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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건축물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앞서 경험한 제천과 통영에 대한 잔상이 깊은 베인 탓에 새롭게 문을 여는 “ES제주”를 향하는 발걸음은 바삐 움직였다.
제주공항에서 리조트까지 가는 시간은 대략 40분 남짓. 길은 크게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1100도로'와 '평화로' 두 갈래다. 앞에 경우 수려한 경관과 거리, 시간적인 면에서 추천할 만하나, 멀미에 약한 동승자의 원성은 감수해야 한다.
한라산 중산간로를 달리다 보면 만나게 되는 제주 들녘과 울창한 수림, 여기에 더해 아련히 다가오는 제주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휴식의 절반은 채운듯하다.
ES 제주로 가는 길에는 이정표를 볼 수 없다. 이는 제천과 통영도 마찬가지인 데, 굳이 이유를 찾고자한다면 ‘자연에 대한 유별난 집착이 아닐까'라고 추측해본다.
유럽의 평화로운 마을을 닮은 'ES제주' 전경. ⓒ 프라임경제
이윽고 현무암 자연석을 쌓아 만든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드넓은 목장에서 동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라산 품에 안긴 사르데니아풍 건물들은 마치 지중해의 마을을 통째 옮겨 놓은 듯한 이국적인 전경이다.
곡선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야트막한 건물 외관과 지붕은 길고 완만하게 뻗은 한라산 산세를 따라 움직인다. 현무암으로 산책로를 내고, 군데 군데 돌담으로 텃밭을 만들었다.
목장에서는 제주마들이 지축을 울리며 서로 앞다퉈 경주하고 오리, 염소, 닭들은 못마땅한 듯 ‘흘깃’ 눈을 흘긴다. 수평선까지 탁 트인 제주의 너른 바다에 눈이 절로 시원해지고, 전원생활의 느긋함이 마음으로 전해온다.
객실로 향하는 동굴복도. ⓒ 프라임경제
건물은 8개 동 153실 규모로 모든 객실이 중문바다를 향하고, 동굴 통로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저 멀리 마라도와 가파도가 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이면 산방산, 송악산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연한 아이보리톤 회벽과 핸드메이드 가구로 연출한 엔틱 인테리어가 모던한 멋을 내고, 객실마다 딸린 테라스와 두 개의 욕실에 여유로움이 배가 된다.
‘ES제주’의 상직적인 공간을 꼽으라면 로비로 활용되는 화려한 라운지 바와 루프톱을 들 수 있다.
국내 유명미술작가가 심해제주바다를 모티브 삼아 오랜 시간에 걸쳐 수작업으로 표현한 라운지 바닥은 빛에 반사되면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오묘하고 심도 깊다. 이곳에는 일본인 쉐프가 요리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도 함께 있다.
심해제주바다를 표현한 라운지 바. ⓒ 프라임경제
라운지 바가 인위적이었다면 이제는 자의적인 제주를 경험할 차례다. 로비에서 달팽이속껍질처럼 생긴 통로를 따라 오르면 야외수영장이 있는 옥상라운지가 기다린다.
한라중산간 4백고지에 위치한 이곳은 제주의 산과 바다를 비롯해 목장, 밭담길 등 마을 전체를 여유롭게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서귀포 시내와 중문바다는 물론, 어지간한 높이의 오름도 발 아래 두고 있다. 여기서는 일상의 모든 고민 내려놓고 책을 봐도 좋고, 아니면 낮잠을 자도 좋다.
하지만 아름다운 석양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일몰 직전에는 깨어있어야만 할 것 같다.
청보리밭과 현무암 밭담길. ⓒ 프라임경제
마을에서의 첫날은 제대로 된 휴식을 누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갖다 대면 그림이고 들이대며 인생사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쁜꽃도 열흘이면 시든다. 감흥이 사라질 때쯤 마을촌장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계곡인지 시내인지 애매한 물길이 건물 중앙을 뚫고, 마을 면적의 절반이자 평지 거의 대부분을 목장이 차지한다. 또한 주변을 환히 밝히는 높다란 가로등 하나 없고, 건물은 곡면과 곡선으로 지었다.
이에 대해 이종용 대표(촌장)은 "원래 있던 물길을 왜 틀어. 건물을 뚫어야지"라고 말한다.
그가 이런 저런 이유로 부수고, 날린 객실이 12실이다. '자연에 직선이 어디 있나, 그러니 휴식공간에 직선을 들일 수가 없지'라며 애초 잡은 예산보다 훨씬 늘어 난 건축비에 대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옥상라운지에서 바라본 서귀포시 전경. ⓒ 프라임경제
야간 산책길에 사방이 어두워 물으니 "불빛 방해 없이 오롯이 별만 감상하라고 조명을 무릎 아래로 낮춰 잡았다"는 촌장의 고집에 더 이상에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바람대로 이곳은 제주가 생성 된 시기에 용암이 흘러내린 자국인 곶자왈이 잘 보존돼있다.
고유수종인 편백나무 숲이 거센 제주바람을 막아서고, 밭담길과 유채꽃, 청보리밭 위로 야생노루와 산토끼가 제집 마당처럼 뛰논다. 건물도 그 무엇도 이들을 방해하지 않는다.
휴식을 위해 마을을 찾은 사람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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