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전국의 모든 약재가 한자리에 모이는 곳. 약재들의 천국,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과 약령시장 약재 골목이다. 지난 26일 오전 찾아간 이곳에는 평일임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곧 다가올 설 명절 분위기가 이곳에선 벌써 무르익는 분위기다.
골목을 따라 들어서자 특유의 한약재 향이 공기를 채운다. 약재들을 구경하다보니 눈에 띄는 갈색 목편이 보인다. 손바닥만한 크기다. 저마다 오래된 간판 아래 유리 진열장에 가지런하다. 무슨 약재인지 궁금해 주인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침향(沈香)이다. 설 선물을 위해 사람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약재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침향 조각 하나를 집어든 주인장의 설명은 능숙하다.
"이건 그냥 보통이고요. 이쪽은 품질이 좋아서 값이 훨씬 나가요. 진짜 좋은 건 1억원도 넘습니다."
같은 침향이라도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200g에 6만원대 제품부터, 1g당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것까지 다양하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물론 가격표는 있다. 하지만 겉치레에 가까워 보인다. 오래될수록, 귀할수록, '좋다'는 말이 붙을수록 가격은 가파르다. 문제는 그 '좋음'의 기준이 무엇인지, 이 침향이 과연 식용으로 안전한 원료인지를 소비자가 현장에서 판단할 수 있는 단서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침향 시장, 진짜와 가짜의 경계
경동시장 인근의 여러 약재상을 둘러보는 동안 공통적으로 들은 말은 '침향'이라는 단어와 '몸에 좋다'라는 주관적 표현이었다. 식용인지, 어떤 종(種)인지, 어떤 경로로 수입됐는지를 묻자 대답은 모호해졌다.
"다 식용으로 들어온 거예요.", "원래 약으로 쓰는 거라 문제없어요."
그러나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면 대부분 서류나 유통 단계 이야기를 꺼내거나, "원래 그렇게 써왔다"는 관행에 기대는 분위기였다. 소비자 입장에서 그 설명을 검증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절편이나 분말 형태로 소분된 침향은 육안으로는 종을 구별할 수 없고, 포장지에 적힌 설명 역시 신뢰의 영역에 머문다.
침향은 예로부터 귀한 약재로 알려져 왔다.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는 정신 안정, 기혈 보강에 활용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세종대왕이 별도로 관리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침향은 나무가 상처를 입은 뒤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에 걸쳐 수지 성분이 응축되며 생성된다. 자연적 희소성이 가격을 떠받치는 구조다.
주산지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일부 지역에 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침향은 오랫동안 일부 한약재 시장과 상류층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그만큼 대중화되기 어렵고 고가라 최근에야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유이기도 하다.
◆커지는 시장, 따라오지 못하는 관리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급변했다. 스트레스, 불안, 수면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침향이 '마음 건강' 소재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침향 성분이 불안 행동 감소와 신경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알려지면서, 침향은 더 이상 소수의 약재가 아닌 '건강식품 원료'로 빠르게 대중화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침향 수입량은 2019년 약 21톤에서 2024년 약 101톤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업계는 국내 침향 시장 규모를 연간 300억~400억원 수준으로 추산한다. 건강기능식품, 차(茶), 환(丸), 분말 등 형태도 다양해졌다.
문제는 시장의 성장 속도에 비해 원료 관리와 검증 체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특히 식용이 아닌 가구용 침향 원료가 식품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소비자 불안은 커지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침향 수종은 약 20여 종에 이르지만, 우리나라 식품공전에 식품 원료로 등재된 침향은 단 두 종뿐이다. '아퀼라리아 말라센시스(Aquilaria malaccensis)'와 '아퀼라리아 아갈로차(Aquilaria agallocha)'만이 식용으로 인정된다. 나머지 종은 식품에 사용할 수 없다.
즉 '침향'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식용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 구분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서류는 있지만, 현장은 비어 있다
현재 식약처에서 바로보는 침향에 대한 내용은, 침향을 식품 원료로 사용할 경우 식품공전에 등재된 수종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하며, 유통·판매 과정에서는 관련 법령에 따른 원료 표시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중심으로 안내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 식약처는 침향에 대해 유전자 분석 판별법을 개발 중에 있다"면서 "수입 통관 단계에서 송장, 선적서류, CITES 허가서 등을 통해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멸종위기종 국제거래를 규제하는 CITES 협약에 따라 일정한 관리 절차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침향 제품을 제조·유통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어떤 서류를 통해 침향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소비자가 현장에서 침향의 식용 적합 여부를 직접 판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기준에 대한 설명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장에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수입 단계에서 확인된 원료가 도매·소매 과정을 거치며 소분되면, 그 이후에는 서류와 실물이 분리된다. 약재상 진열대에 놓인 침향 조각이 어떤 종인지, 식용으로 허가된 원료인지 소비자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유통 구조 역시 서류 의존도가 높다. 수입·도매업체는 현지 공급업체가 제공한 표기와 문서를 기준으로 거래한다. 만약 식용으로 인정되지 않은 원료가 식용 종으로 표기돼 반입되더라도, 이를 현장에서 걸러낼 현실적인 수단은 부족하다.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들리는 "결국 믿고 사는 수밖에 없다"는 말은 이 구조적 공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향기만으로는 부족한 시대
전문가들은 침향을 더 이상 '전통 약재'의 영역에만 둘 수 없다고 지적한다. 대중적 건강 소재로 소비되는 만큼, 관리 방식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DNA 바코딩과 같은 과학적 분석 기법을 도입해 종 판별의 정확도를 높이고, 수입 단계부터 원료 이력과 성분 분석 결과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완제품 단계에서도 원료 종과 검증 결과를 명확히 표시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문제가 터진 뒤 대응하는 방식으로는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며 "유통 초기 단계부터 과학적 검증과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침향이 건강 소재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결국 품질과 투명성이 핵심"이라며 "건강과 안전, 신뢰는 언제나 시장보다 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동시장의 약재 골목은 오늘도 침향 향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향기 뒤에 숨은 원료의 진짜 얼굴은 여전히 흐릿하다. 시장은 커졌고, 소비는 대중화됐지만, 검증과 책임의 구조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침향 시장이 지금의 성장세를 지속하려면, 더 이상 '귀한 약재'라는 이미지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투명한 검증, 명확한 기준, 그리고 책임 있는 유통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침향은 건강 소재가 아닌 불신의 상징으로 전락할 수 있다.
향기로운 약재가 진정한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지금이 그 분기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