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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시설 깊숙한 곳서 해체 작업, 로봇 '스팟'이 수행"

사람 접근 어려운 공간 정밀 분석…'효율' 아닌 '안전' 채택 이유

노병우 기자 기자  2026.02.11 15: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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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현대자동차그룹 로봇 전문 계열사 보스턴다이나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이 영국 원자력 시설 해체 현장에서 본격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 고위험 산업 환경에서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는 구조적 전환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영국 원자력 시설 해체 당국(Nuclear Decommissioning Authority) 산하 공기업인 셀라필드(Sellafield Ltd)는 최근 스팟을 핵시설 해체 작업에 투입해 방사선 특성화(Gamma & Alpha Characterization), 원격 점검, 시료 채취(Swabbing)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셀라필드는 영국 내 원자력 시설 해체 및 방사성 폐기물 관리를 담당하는 핵심 기관이다. 방사선 노출 위험과 복잡한 내부 구조, 노후 설비 등으로 인해 사람이 직접 진입하기 어려운 구역이 다수 존재한다.

문제는 해체 작업이 정밀 데이터를 전제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방사선 수치, 오염 범위, 구조 안정성 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해체 일정은 지연되고 비용은 급증한다. 그러나 작업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진입 자체가 제한되는 모순적 상황이 반복돼 왔다. 이 지점에서 로봇은 단순 자동화 장비가 아니라 '위험 대체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현장에 투입된 스팟은 360도 영상촬영, 3D 라이다(LiDAR) 스캐닝, 감마·알파선 측정 센서 등을 장착해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을 정밀 분석한다.

특히 방사성 오염 여부를 확인하는 시료 채취 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기존에는 보호 장비(Personal Protective Equipment, PPE)를 착용한 작업자가 직접 진입해야 했던 영역이다. 로봇 도입으로 작업자의 방사선 노출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됐다.

셀라필드는 스팟 도입 이후 △작업 속도 향상 △고품질 데이터 확보 △PPE 사용 감소에 따른 폐기물 저감 △의사결정 시간 단축 등의 효과를 얻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안전 개선을 넘어 해체 산업의 비용 구조 자체를 바꾸는 변화로 읽힌다.

이번 사례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단계적 검증을 거쳤다는 점이다. 셀라필드는 2021년 스팟 시험 운영을 시작으로, 2022~2023년 복잡한 환경에서의 운용 가능성을 검증했다. 2024년에는 고위험 방사능 구역에서 본격 점검 작업을 수행했고, 2025년에는 원격 시연을 통해 작업자와 현장을 완전히 분리한 운영 가능성까지 확인했다.


이는 로봇 활용이 파일럿 테스트 단계를 넘어, 원자력 해체 산업의 표준 프로세스로 편입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스팟은 이미 글로벌 산업 현장에서 다수 운영되고 있다. 포스코, 우드사이드 에너지, 카길 등 에너지·철강·식품 기업들이 설비 점검 및 순찰 용도로 활용 중이다.

특히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개최한 '휴머노이드 테크콘'에서 페데리코 비첸티니(Federico Vicentini) 보스턴다이나믹스 프로덕트 세이프티 부문 총괄은 "스팟은 설비 이상 징후를 사전에 감지해 고객의 재무적 손실을 예방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글로벌 제조기업의 생산 라인에서 스팟이 고장 부위를 촬영해 즉시 관리자에게 전송함으로써 대규모 손실을 막은 사례도 공개됐다.

즉, 스팟은 단순 순찰 로봇이 아니라 예측 유지보수(Predictive Maintenance)의 현장 실행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스팟의 원자력 해체 현장 투입은 현대차그룹의 장기 전략과도 연결된다. 현대차그룹은 CES 2026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를 포함해 스팟, 스트레치(Stretch) 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로봇이 위험을 맡고 인간은 감독과 창의성에 집중하는 미래"를 제시했다.

원자력 해체는 극단적으로 위험하고 반복적인 작업 환경이다. 이 분야에서의 실증사례는 로봇 사업의 상업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증명하는 시험대다.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소의 노후화와 해체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해체는 발전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 안전관리가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로봇은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산업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셀라필드 사례는 '산업 안전'과 '첨단 로봇 기술'이 결합한 대표적 모델이다. 이는 향후 방위, 화학, 광산, 재난 대응 분야로 확장될 가능성도 시사한다.

스팟이 영국 핵시설 해체 현장을 누비는 장면은 단순한 기술 뉴스가 아니다. 이는 고위험 산업에서 인간의 역할이 어떻게 재정의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로봇은 더 이상 공장에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방사선 구역, 붕괴 위험 지역, 접근 불가 공간 등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곳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번 사례는 산업 로봇이 '효율'이 아니라 '안전'을 이유로 채택되는 전환점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