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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노래] 한계령 - 양희은 ⑫

이상철 위드컨설팅 회장 기자  2026.02.02 14: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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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눈 덮인 서북주릉, 겨울바람을 맞는 설악산 상고대를 생각하며 詩 한 편을 감상해보자

한계령에서-장덕수

온종일 서북주릉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을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매일지

삼만육천오백일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 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 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우는 내게

울지마라 울지마라 하고

발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신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되어

빈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매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수 없는 애증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간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구름 몰고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산장다방에서 울려 퍼진 한계령 

1984년 시인 장덕수가 18세에 동대문운동장 근처의 산장다방에서 낭독한 자작시다.

이 때 '시인과 촌장'이라는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던 하덕규가 우연히 낭독을 들었고 시 전문을 받아 생략을 통해 1985년에 내놓은 노래가 양희은의 '한계령'이다.

장덕수는 한계령 아래 오색 약수터 근처 오목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시절 부친의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간 어머니를 그리며 살았다. 한계령에 올라 어머니가 산다는 인제쪽을 바라보며 피를 토하듯 울었다고 한다. 한계령이 슬픔에 지친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제 그만 내려가라고 할 때까지 울었단다. 초등학교를 마친 후 고향을 떠나 방황한 시절에 가진 수많은 생각과 슬픔들을 위로하는 건 여전히 그의 또 다른 어머니 한계령이었다.

고민과 슬픔들은 그 산이 주는 위로로 정화되고 다시 아름다운 시어가 되어 그의 마음속에 정착했다. 그는 봉제공장을 다니다 여의치 않아 고작 18세에 다시 오목골로 가기 전 '한계령에서'라는 아름다운 시를 탄생시켰고, 낭송까지 할 정도의 문학적 재능이 있었다.

1988년 어느날 대청봉 산장에 묵던 대학생들이 한계령을 부르자 가사가 자신의 시와 너무도 비슷한 걸 알게 된 장덕수는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다고 한다.

사실 그 전까지  한계령은 가시나무라는 명곡을 남긴 시인과 촌장의 멤버 하덕규의 스토리였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 많은 절망과 방황의 날들을 보내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가 한계령에 올라 이 노래를 만들었다는 일화가 회자됐다. 명곡에 붙은 이런 드라마틱한 스토리로 이 곡은 더 유명해졌다.

그러나 장덕수를 알고 있던 언론학박사 박순백씨를 비롯한 지인들은 잘못을 바로 잡고자 애를 썼으나 정작 당사자는 괘씸한 면이 있지만 뒤늦게 내것을 돌려 달라고 하는 것도 귀찮고, 힘든 일이니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일축했다.

20년보상, 카메라 한 대가 전부

그러나 세월이 20여 년이 흐른 2007년에서야 뒤늦게 저작권의 소중함을 알게 된 장덕수는 하덕규를 만났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던 하덕규는 결국 무단사용에 대한 부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그동안 저작권에 대한 보상을 제안했으나 장덕수는 필요한 것이 있으니 그걸로 대신하겠다고 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카메라 한 대였다.

장덕수는 한계령을 담을 수 있는 카메라 한 대면 족하다며, 다른 물질적인 것은 필요없다고 극구 사양했다.

하덕규가 개사하고 곡을 붙여 양희은씨가 공전의 히트를 친 한계령의 노랫말을 보자.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아 그러나, 후렴 반복) 

이 노래말은 2004년 계간지 시인세계 봄호가 시인 1000여 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 3편씩을 써달라고 설문을 보내 종합한 결과 3위를 차지했다. 봄날은 간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한계령, 아침이슬, 북한산에서 등이 뽑힌 노랫말들이다.

이 노래에 얽힌 또다른 이야기가 있다. 가수 양희은씨가 이 노래를 음반회사에 가져갔을 때 너 이 노래가 진짜 팔릴 거라 생각하냐며 핀잔을 들었었고 음반을 만들긴 했으나 홍보는 포기했다고 한다.

암 걸려보고 암연기하냐

한계령 발표후 양희은 씨는 미국으로 건너가 몇 년을 살았는데 어느날 보니 한계령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 인기가 가히 상상 이상이었고 자연스레 그녀를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또한 양희은은 이 곡을 발표한 지 10여 년이 지나서야 처음 한계령을 가 보았다는데, 이게 무슨 어처구니 없는 일이냐며 사람들이 비꼬자, 양희은씨는 연극배우가 암 걸려보고 암환자 연기하냐며 시원스레 대꾸했다는 일화도 구전되고 있다.

1981년 10월3일 한계령에서 고향 오색을 바라보며 쓴 시 '한계령에서'는 그 후 연작시로 만들어 현재 10편까지 나와 있고, 한계령에는 시인 장덕수를 원작자로 새긴 노래비가 우뚝 서 있다.

이 겨울이 가기 전, 찬 물 계곡이란 뜻을 품은 한계령에 올라 막힌 가슴을 활짝 열고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을 가져 보아야겠다.

이상철 위드컨설팅 회장/칼럼니스트·시인·대지문학동인/ 한국HR서비스산업협회 회장(前)/국회 환노위 정책자문위원/ 국회의원 보좌관(대구)/ 쌍용그룹 홍보실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