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외교전이 21세기 들어 해마다 격화되고 있다. 아니 동북아에서 ‘태풍의 눈’이나 다름없다.
특히 ‘군국주의 부활’이라는 ‘탈’을 쓴 일본에 대해 아시아국가 중 한국과 중국의 공격적인 외교전이 최근 들어 그 농도를 더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근본적이고 이질적인 국가간 역사 인식 차이에서, 나아가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감이 없지 않다. 일본인 그들만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아집’이 주변 아시아 국가들을 자극,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본 ‘아집’이 화 자초…동북아 ‘태풍의 눈’
사실상 일본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외교는 조용할 날이 별로 없다. 앞으로도 그런 개연성이 충분하다. 때만 되면 무시로 불거져 나오는 일본의 돌출행동에 아시아 국가를 대표하고 있는 한·중이 맞받아치는 그런 양상이 줄곧 되풀이되고 있다.
일본은 역사의 깊은 수렁이라 할 수 있는 늪 속에서 언제 훌훌 털고 헤쳐 나올 수 있을까. 아무도 그 시기를 유추하지 못한다.
‘신사참배사태’는 동북아 국가 중심인 한·중이 앞장서 펼치고 있는 합동외교전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구한 과거를 되씹는 것은 식상하다. 우선 사태의 중심축에 서 있는 일본의 ‘야심’을 짚어 보자. 최근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개략적으로 살펴본다.
‘신사참배사태’ 사건중심 짚어보면…
지난 9월 11일,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중의원 총선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다. 이는 일본 정치의 후진성을 다시 한번 극명하게 드러낸다.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 민영화’라는 이슈를 적절히 활용해 자민당을 개혁 이미지로 포장, 총선 승리를 낚아챈 것이다.
이 후 9월 30일, 일본 오사카 고등법원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공적(公的)인 행위로 헌법 위반이라고 심판한다. 법원은 이날 대만인 등 188명이 고이즈미 총리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에서 총리의 신사참배는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에 위반되는 행동이라고 판결한다.
그러나 고이즈미는 여기에 굴하지 않는다. 우익의 대변이라도 하듯 정치적 곡예를 성공시킨 총리답게 ‘초법의 탈’을 쓰고 군국주의 야심을 서서히 드러낸다.
고이즈미는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직후 야스쿠니 신사참배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적절하게 판단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시기를 밝히지 않는다. 10월 들어 그의 말대로 신사참배 강행은 기정사실화 된다.
드디어 10월 17일, 고이즈미는 문제의 야스쿠니 신사를 또 한번 전격 참배한다. 그의 신사참배는 총리취임 이후 5년 연속, 5번째.
고이즈미는 총리 자격의 공적 참배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예년과 달리 ‘본전’이 아닌 일반인들이 참배하는 ‘배전’에서 합장한 채 30초 가량 고개를 숙이는 선에서 참배를 한다. 실상은 ‘눈 가리고 아옹’ 격이다.
우익을 대변이라도 하듯 내각은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해 주변국의 반발을 의식 “한 인간으로서 사적인 참배”라며 “기독교인이 교회에 가는 자유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항변한다.
동북아 국가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아온 ‘신사참배사퇴’는 연말을 앞두고 해마다 이렇게 또 막을 올린다. 당연히 한국,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 주변국들의 강력한 반발이 시작된다.
한 “정상회담 연기” 초강경… ‘우정의 해’ 무색
우선 한국.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17일 즉각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항의를 한다. 반 장관은 “고이즈미 총리가 A급 전범이 합사된 신사를 또다시 참배한 것은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는 것”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시한다.
반 장관은 “그간 한일관계 경색의 최대 장애요인은 신사참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문제”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강력히 촉구한다.
한국은 또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내 ‘한일정상회담 연기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등 강력대응에 나선다. 이로 인해 올해 지난 6월 20일 한일정상회담을 계기로 경색됐던 한일관계를 어느 정도 해소시키려는 노력이 수포가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올해는 특히 한일수교 40주년이고 ‘한일 우정의 해’여서 양국 국민이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미래지향적으로 풀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서 사태가 불거진 것이다.
중, 일 외상 방중 거절 기업들도 보복조치
신사참배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발과 반일감정이 극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정부의 움직임도 발 빠르다.
중국은 18일 항의의 표시로 지난 23일로 예정된 일본 외상의 중국 방문을 거부한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한다. 외교부 쿵취안(孔泉)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그의 방문을 받아들일 입장이 못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밝힌다.
중국 외교부도 성명을 내고 “고이즈미의 신사참배는 중·일 관계를 심각하게 훼손시켰다”며 공식 항의한다. 중·일은 이에 앞서 북한 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17일 갖기로 했던 양국간 외교 채널을 통한 협의 역시 취소한 바 있다.
나아가 일부 중국기업들도 중국에서 열리던 일본 관련 행사에 대한 후원을 취소하는가 하면 일본 외교당국자를 푸대접하는 등 보복성으로 보이는 일련의 조치도 내놓고 있다.
일 “참배는 일본인으로서는 당연” 유아돈존
신사참배의 맞대응으로 나선 한·중의 외교전이 극에서 극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있다. 일본총리의 참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본 극우파들로 중심이 된 인본인의 근본적인 ‘유아돈존’ 인식을 우려해서이다.
일본의 여야 국회의원 195명도 지난 17일 총리의 참배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튿날 18일 신사를 집단참배하면서 한 다케베 간사장의 구구한 변명은 주변국민들로 하여금 기를 차게 한다. 그는 참배 직후 “참배는 일본인으로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무라 외상도 “북관대첩비, 사할린 한인 귀국 문제, 무비자 입국 연장 등 한일관계를 좋게 하기 위한 많은 일들이 있다”며 “그것을 더 확실하게 하는 것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해야 할 일”이라며 참배를 미화한다. 격분하고 있는 일본 주변국민들의 정서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는 처사이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총리가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 참배했다며 주변국의 가타부타는 내정간섭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참배의 이유를 ‘전몰자 추모’, ‘오늘의 일본에 대한 감사’,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 등 세 가지로 들고 있다.
‘공식참배는 헌법위배’ 자국판결도 도외시
이 후 25일 일본 정부는 총리의 신사참배와 관련, 공식참배를 하더라도 전몰자 추도목적으로 한 것이 외관상 명백할 때는 헌법이 금지한 종교 활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공식입장을 재차 밝힌다.
뉴욕타임스(NYT)도 당시 ‘도쿄에서의 부적절한 도발’이라는 사설을 통해 “한국, 중국, 대만, 싱가포르의 지도자들이 분명히 규정했듯 일본 전쟁범죄 희생자 유족들에 대한 계산된 모욕”이라고 직시하며 일본의 속내를 비판한 바 있다.
NYT는 이날 사설에서 “야스쿠니 신사는 단지 숨진 일본인 250만 명의 기념소가 아니다”면서 “야스쿠니는 20세기 한국, 중국, 동남아에 끼친 극악무도한 행위에 대해 사죄하지 않으려는 견해를 고무하는 곳” 이라고 야스쿠니 신사의 의미를 적시하기도.
사설은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자민당 내 우익 민족주의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을 것” 이라면서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이런 그룹들을 달래지 말고 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 뼈있는 충고도 한다.
나아가 세계의 중화(지구의 중심)를 표방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도 일본의 처사에 발끈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21세기 들어 경제적 고성장을 이루고 있는 중국이 일본의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자 지정학적으로도 가장 강력한 도전국가이자 경쟁국가이기 때문이다. <계속>
박기웅 편집데스크 pgw@newspri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