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오는 30일 부산시 산하공기업 사장 임명을 앞두고 오거돈 부산시장의 고민이 깊다.
그가 내정한 공공기관장 후보 중에 2명이 일명 비리백화점이라 불리는 엘시티로부터 수년 동안에 걸쳐 명절선물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부산시 인사검증 시스템이 또다시 도마에 오른 것.
특히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내정자의 경우 선물의 금액이 많고 적음을 떠나 차기시장 후보로까지 거론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 파장은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시의회 인사검증특별위원회(이하 검증특위)는 지난 24일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를 진행했다.
24일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내정자가 부산시의회 해양교통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인사검증 질의에 앞서 부산시민들 앞에 엘시티로부터 명절선물을 수수한데 대해 공개사과 했다. ⓒ 프라임경제
이어 "2012년 추석을 시작으로 매년 두 번씩 8차례에 걸쳐 모두 240만원 상당의 명절선물(농산물)이 집으로 배달됐다"며 수수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변명 같지만 당시에는 명절이 되면 지인들끼리 선물하는 관례가 있었다.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아 누가 보냈는지 몰랐다"며 "스스로도 부패척결을 주장했던 사람으로서 면목없다"고 재차 사과했다.
◆ '검증특위' 엘시티발 선물...대가성과 도덕성에 집중
이날 인사청문회 질의는 엘시티로부터 수수한 명절선물에 대한 대가성과 도덕성 검증에 집중했다.
먼저 "2014년 8월 행정부시장이 된 이후 엘시티 민원 관련 사실이 있느냐"는 직무 관련성 여부에 대해 내정자는 "엘시티 행정 절차는 2010년 다 마무리된 것으로 안다. 당시 해양국장(2009), 행정국장(2010)으로 해당 부서에 있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행정부시장 시절엔 이미 엘시티 인허가가 완료된 이후로 선물이 왔던 시기에는 직무 라인에 없었다"고 적극 해명했다.
오원세 의원은 김영란법 위반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에 "이미 2016년 당시 검찰이 엘시티를 수사 중이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던 상황이고 설 이후로는 들어온 게 없다"고 답했다.
오 의원이 검찰을 통해 증거로 제출받은 자료에는 16년 2월까지 수수한 것이 확인됐다. 김영란법은 그해 9월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날 부산시의회에서 열린 청문회는 내정자 본인의 요청으로 전 과정이 언론과 시민들 앞에 공개된 채 진행됐다.자신의 30여년간의 공직자로서의 양심과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보여진다.
결국 검증특위는 직무관련 대가성 여부를 밝혀내지 못한 채 도덕적 책임을 지우는 성과를 거두는 데 그쳤다.
모 의원은 "본인과 배우자가 공개한 재산내역을 면밀히 들여다보니 부동산을 포함 10억여원 정도였다"면서 "청탁을 대가로 부정한 돈을 받아온 부패한 공직자로 낙인찍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비리백화점 엘시티는 공사비만 1조 수천억, 이영복 회장이 빼돌린 비자금만 700여억원으로 알려졌다"며 "고위공직자였던 그가 6년에 걸쳐 240만원 상당에 농산물을 받은 사실만 놓고 천문학적인 이권에 개입했다고 보기엔 무리였다"고 설명했다.
이날 다수 의원들 사이에서는 오 시장을 향한 볼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미 부산지검에서 시 인사과에 비위명단을 통보한 시기는 지난해 2월. 오 시장이 이 사실을 모르고 내정했을 리 만무하다는 것. 시의회에서 내정자의 적격성을 논의한들 인사임명권은 시장 본인의 뜻에 달렸고 결국 집행부가 인사책임만 시의회가 짊어지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것.
이에 검증특위는 정 내정자에 대한 가부 결정을 유보한 채 다시 시장실로 책임을 넘겼다. 시장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4일 검증특위 위원들이 부산시의회 해양교통위원회 회의실에서 정경진 내정자의 도덕적 책임을 문제 삼아 강하게 질타했다.ⓒ 프라임경제
◆ 강성 부산교통공사 노조 반발도 부담
시 산하 공공기관 중에서도 강성으로 알려진 부산지하철 노조의 '내정자 임명 철회' 요구도 부담스럽다.
그간 부산교통공사 사장자리는 중앙정부에서 요직을 거친 인사들로 채워 져왔다. 현 박종흠 사장 역시 국토부 출신으로 임기내내 노조와 갈등을 빚고 파행을 거듭해 왔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연임을 극렬히 반대하는 노조측이 실력행사에 나서기도 했다. 공사 정문을 막아서며 사장의 출근을 저지하기에 이르렀다.
노조는 임명철회로 방침을 정하고 오는 30일 부산시청에서 규탄시위를 예고했다. 하지만 지난 날 노조가 보여 온 과격한 행보와는 다른 온도로 일이 풀릴 가능성이 아주 없지도 않다.
정 내정자 발표가 있기 전 공사 노사는 그를 은근히 반기는 분위기였다. 시 지원이 절대적인 지방공기업 입장에서 볼 때 중앙공무원 출신 사장만으로는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지방공무원 조직을 설득하는 데 있어 제한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부산교통공사는 매년 1000여억원이 넘는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려왔고. 올해는 그 규모가 2000여억원에 이를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 내정자는 예산을 기획·집행하는 행정부시장을 비롯해 부산시 요직을 두루 거쳤고, 중앙행정부와도 선이 닿아 있다. 게다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부산시 공무원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상사에 꼽힐 만큼 조직 내에서 평판도 좋았다.
공사측 관계자는 "기관장의 도덕성은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할 대목"이라면서도 "인사권은 시장의 권한이지 않은가"라며 시의회와 마찬가지로 오 시장 결단에 맡길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 부인할 수 없는 보은 · 코드...동 대학원 박사 · 행정부시장 출신
아무튼 지역시민단체의 도덕적 책임 추궁과 낙하산 보은 · 코드인사를 지적하는 곱지 않은 시선도 오 시장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시민단체의 입장은 물품의 액수가 적다고는 하나 흡집 난 도덕성은 청렴함이 요구되는 공공기관장으로 부적격이라는 것.
오거돈 부산광역시장. ⓒ 프라임경제
하지만 그는 당의 이익이 우선이라며 돌연사퇴하고, 오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힘을 보탰다. 파란 깃발만 들면 당선은 확정적. 인물 보다는 당 색깔이 승패를 결정지은 선거였는데 오 시장에게 당시 큰 힘을 실어준 것이다. 오 시장이 당선된 후에 그를 챙긴 게 바로 보은인사라는 비판적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두 인물이 걸어온 길에서 공통점을 많이 찾을 수 있는 점도 끈끈하고 묘한 둘 사이의 기류를 만들어낸다. 오 시장과 정 내정자가 걸어온 길은 묘하게 닮아 있다. 행정부시장 출신, 10년 터울로 나란히 행시(오 73년, 정 83년)에 합격. 행정학박사 학위를 받은 곳도 동아대학원으로 같다. 둘은 참여정부 시절이던 2014년 오 시장은 대통령직속 중기특위위원과 해수부장관을 역임했다. 이 시절, 정 내정자는 대통령 비서실행정관을 지냈고 이후 부산시 해양농수산 국장자리로 복귀한다.
또 오 시장이 부시장과 시장대행으로 뛰던 시절에는 시공보관으로 곁에서 보좌했다. 코드인사란 말도 그런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선천적인 말더듬증이라든지, 상고 출신에 흙수저 등 각자 가진 핸디캡을 딛고 고위공직자에 오른 성공스토리도 비슷하다.
◆ 핸디캡 극복도 닮은 꼴 '브로맨스', 버릴 수도 안고 갈 수도 고민
일련에 여러 정황들을 종합해봤을 때 일각에서 제기하는 보은·코드인사라는 주장을 반박할 만한 입장이 딱히 없어 보인다.
앞서 오 시장은 자신이 중단시켜 논란이 된 '부산형 BRT 사업' 계속 여부를 숙의민주주의를 내세워 시민판정단 결정에 맡긴 바 있다. 다수의 의견이 반영된 결정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반면, 논쟁을 부추긴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이면도 존재한다.
인사임명권은 시장의 고유권한. 따라서 책임도 시장의 몫이다. 이제 공은 오 시장 손에 넘어갔다. 그의 1기 부산시 산하공공기관 인선이 어떤 조각으로 완성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둘 사이의 관계를 '브로맨스'로 정의할 수 있는 셈인데, 어느 쪽으로 결론짓기도 쉽지가 않아 더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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