸 "현직 돌아갈 생각 없는 이유, 학창시절에서 이유 찾자면…"

[단독인터뷰] 일렉트릭 대표 전격교체 논란 후 반년, 이제서야 듣는 설명과 인생철학②

서경수 기자 | sks@newsprime.co.kr | 2019.01.26 14:42:37
[프라임경제] <①편에서 이어짐> 주영걸 전 현대일렉트릭 대표와 대화를 이어가면 갈수록 '회사를 믿어라(여태 우리가 해온대로 믿음을 갖고 하자)' 혹은 '지나보니 이렇더라'라며 직간접적인 말은 꽤 하면서도 '나처럼 해라'라는 화법이 없다는 게 두드러졌다.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내가 자신있게 1등을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는 겸손(?)의 답이 나왔다.

1957년생인 그는 '당시만 해도 대단히 시골이던' 합천에서 태어났다고 소개했다. 당연히 시골 학교 분위기 상으로는 입시를 치러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가던 시절의 대도시 아이들을 이길 수 없었다.

"일류 중학교 시험을 쳤는데, 글쎄, 어찌 보면 떨어지는 게 당연했을 수도 있는데 떨어졌고" 이어서 "고등학교도 흔히 알아주는 학교 지망에는 실패해 "이거 고등학교 재수를 해야 하나" 생각하다 결국 공립(부산남고)으로 진학을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그때마다 드는 결심의 이유가 지나간 길에 연연하지 말고 또다른 곳에서 최선을 다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일종의 '낙장불입론'이랄까?

그래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현업으로 복귀할 여지가 있는지 궁금해 하는 이들도 있다는 언급에도 "No"라고 말했다. 이미 "이미 원없이 일할 수 있게 해 줬고, 현명한 후배들이 많은데 다시 흘러간 물을 되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조금 전 정치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보다 더 강하게 선을 긋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호사가들이 있는 건 다 이유가 있다.   

◆"현직 돌아갈 생각 없어, 후배들이 잘할 것" 일렉트릭 부활 응원

그가 지휘봉을 잡던 시절, 현대일렉트릭은 변신 물결이 지배했다. 주 전 대표는 2021년까지 R&D투자를 매출 대비 5%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선언과 함께, R&D인력도 당시 기준 2배로 증원할 구상도 언론에 천명했었다. 전력기기 업계 최초로 신뢰성센터를 구축한 점, 품질에 특히 신경쓴 점이나 유럽에 R&D센터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등 이전의 '중후장대 문화'와 달리 움직였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데 근래 정기선 현대글로벌 대표가 현대중공업그룹의 미래를 중공업 분야에서의 안주 대신 유니크하고 혁신적인 새 땅 진출로 잡고 있는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의료 빅데이터사업 진출을 위해 카카오인베스트먼트 등과의 협업에 나서고 있다. 로봇사업 등의 소리도 나온다. 그룹의 방향 변화 면에서 깨인 인물들의 힘을 빌리는 측면에 대해 이야기가 없지 않은 것.  

하지만 '앞서 나가는 스타일'이라는 이런 세간의 평을 모르거나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 경영철학을 묻자 창업회장 시절 현장을 주름잡던 선배들 이야기, '현장 논리'를 풀어놓았다.

정주영 창업회장 흉상 제막식에 참석한 주영걸 당시 현대일렉트릭 대표(맨오른쪽). ⓒ 현대중공업


부하 직원들을 다루는 문제에 대해서는 옛 스타일이 맞다며 '인간적 경영과 인간적 노동운동은 적이 아니다'라고 했다.

◆"귀족 노조 안 된다, 낭만적 노조는 OK"

"일을 시키려면 현장 상황을 알아야 돼. 조선소는 수주 상황 따라 일이 없을 때도 있단 말이지. 그런데 높은 사람 하나가 어느 날 지나가면 비슬비슬 피해. 그러면 화를 내거나 모른 척 하면 안 돼. '아, 지금 일이 없어서 쉬고 있는 때구나, 지금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정이구나'라는 걸 위에서도 안다는 걸 느껴지게 말을 붙여야 돼."

그는 예전 선배들의 면면을 거론하면서 현장 사람들과 술도 많이 마시고 치열하게 같이 간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자신도 "매년 직원 신상기록부를 다 가져오라고 해서 들여다 봤다. 직원들이 1년이면 이혼하는 사람이 2,3은 있을 때였는데 어떻게 된 건지 보고, 다른 직원들에게는 가정 돌보라는 이야기도 하고, 기회도 주고, 그렇게 챙겼다"고 회고했다. 

노동 운동에 대해서도 '나이브'한 입장을 보였다. 한때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현대중공업은 한때 격렬한 노동운동이 있었고 공권력과 충돌도 한 바가 있었다(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젊은 시절 일선 검사일 때 울산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이 때가 바로 이 중공업 노사분규 시절이었고 홍 전 대표가 사건처리를 맡았다).

"당시엔 살기 힘들다 이제 막 좀 나아진 때였고, 그래서 노동 운동에 진정성이 있었고 이해가 가는 면도 있었다. 한 마디로 거칠게 회사에 따져도 낭만이 있었다"면서 제대로 된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귀에 혹 거슬려도 언제든 들어줄 수 있는 게 경영인의 자세라고 강조했다.

다만 순전히 사담임을 전제로, "지나친 귀족 노조 행보는 안 된다"면서 "정치는 안 한다고 내가 강조했지만, 정치인을 만날 기회는 있다. 이번에 문재인 정부 높은 사람을 볼 일이 있어서 '일부 문제 있는 노조 운동  방향은 개혁을 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산다'고도 했다"고 했다.

풍력발전단지 건으로 김관용 당시 경북도지사(왼쪽)와 자리를 함께 한 주영걸 당시 대표 모습. ⓒ 현대중공업

현대일렉트릭은 지금 어렵다. 과거와 같이 중동에서 발전 특수를 기대할 수 없어서라는 평이 많다. 하지만 주 전 대표가 슬쩍슬쩍 무용담처럼 흘리는 과거 이야기 속에는 차세대 다른 먹거리에 대한 게 섞여 있었다.

일례가 선박들의 친환경 기능 강화를 국제해사기구 등에서 강조하는 구도다. 2019년부터 선박 평형수 처리장치, 2020년부터 선박 배기가스에서의 황산화물 함유량 절감 등 기존 선박들이 노력해야 할 골칫거리가 많다. 이 상황에서 현대일렉트릭이 찾을 몫은 무엇일까.

건설업 중동 특수가 끝난 후에 또다른 영역들을 찾아 더 많은 것을 일궜던 정주영 창업회장의 길에 답이 있다고 본다면, 지금 현대일렉트릭에겐, 중공업그룹에겐 가족처럼 뛰어줄 직원들의 힘이 또 한 번 필요할 터이다. 자꾸 가족적 가치, 낭만을 강조하는 주 전 대표의 행간의 의미가 무엇인지 짐작됐다.

자신을 자꾸 '1등 학교에 가본 적 없는' '흘러간 물'이라고만 하는 그의 말이 계속 흥미롭고 뒷말이 궁금해졌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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