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한 고객이 상담 센터에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고함을 친다. 예전 같으면 상담사의 심박수가 먼저 치솟았겠지만, 이제는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AI의 분석이 뜬다. "고객은 보상 액수보다 대기 시간 때문에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음. 사과보다는 즉각적인 보상 절차 안내가 효과적." 놀랍도록 정확하고 영리한 진단이다.
상담 현장에서 AI는 이미 단순한 챗봇을 넘어섰다. 실시간 스크립트를 짜주는 것은 물론, 상담이 끝나면 "방금 대응은 정말 매끄러웠어요"라며 지치지도 않고 격려를 건넨다. 연애 기술부터 상사 대처법까지 AI에게 묻는 시대라더니, 이제 상담의 가장 깊숙한 영역인 감정까지 AI가 들어앉은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서는 서늘한 질문이 터져 나온다. "AI가 다 해준다면, 인간 상담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AI가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면 된다. 문제는 그 인간만의 영역이 무엇인지 누구도 명확히 정의하지 못한 채, 현장에 "따뜻하게", "진정성 있게" 같은 추상적인 주문만 반복해왔다는 점이다. 이제 모호한 단어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인간 상담사가 쥐어야 할 진짜 무기, 인간력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짚어봐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하면서 결과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했다. AI 시대의 상담은 인간지능의 방식으로 달라져야 한다.
얼마 전 한 상담사의 녹취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고객이 사진과 실물이 다르다며 반품을 요청했다. 매뉴얼대로라면 반품 사유 확인 후 접수까지 3분이면 끝날 일이다.
하지만 이 상담사는 바로 접수하지 않았다. "아, 그러시군요. 반품을 원하시는군요"라며 잠시 멈추더니 이렇게 물었다. "반품은 언제든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색감이 생각하신 것과 달라서일까요? 아니면 입었을 때의 핏이 마음에 안 드시는 걸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반품 처리를 최선의 선택을 돕는 상담으로 전환시켰다.
상담사는 고객의 체형에 맞는 코디를 제안했고, 고객은 "생각보다 괜찮네요"라며 반품을 보류했다. 바로 이게 인간력이다. 현재의 요청을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전된 가치를 상상하고 이끌어내는 힘. 정확하고 빠른 처리는 AI가 더 잘한다. AI는 정보를 묻지만 인간은 마음을 듣는다. 그러려면 속도를 늦추고, 상태를 읽고, 관계의 다음 장을 열어야 한다. 이 인간력은 타고나는 감각이 아니라 훈련 가능한 기량이다.
하지만 인간력은 상담사 개인의 선의와 능력만으로는 발현되지 않는다. 관리자가 그것을 역량으로 정의하고 발휘해도 되는 능력으로 허용하며, 개발 가능한 기술로 훈련시킬 때 비로소 현장에서 살아난다. 안타깝게도 많은 관리자가 이런 순간을 훌륭한 상담이 아니라 애매하게 길어진 콜로 분류해 지나친다.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없으니 귀한 장면들이 우수사례로 남지 못하고 휘발된다.
상담 현장에 이미 존재하는 인간지능의 씨앗을 찾아내는 눈, 그것이 지금 리더에게 개발해야 할자질이다. 말 뒤에 숨은 의도를 포착한 상담 사례를 사냥하듯 발굴할 줄 알아야 하고 팀과 함께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며 인간에 대해 학습해야 한다. 하던 대로 라는 안전한 매뉴얼 뒤에 숨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고객의 의사결정을 돕는 제안을 할 수 있도록, 리더가 먼저 탐험가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 인간력을 발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언하고자 한다. 변화의 파도 앞에 선 리더들에게 이 글이 작은 용기와 실험의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지윤정 윌토피아 대표 / 성신여대 외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