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임금님 진상 미역, 쫄쫄이 미역, 북방산 미역.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는 미역들을 나열한 듯 보이나 이들 모두 '기장 미역' 하나가 누리는 별칭들이다.
진상 미역은 세종실록지리지를 통해 이곳 미역이 궁중에 올려졌다 언급돼 유명해진 개념이다. 쫄쫄이는 거친 파도를 이기며 자라 오래 끓여도 쉽게 풀어지지 않은 쫄깃한 식감에 따라 붙은 애칭이다. 한편, 북방산은 수온이 찬 동해안 지역에서 자라 줄기가 두껍고 잎이 좁은 미역을 뜻한다.
국내서 생산되는 미역은 크게 북방산과 남방산으로 나뉜다. 남방산은 진도와 완도등지에서 생산되며, 줄기가 가늘고, 잎이 넓은 것이 특징으로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한다. 생산 해역의 수온, 조류, 먹이에 따라 맛과 생김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미역은 부인병에 효능이 있다고 해 산모에게 최고의 선물로 꼽혀 왔다. 국과 나물, 튀각, 천연조미료 등 우리밥상에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로 자리했고 조리법도 지역마다 제각각이다.
기장에서는 시원한 맛이 일품인 '설치'라는 향토음식이 있다. 생미역과 콩나물을 된장과 국 간장에 간을 한 국물 음식으로 과거엔 잔칫날 빠져서는 안 될 귀한 음식이었다. 최근에는 이를 아는 이는 드물고, 전통의 맛을 이어가는 일부 가정에서 별미로 해먹는 음식이 되었다. 그러나 부산광역시 기장군이 전통음식 보존을 위해 조리법을 '기장의 향토음식'에 공개하고 있으니 참조해 볼만 하다.
특유의 풍미와 쫄깃한 식감으로 유명한 기장 쫄쫄이미역을 어민들이 수확하고 있다. ⓒ기장군
기장은 1960년 중반 우리나라 최초로 미역 양식이 시작된 곳이다. 이곳 기술이 각지로 전파돼 생산이 급격히 늘면서 지금처럼 값싸고 영양가 높은 국민식재료로 자리할 수 있었다. 양식 전에 자연산 미역은 그 양이 적어 귀한 음식으로 대접 받았다. 양식이 일반화된 오늘날도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돼서야 싱싱한 생미역 맛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국내 미역 생산을 이끌 던 기장은 1990년 초에 들어 쇄락에 길을 걷게 된다. 기장 해역에 불어 닥친 가파른 수온 상승으로 종자 생산이 사라지면서부터다. 1년생인 미역의 종자는 높은 온도에 취약한 성질을 갖고 있다. 이 지역에서 종자 생산업자가 자취를 감추고, 연중 안정된 수온을 유지하는 다도해상에 위치한 완도에서 종자를 구입해 본양성에만 매달리는 처지에 놓였다.
한때 양식 본가였지만, 지금은 밭에 뿌릴 씨앗을 사와 농사를 짓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나마 윗물과 아랫물이 심하게 뒤집히는 해안지형 탓에 다 자란 미역이 여전히 쫄쫄한 맛을 내며 명품미역으로 칭송 받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한때 절대강자로 시장을 호령하던 기장 미역은 과거의 영광만 남긴 채 우리의 식탁에서 쓸쓸한 뒤안길을 맞을 것인가.
ⓒ프라임경제
이에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한 기장군의 노력이 시작됐다. 기장 미역과 다시마의 종자보존과 신품종 개발을 위해 지난해 11월 일광면 해안가에 총사업비 145억원을 들여 지하1층 지상 4층 규모로 건립한 '해조류육종융합연구센터'가 관심을 모은다.
지하 1층 종자해조류실험실 및 측정실은 지난 20 여 년간 명맥이 끊긴 기장미역종자를 생산해 어업인들에게 무상으로 분양하고, 지상 1층 해조류배양실은 선발육종과 교잡육종을 배양해 신품종을 개발한다. 또 같은 층에 기장미역의 유례와 해조산업발전을 위한 홍보관도 갖췄다. 2층과 3층에는 사무실과 회의실을 비롯해 공동연구실과 문서저장고를 두고, 4층에는 해조류 어업인 육성과 양식기술 보급을 위한 아카데미관과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지역주민 복지공간으로도 제공된다.
또 바로 옆 동에 입주한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과는 협업을 통해 바다숲, 바다목장 조성 등 수산자원 확보를 위한 공동연구와, 기장연안에 특색 있는 해저도시를 조성해 새로운 관광자원 확충을 통한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독자적인 계획도 갖고 있다.
해조류육종융합연구센터 정세환연구사가 신품종생산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프라임경제
정세환 연구사는 "지난 50 여 년간 우리나라 해수온은 1℃이상 상승했고, 그 중에서도 기장군이 접하고 있는 동해의 온도상승률이 남해, 서해와 비교했을 때 더 높다’"며 "환경 변화에 대응 능력이 높은 우량형질의 신품종을 개발하는 것이 핵심 연구개발 방향"이라고 말했다.
현재 기장군에서 생산되는 해조류는 미역, 다시마에 집중되어 있어 타 품종 양식이 전무한 상태다. 이에 센터는 전남 완도가 대부분을 생산하는 고부가가치 해조류 청각을 비롯해 다양한 종자를 연구하고 한편 양식 기술 개발도 함께 모색하고 있다.
김성우 해조류육종융합연구센터 소장은 "지역 차원의 우수 품종 생산기반과 해조산업 경쟁력 확보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해조류 종자 보존과 생산, 신품종 개발 등 동남권 해조류 연구거점 기능수행하고 이를 통한 어가 수익 증대와 지역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센터 개소에 따른 의미를 부여했다.
서서히 우리식탁에서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기장 미역의 운명은 해조류육종융합연구센터의 연구 성과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한편 '건강한 바다의 오감만족! 제8회 기장미역·다시마축제'가 7일부터 사흘간 풍어제를 시작으로 기장군 일광면 이동항일원에서 개최된다. 다채로운 행사와 무료시식회를 통해 명품 기장 미역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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