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소설가 채만식은 장편 <탁류>에서 전라북도 군산과 변산의 곰소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 모습을 그렸다.
밀물 때가 되면 누런 황톳물이 육지를 향해 ‘우우’ 밀려드는 갯벌. 탁하고 거칠게 보여도 그 속에는 온갖 갯것들과 그걸 잡아먹고 사는 민초들이 바글거렸다. 지금도 변산은 바다에 기대 사는 이들의 땅이다.
어떤 사람들의 고기를 잡고 어떤 이는 매운탕 가게를, 또 어떤 이는 소금을 굽는다. 이 갯마을은 봄이 되면 더욱 아름다워진다.
◆ 젓갈 반찬에 밥 한그릇 뚝딱
변산에서는 멸치액젓, 까나리액젓, 갈치액젓, 갈치속액젓 등 액젓류와 명란, 창란, 오징어, 꼴뚜기, 바지락, 어리굴젓, 아가미젓, 갈치속젓…. 무려 40여 가지에 이르는 젓갈이 팔려나간다.
변산반도의 작은 포구 곰소의 길가에 줄지어 선 젓갈 가게들. 해가 뉘엿해지는 저녁 무렵이면 젓갈 가게 건너편 회집에 불이 켜지고 대하구이 냄새가 피어오른다.
젓갈을 구입한 김에 자리 잡고 앉아 바닷가 대하 맛까지 보려는 관광객들로 성시를 이루는 곰소. 본래 젓갈 집산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근처에다 밥상을 펴기도 한다. 수십 가지에 이르는 젓갈 한 가지 씩만 곁들여도 밥 한 그릇은 뚝딱이다. 바닷가에서 회를 쳐 먹는 것도 제 맛이지만 짭쪼름한 젓갈 한 점 곁들인 밥맛은 더 특별하다.
곰소의 봄날 저녁은 갯벌 위로 번지는 낙조와 함께 이렇게 물들어 간다.
◆ 새만금 간척으로 병들어가는 바다
전북 부안군의 변산은 정부가 새만금간척사업을 밀어붙이면서 크게 동요하고 있다. 이들에게 그 너른 갯벌을 깔아뭉개는 일은 절대 받아 들이 수 없는 과오가 된다.
고향을 고향답게 해주던 바다가 사라지고 망둥이 장대 박대 우럭 붕장어 등등 온갖 갯것도 덩달아 없어진다. 당연히 변산의 젓갈 시장도, 벌써 쇠잔한 포구도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곰소항에서 영전 4거리 쪽으로 걸어 10분 거리에 드넓은 염전이 펼쳐진다. 천일염으로 유명한 곰소염전이다. 맑은 날이면 멀리 내변산과 하늘의 흰구름이 염전에 고인 물에 그대로 비친다.
염전은 언제든 평화로워 보인다. 고여 있는 물에서 결정이 생기고 며칠 지나지 않아 눈처럼 흰 소금이 무더기무더기 자란다. 이 소금은 잠시 통나무로 만든 창고에서 숨을 고르다 영광 법성포 굴비건조장으로, 곰소의 젓갈 담그는 곳으로 팔려나간다.
곰소염전은 본래 변산이 남쪽 영광과 함께 끌어안고 있는 칠산바다에서 나는 생선에 간을 하기 위해 생겨났다. 지금 남아있는 염전은 모두 8ha. 말 그대로 소금이 자라는 널따란 밭이다.
◆ 천일염 자라는 곰소염전의 봄
염전의 바닥은 본래 옹기 조각을 깔아 햇빛의 반사를 최대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지금은 공장에서 만든 타일이 옹기 조각을 대신하고 있다.
염전의 밭둑에도 군데군데 타일이 박혀있어 마치 유럽 도시의 뒷골목을 포장한 타일처럼 보인다. 강한 염분에 견디도록 통나무를 이용해 지은 소금창고는 우리나라 영화의 단골 무대였다.
광주항쟁의 충격으로 정신 이상이 된 소녀를 가두고 변태적 사랑에 빠지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꽃잎>의 주 무대도 염전의 소금창고였다.
염전의 소금창고가 영화의 무대가 되는 까닭은 왠지 모를 슬픔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텅 빈 염전의 소금창고는 공연히 적막해 보인다.
하늘을 담고 있는 소금밭의 평화로움과 묘하게 병치되는 이미지가 보는 이의 가슴을 두드린다. 곰소염전은 소금뿐만 아니라 이러한 감상을 던지곤 한다.
변산의 이름난 관광지는 채석강과 적벽강, 그리고 그 끝에 자리잡은 격포항이다. 또 반도의 안쪽에는 백제의 고찰 내소사와 내변산이 가을 단풍으로 치장하고 있다. 채석강은 오랜 옛날 만들어진 해식단애가 파도와 싸우고 있다.
마치 수만권의 책을 어지러이 쌓아놓은 듯한 풍경이다. 바다와 잇닿은 바닥도 평평한 반석이다. 밀물 때면 들이치는 물결이 제법 거센 파도를 이룬다. 채석강과 잇닿아 있는 적벽강은 이름 그대로 붉은 빛의 해식단애가 일품이다.
◆ 노을 빛 머금은 해식단애의 채석강
삼국지연의에서 오나라 손권과 촉나라 연합군이 조조의 대군을 물리쳤다는 채석강에서 이름을 따 왔다.
채석강과 적벽강 바로 옆은 변산의 최대 어항인 격포항이다. 서해어업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곳인 까닭에 바닷가는 온통 횟집으로 뒤덮여 있다.
격포의 긴 방파제를 천천히 거닐며 적벽강과 채석강의 먼 풍경을 보는 것이 좋다. 특히 낙조 무렵이면 적벽강이 이름 그대로 붉게 타오른다.
반도 내륙의 내소사는 라당연합군의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왔다고 해서 이름붙은 고찰이다. 단청이 벗겨진 공포와 문살이 고풍을 더하는 아늑한 절이다.
내소사를 품고 있는 내변산은 호남정맥의 끝자락이 바다로 잠기기 전 불쑥 솟은 봉우리 몇 개로 이루어져 있다.
최고봉인 의상봉이 해발 509m, 이어 신선봉(486m)과 쌍선봉(459m)이 차례로 이어진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곳곳의 기암괴석이 아찔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거기다 직소폭포, 봉래구곡, 낙조대 등 이름 붙여진 명승도 즐비하다.
내변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무려 10여개에 이른다. 모든 길을 답사하기 위해서는 일주일은 잡아야 하지만 내소사 입구 전나무숲에서 시작하는 길이 가장 무난하다.
◆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신태인IC, 또는 서해안고속도로 부안IC에서 30번 국도로 부안까지 달린다. 부안읍내에서 길을 바꾸면 변산반도의 해안을 따라 가게 된다. 반도의 서쪽 끝에 적벽강과 채석강 격포가 차례로 나온다. 곰소는 격포에서 남쪽으로 20분 쯤 더 가면 나온다. 곰소에서 내소사로 들어가는 736번 지방도로가 이어진다. 숙박은 적벽강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죽막별장(063-584-7771) 등 깨끗한 펜션과 민박이 많다.
◆ 나들이길 별미
변산반도 전체가 관광음식점 단지와 다를 바 없다. 특히 횟집은 언제나 성시를 이루는데 격포항의 변산반도횟집(063-582-8888)이 깔끔하다. 이곳 토박이인 주인이 수산물중매인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회의 신선도는 걱정할 필요 없다. 회 뿐만 아니라 갈치속젓 등 곰소의 젓갈 맛이 각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