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정부가 추진 중인 약가제도 개편안을 둘러싸고 제약업계와 학계, 환자단체가 한목소리로 "속도와 인하 폭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단기적인 건강보험 재정 절감 효과는 불확실한 반면, 연구개발(R&D) 투자 위축과 의약품 공급 불안, 산업 경쟁력 약화 등 중장기적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약가 제도 개편, 이대로 좋은가?' 정책토론회에는 제약업계 대표와 학계 전문가, 환자단체,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해 개편안의 문제점과 보완 방향을 놓고 논의를 벌였다. 이날 토론회는 백종헌·한지아·안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주관했다.
정부는 13년 만에 약가제도 개편안을 발표하며 복제약(제네릭) 약가를 현행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9% 수준에서 4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업계는 "체감상 20%가 넘는 가격 인하"라며 산업 전반에 과도한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재춘 대웅제약 부회장은 "제약산업은 실패를 전제로 10년 이상 장기 투자가 필요한 산업인데, 예측 가능성이 무너지면 어떤 기업도 연구개발에 나설 수 없다"며 "영업이익률이 5%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제품 가격을 일괄적으로 20~25% 낮추면 신약 개발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김영주 종근당 대표이사는 정부가 여전히 국내 제약산업을 '제네릭 중심 구조'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짚었다.
김 대표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은 이미 혁신 중심 생태계로 전환 중이며, R&D 파이프라인 확대와 기술수출 성과, 대기업 투자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며 "과거 방식의 약가 인하는 생산 포기와 고용 불안, 연구개발 지연이라는 부작용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용준 한국제약협동조합 이사장은 중소·중견 제약사의 현실을 언급하며 "제네릭 의약품은 이들 기업의 유일한 캐시카우이자 신약 개발을 위한 재원"이라며 "약가 인하가 강행되면 다수 기업이 적자로 전환되고 고용 축소와 공급망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약가 인하 대상 품목의 70% 이상을 중소·중견 제약사가 보유하고 있다"며 "이들의 수익성이 무너지면 의약품 자급률과 국민 건강권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계에서는 제도 설계의 정합성과 예측 가능성 부족이 문제로 제기됐다.
권혜영 목원대 교수는 "제네릭 약가 인하와 함께 급여 적정성 재평가, 실거래가 연동, 주기적 약가 재평가가 동시에 작동하면 기업 입장에서 중장기 전략 수립이 어렵다"며 "약가 정책은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니라 산업과 의료 현장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려한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단체 역시 약가 인하가 반드시 환자 혜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며 신중론에 힘을 실었다.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는 "의약품 공급 불안이나 품절이 발생하면 환자가 감내해야 할 위험은 약값 인하 효과를 훨씬 웃돈다"며 "특히 중증·만성질환 환자에게는 가격보다 치료의 지속성과 안정적인 공급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현장의 우려를 정책 검토 과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김연숙 복지부 보험약제과 과장은 "고령화와 의료 이용 증가로 약가제도 개선은 불가피한 과제"라면서도 "산업 발전과 환자 보호, 재정 안정을 조화시키는 방향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약가 인하의 방향성 자체보다는 속도와 폭, 적용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기 재정 절감에 치우친 정책보다는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경쟁력과 보건안보를 함께 고려하는 중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