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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정의 인간지능] ④ KPI가 아니라 OKR이다

지윤정 윌토피아 대표 기자  2026.03.10 10: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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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평생 이런 편지 한 번 안 써봤는데,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한 시니어 고객이 직접 손으로 쓴 편지가 콜센터 센터장 책상에 놓였다. 고객은 병원 측 실수로 보험금을 받지 못한 채 수개월째 이리저리 떠넘겨지고 있었는데, 그 상담사는 고객의 억울한 사정을 끝까지 듣고 직접 관계 부서를 연결해 문제를 해결해줬다. 자칫 집단 민원으로 번질 뻔한 상황을 조용히 막아낸 것이다. 통화 중에 AI 안내 오류를 발견해 시스템 팀에 공유하기까지 했다. 누가 봐도 잘한 상담이었다. 

그런데 그달 그 상담사의 KPI는 꼴찌였다. 통화 시간이 평균의 세 배였기 때문이다. 팀장은 칭찬하고 싶었지만 수치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객 감동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현실에서는 여전히 콜을 빨리 많이 받아쳐야 인정받는 구조였다.

매달 말이면 컨택센터 리더들은 같은 딜레마에 빠진다. 지난달 목표를 초과 달성한 상담사에게 이번 달은 더 높은 목표를 부여해야 한다. 반면 적당히 눈치껏 쉬어가는 상담사는 낮은 목표를 받고 인센티브까지 챙긴다. 열심히 한 사람이 손해 보는 구조다. 이걸 알면서도 리더는 쉽게 손대지 못한다. 

구조가 만들어낸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 바로잡으려 하면 어느 순간 리더는 숫자를 쫓는 감시자가 되거나, 어차피 안 된다는 체념한 방관자가 된다. 나침반이 잘못된 배가 열심히 노를 저을수록 엉뚱한 곳으로 가듯, 컨택센터도 중요한 것이 아닌 측정되는 것을 향해 열심히 엇나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 구조는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십수 년간 컨택센터를 지배해온 MBO(목표관리제)가 낳은 필연적 부작용이다. 전월 실적 기준으로 다음 달 목표를 산출하고, 콜 처리량·응대율·통화 시간에 인센티브를 연동하는 방식이 예전 컨택센터에는 적절했다. 빨리 많이 인입콜을 처리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AI가 단순 문의를 처리하고, 고객의 기대치가 매일 달라지는 요즘, MBO 방식은 센터를 과거에 묶어두는 수갑이 된다. 이제 컨택센터에는 새로운 성과 언어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이다.

OKR을 처음 들으면 "그게 KPI랑 뭐가 달라요?"라는 반응이 먼저 나온다. 당연한 질문이다. MBO가 "이번 달 콜 처리 건수 500건"처럼 수치로 행동을 통제한다면, OKR은 "고객이 한 번의 접촉으로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고 느끼게 한다"는 방향으로 구성원의 판단력을 깨운다. 초시계와 나침반의 차이다. 초시계는 빠름을 재지만, 나침반은 방향을 잡는다. 지금 컨택센터에 필요한 것은 더 정밀한 초시계가 아니라 제대로 된 나침반이다.

MBO 체계에서 상담사는 시키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목표는 위에서 내려오고, 달성하거나 못하거나 두 가지 결과만 있었다. OKR은 그 구조를 뒤집는다. 목표는 위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함께 이해한 상담사가 스스로 설계한다. 상황이 바뀌면 접근 방식을 바꾸고, 실패하면 그것을 다음 실험의 재료로 삼는다. 실수하지 않고 지적받지 않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통해 더 나은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 목표다. 

측정 대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자포스(Zappos)의 한 상담사는 신발을 주문하려는 고객이 근처 피자 가게를 묻자 직접 찾아 알려줬다. 통화는 길었지만 그 고객은 평생 자포스의 팬이 됐다. 만약 그 센터가 통화 시간만 쟀다면, 그 상담사는 낮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 고객이 기억하는 것은 처리 속도가 아니다. 자신의 상황을 진심으로 이해해 준 판단, 규정 너머에서 찾아준 해결책, 예상치 못한 가외노력에 고객은 감동한다. 

AX 시대 컨택센터의 핵심 목표 중 하나는 고객 감동 사례 발굴이다. AI는 규칙대로 하지만 인간은 규칙을 뛰어넘어 규칙을 만드는 존재다. 이제 상담사는 개성을 발휘하고 가외의 노력을 기울이며 창의적 해결책을 찾는 행동들에 용기를 내야 한다. 이러한 시도들이 학습 자산이 되고, 반복 민원을 개선하는 데이터가 되며, AI 학습의 기반이 된다.

컨택센터가 오래 붙들고 있던 KPI는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 시대에 맞는 도구였다. 그러나 이제 빨리 처리하는 것은 AI가 한다. 인간은 감동을 만든다. AI가 수치를 해치울 때, 인간은 수치가 담지 못한 것을 채운다. 고객이 전화를 끊고 나서 느끼는 안도감, 억울함이 풀렸을 때의 그 한숨. 그것을 설계하는 것이 인간 상담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지윤정 윌토피아 대표 / 성신여대 외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