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스타트업 법률 가이드] 관행적인 분쟁해결조항, 소송·중재 사이의 전략적 선택

박정현 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 기자  2026.01.27 14:27:35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기업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계약서 말미에는 분쟁해결조항이 포함된다. 분쟁이 발생할 경우 소송으로 해결할 것인지, 중재로 해결할 것인지를 미리 정해 두는 조항이다. 

실무에서는 이 조항을 계약의 '마지막 문장' 정도로 가볍게 취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실제 분쟁이 발생하면 분쟁해결조항은 계약서 전체 중 가장 중요한 조항으로 작동한다.

전통적으로 중재는 소송에 비해 신속하고, 절차가 유연하며, 업계 전문가의 판단이 반영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특히 소송의 경우 최종 확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부담으로 느낀 기업들은 중재를 선호해 왔다. 해외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는 상대방 본국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불리함을 피하기 위해 제3국에서의 국제중재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한동안 분쟁해결조항에는 중재가 거의 관성적으로 포함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실무에서는 중재가 소송에 비해 유리하다는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 
거래관계나 사안이 복잡해지면서 중재 역시 소송 못지않게 장기화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중재인의 성향이나 전문성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로 지적된다. 여기에 중재기관 비용과 대리인 비용까지 고려하면, 비용 측면에서도 중재가 반드시 효율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한편, 이러한 중재의 한계에 대한 반성으로 싱가포르 등 주요 중재지에서는 신속절차를 도입·확대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다만 신속절차는 분쟁 금액이나 사안의 성격에 따라 적용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고, 모든 사건에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중재 자체가 아니라, 어떤 조건과 구조로 중재를 설계하느냐가 중요해진 셈이다.

국제거래에서 중재가 여전히 활용되는 이유도 분명히 존재한다. 상대방 국가의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은 절차적·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중재는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장소에서 분쟁을 해결할 수 있고, 중재판정의 국제적 집행 가능성도 장점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러한 장점 역시 모든 국제계약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중재를 선택한다면 중재기관, 중재지(Seat), 실제 심리가 이루어지는 장소(Venue) 등을 구체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 중재인의 수와 선임 방식, 준거법과 중재절차법의 관계 역시 분쟁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는 화상심리를 전제로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어, 이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이제 실무자는 분쟁해결조항을 검토할 때 관성적으로 상대방이 제시한 초안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기존 계약서에 활용된 문구를 그대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분쟁해결조항은 계약 체결 시점에는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분쟁 발생 시에는 되돌릴 수 없는 구조적 제약으로 작용한다. 소액 분쟁과 대규모 분쟁을 동일한 방식으로 설계하는 것도 위험하다. 분쟁 발생 가능성, 분쟁 규모, 집행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의 관점에서는 더욱 현실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모든 계약에 중재를 넣는 것이 반드시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다. 국내 거래이고 분쟁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면, 오히려 소송이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더 효율적인 경우도 많다. 분쟁해결조항은 관행적으로 복사해 넣을 문구가 아니라, 계약의 성격에 맞춰 선택해야 할 전략적 요소이다.

결국 분쟁해결조항은 계약서의 마지막에 붙는 형식적 문장이 아니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 누가, 어디서, 어떤 절차로 싸우게 될지를 미리 정하는 핵심 조항이다. 소송과 중재 중 어느 하나가 항상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며, 각 계약의 구조와 리스크에 맞는 선택이 필요하다.

분쟁해결조항을 전략적으로 설계하는 것만으로도, 향후 분쟁에서 기업이 감수해야 할 시간과 비용, 불확실성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박정현 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 
미국 Swarthmore 대학교 경제학과·중어중문학과 졸업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