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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T에 담수화까지? 부산 숙의민주제 '오남용' 우려

기장군 등 심각한 이해 당사자 빼고 다른 구역에서 겉핥기 인기투표 가능성

서경수 기자 | sks@newsprime.co.kr | 2018.09.10 11:03:32

최근 숙의민주주의 활용에 열을 올리고 있는 오거돈 부산시장. ⓒ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부산광역시가 공론화 신드롬에 빠졌다. 부산은 과거 30년 지방자치제도 내내 특정 정당에서 장기집권하면서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매너리즘 행정 논란이 컸다. 그에 따라 이번에 더불어민주당 공천으로 나선 오거돈 시장이 새로 집권하면서 개혁과 소통의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숙의민주주의 등 개념을 오용 혹은 남용하는게 아니냐는 대목은 오 시장 체제의 어두운 그림자다.

이번에 등장한 간선급행버스체계(BRT) 관련 숙의민주주의 해결 추진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부산시 등에 따르면, 부산 동래 내성~서면교차로 구간 등 BRT 공사 재개 여부를 놓고 공론화 과정이 진행된다.

부산 BRT 정책 결정을 위한 시민공론화 위원회는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론화 방법의 설계 결과를 발표했다. 공론화는 시민여론 형성 단계를 시작으로 시민참여단 구성, 학습·숙의 단계를 거쳐 결론을 도출한다.

일단 대표성 있는 표본으로 구성된 시민이 숙의 과정을 거쳐 집단지성을 발휘하고 부산시가 이를 존중하겠다는 열린 행정 태도와 소통 논의 틀은 나무랄 대목이 없다. 하지만 세부 내용에는 논란 소지가 적지 않다.

공론화 과정은 시민 여론조사로부터 시작된다. 지역 성별 연령 등을 고려한 2500명을 대상으로 오는 18일까지 진행한다. 여론조사에서는 찬반 및 유보 의견을 수집하고, 시민참여단 참석 여부를 묻는다. 참석 의사를 밝힌 시민 중 지역 성별 연령을 고려해 150명 규모의 시민참여단을 만든다. 또한 평소 주로 이용하는 교통 수단의 종류에 따라 대중교통 75명, 택시·자가 승용차 등 75명의 동일 비율로 구성한다.

이렇게 구성된 시민참여단은 오리엔테이션과 2회에 걸친 TV토론회, 사전학습 과정에 이어 1박2일 동안 숙의 과정을 진행, 결론을 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부산에는 BRT 문제에 대한 충분한 경험치가 공유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 현재 BRT는 동래 내성교차로~해운대 운촌삼거리(8.7㎞) 구간이 완전 개통된 상황이다. 지난 6월20일부터 동래~서면(5.9㎞)과 운촌삼거리~중동 지하차도(1.7㎞) 구간 공사는 전면 중단됐다. 따라서 이 문제는 해운대 등 극히 일부 지역 주민 외에는 피부로 느껴지는 이슈가 아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서울시민들이 버스중앙차로제도를 경험해 본 터에 머리에 이미 '배경지식'이 들어가 있다면, 이를 유지할지 폐지할지 숙의민주주의로 정리해도 문제가 없다.

또다른 경우를 보자. 지난번 원자력발전 관련 공론화 토의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것은 이것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이고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논의가 있어 찬반에 대한 개별적 의식과 상식 차원의 지식이 아주 기본은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숙의민주주의 집행 과정에서 상당한 인원이 의견 변화 의사를 밝히는 등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바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성숙된 토론과 설득, 그로 인한 BRT 관련 의견의 절충이 아니라 잘 모르는 일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로 또다른 휩쓸림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치명적 문제가 숙의민주주의(공론화) 절차에 도사리고 있다. 지금 부산시에서 하는 절차는 이런 문제점과 인기투표식 과정으로 달려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BRT는 초반에는 반발이 컸으나, 해당 구역 이용자들의 경우 만족도가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칫 잘못된 숙의민주주의로 여론전 양상이 빚어질 경우, 전임 서병수 체제에서 도입한 제도를 편리하게 없애 버린다는 지적을 후대에 받을 수도 있다. 오 시장이 책임있는 결단으로 행정을 펼치는게 아니라, 공론화위원회를 이용해 전임자 색깔 지우기를 한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중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자는 이 문제에 대해 발표회견 중 관계자에게 서울 등 유사제도 시행 도시로의 견학 및 합숙 등으로 우려점을 해결할 가능성이 있는지 문의했으나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다.

또다른 문제는 해당 문제에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주민들을 도외시하고 다른 구역 주민들이 인기투표식으로 정책쇼핑을 할 가능성마저 높아 더욱 우려를 하고 있는 것.

부산과 울산 지역은 낙동강 수계의 수량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이는 안정적 수돗물 공급량 확보를 어렵게 한다. 따라서 부산시에서는 부산 외곽 지역인 기장군에 해수 담수화를 통한 수돗물 공급을 하는 안을 검토,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은 원자력발전소가 가까워 주민들이 방사능 오염 우려 등을 제기하며 심하게 반대해 왔다. 또한 오규석 기장군수는 해수 수돗물에 대해 이해 당사자인 기장군민들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해당 시설 가동이 9개월 째 중단된 상황이다. 안전성 논란 끝에 수돗물 공급에 실패한 뒤, 지난 1월 운영사가 유지인력 마저 철수하는 등 파행을 겪고 있다.

해수 담수화 수돗물 문제를 제기하는 기장 주민들. 부산시가 담수화 재추진을 공론화 명목으로 다시 검토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 뉴스1

물론 부산시로서는 이 문제를 빨리 매듭짓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있다. 당장 재가동에 돌입한다 해도 필요한 보수 비용만 80억원대로 추산되는 등 부담이 크기 때문.

하지만 부산시 특히 주무부처인 상수도사업본부가 이 문제를 주민투표와 공론화위원회 논의 등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논란 대상이 될 수 있다. BRT 건에서처럼 부산시 전역에서 표본을 추출하고 논의를 진행할 경우, 이해도나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는 정도가 기장 주민 대비 대단히 떨어질 수 있다.

각종 우려와 위험에 대해 타지역 주민들의 손으로 운명이 결정된다는 열패감을 기장 주민들이 토로할 가능성도 크다. 시설 폐쇄로 결론이 나도 문제다. 정부와 운영사, 부산시간 소송전이 불가피한 이슈인데 조심스럽고 신중한 전문적 행정 결론이 아니라 숙의민주주의에 책임을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또다른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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