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주영걸 "현대중공업그룹, 원없이 일하게 해줘 행복…후배들도 그렇게 해라"

[단독인터뷰] 일렉트릭 대표 전격교체 논란 후 반년, 이제서야 듣는 설명과 인생철학①

서경수 기자 | sks@newsprime.co.kr | 2019.01.26 10:57:18
[프라임경제] "CEO는 실적으로 말하는 것이지. 그리고 실적과 성과에 따라 책임을 지는 게 CEO의 역할이고, 그 외엔 다른 게 없다."

주영걸 전 현대일렉트릭 대표의 경영자(CEO)론을 들으니 대화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어렵사리 모처에서 만날 일정을 잡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처음부터 철벽을 치고 나온 셈이다. 다행히 여러 화제를 바꿔가며 학교나 회사 생활과 지난 소회 등을 들으며 경영철학보다는 인생철학을 들을 수 있었다.   

현대중공업그룹하면 흔히 배(조선)부터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다양한 연관 분야에 막대한 투자와 생산, 인력 고용을 하고 있는데 주 전 대표가 몸담았던 현대일렉트릭도 그 중 하나. 2017년 4월, 현대중공업이 4개 회사로 분사하면서 전기전자시스템사업본부가 독립해 현대일렉트릭으로 출범했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국내 최대 규모의 전기전자 전문기업으로 평가된다. 이런 곳에서 최고사령탑까지 올랐던 만큼 경제 난국 속에서 그의 철학을 듣고 싶었다. 또 하나 궁금했던 문제는 퇴임 당시의 교체 배경이었다. 

현대중공업이 사우디전력청과 MOU 체결 후 양측 관계자가 기념촬영을 했다(왼쪽). 분사 전인 2016년이므로 아직 주영걸 현대중공업 전기전자시스템 사업대표라고 불리던 때다. ⓒ 현대중공업

분사 직후 주 전 대표는 현대일렉트릭 초대 대표이사에 발탁됐고, 같은 해 11월 사장으로 승진했다. 2018년 3월 주주총회에서 재선임에도 성공했는데 3개월 만에 돌연 정명림 대표로 체제가 바뀌었다. 흔치 않은 전격 교체 인사로 보였다. 그래서 일부 매체에서는 문책성 경질 해석 기사를 냈는데, 여기엔 '심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중공업 각 분야의 실적 악화로 인한 위기 상황에 일부 계열사 CEO에게 책임 추궁을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언론의 지적이었던 셈.

이에 대해 거듭 질문하자, 주 전 대표는 "일일이 해명할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넘겼지만, 사실 '전격교체'라고 할 건 아니다"라고 입을 열었다.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CEO를 급히 바꾸는 기업문화, 더 나아가 인재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기업체질로 외부에 비칠 수 있다는 판단에 뒤늦게나마 작심 해명을 한 것.

그는 "현대중공업이 원래 (타업종이나 그룹 대비) 직함이 높지 않다는 특징이 있었다"고 말했다. 아마 2014년 분사 전의 체계상 특징이 오래 그룹을 지배해 온 영향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분사 기회에서야 '오너 일가'이자 '차세대 경영후계자'인 정기선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가 당시 부장에서 상무를 달았을 정도로, 자리와 직급이 '짠 편이었다'.

주 전 대표는 "경제가 어렵고 실적이 어려우니 누군가 책임을 지고 또다른 도전을 해야 한다면 CEO가 책임을 지는 게 맞다"면서 "전격적으로 교체됐다고 보기 전에 오래 CEO급으로 일할 수 있었던 행복한 세월을 봐달라"고 덧붙였다(그가 닦은 CEO 시절의 흔적은 이후에 다시 언급한다).

◆사실상 7년 CEO로 뛰어온 시간, "원없이 일해라" 

실제로 그는 1983년 현대맨이 된 후 늘 능력과 열의를 평가받아왔다. 웬만한 그룹들의 계열사 사장에 해당하는 직함만 추려도 2011년 풍력발전 총괄 이후, 2013년 전력기기 총괄에 이어 2014년 전기전자시스템사업본부 대표 등을 들 수 있다. 이후 분사로 '실제로 CEO 간판'까지 달았으니 여한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오너 일가의 입김(혹은 변덕)이나 기업별 특징 등 언론 일각의 시나리오와 다른 '싱거운 진실'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각사와 그룹이 지금 견뎌내고 있는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일선에서 직접 힘을 보태지 못하는 것에 일말의 아쉬움은 있는 듯 했으나 그보다 "원없이 일하게 해줬다" "믿는다"는 말로 과거와 미래의 '시차'를 강조했다.

불필요한 간섭이나 에두른 자기 해명, 여건이 현재 녹록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내만 감수하라는 당부로 들릴까 염려하는 듯 후배들에 대한 당부는 직접적이기 보다는 전반적인 이야기 위주로 내놓았다.

우선 그와 교체해 등장한 정명림 대표 체제에 대해서는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내 다음 사람이 그가 됐다는 말에 정말 잘 됐다고 했다"고 신뢰를 표시했다. 정 대표는 고압차단기 및 변압기 설계와 생산에서 잔뼈가 굵은 이 분야의 전문가다.

후배들에게는 다른 일보다 주특기에 꾸준히 매달리는 삶을 살라고 말했다. 그는 지방 출신에 지역에서 학교를 나왔고, 공대 출신으로 기술밖에 모르는 자신이(부산대 전기 전공) 현장 문화 중심, 남성적 분위기로 평가받는 그룹 내부에서도 투박한 평이었다고 회고하면서도, "결국엔 좋은 보직 찾아 기회 찾아 (기웃)하지 않고도 결국 일한 만큼 평가받을 수 있는 게 세상 일"이라고 말했다.

어떤 혼란 와도 늘 제 자리에, 다만 새 과제 두려워 말아야

열심히 일하던 그를 발탁해 준 상관들은 현대 전반의 차세대 먹거리를 맡겼다. 1985년, 주 전 대표는 고 정주영 그룹 창업회장의 지시로 독일 지멘스로 향했다. 스물여덟 시절이었다. 아직 신입급에 해당했으나 '싹'을 인정받아 선배들과 함께 특임 요원으로 외국행 행운을 잡은 것.

그는 전력망 구성의 뼈대가 되는 전기·배전기술을 이수해 한국에 심는 일을 맡았다. 현대중공업 내에 중전기사업부를 발족하는 데 밑거름을 깐 것이다.
 
중전기사업부는 연간 2조원 이상을 국내외에서 벌어들이는 현대중공업의 알짜 분야로 승승장구했고, 이후 그도 계속 역량을 발휘해 계열사 대표까지 오를 수 있었다.

화려한 경력에 지역 인지도가 있으니 다음 수순에 대한 궁금증도 없지 않다. "정치를 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다"고 묻자, 그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짓궂게 꺼낸 정치 참여 여부 질문에, 내친 김에 또다른 정치 이야기도 덧붙여 봤다. 한때 현대맨으로서 겪었을 여러 과거의 여정에 대해서도 추가 질문을 날렸다.   

아직도 민감한 이슈인 듯 그는 창업회장의 정치 참여 선언 및 현대 일가 분리 상황(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중심으로의 그룹 승계에 다른 형제가 반발한 것. 당시 경영 사정이 어려워 당국이 조정을 사실상 압박한 것도 함께 작용했다. 결국 MH 중심으로의 분리 추진과 MK 라인의 역분리 추진 등이 맞딱뜨려 큰 혼란을 빚었다. 일각에서는 '현대 왕자의 난'이라고도 부른다)에 대해서는 짧게만 답했다. "다른 자리(선거캠프 등을 가리킴)에 차출됐다고 해서 꼭 기회가 되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면서 주어진 일에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점만 강조하고 화제를 돌렸다. <②편에 계속>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