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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으로 한국서도 14만명 죽었었다!

20~35세층이 주희생자...관련주 재도약 관심

임경오 기자 기자  2005.10.18 09: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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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조류독감 관련주들이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조류독감주가 어제 한풀 꺾이긴 했지만 언제든 불씨는 살아날 기세이다.

실제로 지난 16일엔 터키에서 가금류가 집단폐사 함으로써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1918년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이 사망했을 때 한국에서도 조류독감으로 인한 피해가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답은 그렇다 이며 그 참상은 매우 혹독했었다.

게다가 당시 조류독감의 주된 피해자는 일반의 상식과는 달리 20~35세의 젊은이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겨울쳘 4개월새 무려 740만명 감염

1918년 10월부터 전 세계적으로 2000만~5000만 명이 사망했을 때 한국에서도 1918년 10월부터 1919년 1월말까지 740만 명 이상이 감염되고 이중 무려 14만 명이나 사망했던 사실이 본지 조사결과 새롭게 밝혀진 것이다.

남북한 합쳐 당시 인구가 대략 2000만 명이 안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의 인구비율로 따질 때 2000만 명 이상이 감염되고 5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하는 수치에 해당된다.

18일 본지가 입수한 ‘3.1운동직전 사회상황’이란 자료와 스페인 의학학술지 ‘자마’등에 따르면 당시 ‘서반아 감기’라고도 불렸던 조류 독감이 경성 인천 대구 평양 원산 개성 등지의 시가지에 만연했고 이로 인해 관공서의 업무가 마비되기도 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각급 학교는 일제히 휴교하고 회사들은 업무에 차질을 가져 왔다. 추수기 환자가 날로 증가, 들녘의 익은 벼를 거두지 못하고 전국에서 상여행렬이 끊이지 않으면서 초상만 치르느라 조선 전도의 민심이 흉흉했다고 당시 매일신보는 보도했다.

백범 김구 선생도 20일간 조류독감으로 치료

심지어 백범 김구 선생도 1919년에 20일간이나 고생한 것으로 백범일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병원이란 곳에는 혹을 떼러 제중원(濟衆院)에 1개월, 상해에 온 후 서반아감기로 20일 동안 치료한 것뿐이다. 기미년에 중국으로 건너온 이후 지금까지…”

아무튼 조류독감의 창궐과 대규모 사망자들이 발생, 당시의 선물투기와 일제 수탈로 인한 쌀값급등과 어우러지면서 민심이 일제로부터 급격히 멀어지고 조류독감이 수그러들기 시작한 1919년 3월1일 일어난 대규모 독립운동의 한 에너지원으로도 작용한 것으로 새롭게 드러났다.

당시 경무총감부 조사에 의하면 조류독감으로 인해 조선인은 742만2113명의 환자가 발생했으며 그중 13만9128명이 사망했고 일본인 역시 15만9916명의 환자가 발생해 1297명이 사망했다. 기타 중국인등을 합치면 총 758만8390명의 환자가 생겨서 14만518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진주에선 집배원이 모두 환자  간부가 배달

1918년 11월11일자 매일신보에 보면 서울 개성 평양 등 지역별 참상이 상세하게 보도돼있다. 심지어 진주에서는 우편국 교환수와 배달부가 모두 병에 걸려 국장을 비롯한 관리들이 우편물을 거두러 다니고 배달할 정도의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매일신보는 보도했다.

이 같은 조선의 참상은 당시 스페인의 ‘자마’라는 의학학술지에도 자세히 기록돼있다. 자마지는 ‘코리아에서 확산되는 인플루엔자(PANDEMIC INFLUENZA IN KOREA)’라는 연구 보고서에서 당시 최초 창궐일은 9월말이며 발원지는 시베리아였고 당시 철길을 따라 확산됐다고 보고하고 있다. 자마지는 또 당시 인구의 최소 4분의 1에서 절반이 감염됐다고 보도해 경무총감부 조사와 일치하고 있다.

조류독감에서 일본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도쿄에서 매일 400명, 오사카에서는 매일 500명의 사망자가 생겨나고 있다고 당시 매일신보는 보도했다.

한편 조류독감으로 인해 미국인의 평균수명이 1918년 당시 51세에서 39세로 대폭 줄어들었다는 통계도 보고 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1918년 11월 중순에 끝난 세계1차대전도 각국의 병영에 조류독감이 급작스럽게 퍼지면서 서둘러 종결됐다는 주장이 일본인 의사에 의해 나오기도 했다.

젊은층이 주된 희생된 이유 아직 못 밝혀

또 충격적인 것은 당시 조류독감은 보통 독감이 고령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관례를 벗어나 젊음과 활기에 넘쳤던 20세부터 35세까지의 청년층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 미국 뉴욕시 마운트 시나이 의과대학의 아돌프 가르샤-사스트르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의 타우벤버거 박사와 앤 라이드 연구원은 “1918년 조류독감 창궐 때 청년층이 많이 희생됐던 이유는 청년층 체내의 면역반응 시스템이 스페인 독감 앞에 무력해지는 어떤 결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아직 규명하지 못했다”고 말해 주된 희생자가 청년층이었음을 뒷받침했다.

이는 현대인의 건강이 예전보다 좋기 때문에 조류독감에 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뒤집는 통계여서 파장이 예상된다.

조류독감, 현대의 흑사병이 될지, 일회성 해프닝이 될지는 조금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만반의 준비가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조류독감 관련주가 다시 고공행진을 벌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