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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골프칼럼] "우리는 늘 PGA 룰을 말해 왔다"

이용재 동양골프 대표 기자  2026.01.26 14: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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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아이언 페이스를 지면에 대고 발로 고정한 상태에서 샤프트 각도를 기준으로 앞에 있는 나무를 넘길 수 있는지를 가늠했다면 누가 봐도 '측정'처럼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이 장면을 글로만 읽으면 대부분의 골퍼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건 룰 위반 아니야?".

그래서 그날 라운드에서 나는 논쟁하지 않기로 했다. 룰 위반이 아니라고 확신했지만 그저 이렇게만 말했다. "확인해보자".

우리의 기준은 늘 같았다. 수년간 함께 골프를 쳐온 멤버들이다. 이 모임의 기준은 항상 똑같다. "우리는 PGA 룰로만 친다."

볼이 러프에 들어가도 앞뒤 풀을 밟지 않고, 디봇에 들어가도 그대로 친다. 특설티도 쓰지 않는다. 편의보다 원칙을 택해온 라운드였다. 문제의 장면 티샷 이후 세컨드 샷 상황에서 내 볼은 페어웨이를 벗어나 앞에 작은나무 뒤에 러프 사이에 멈춰 있었다.

앞으로 샷 진행이 가능한지, 나무를 맞지 않고 공을 빼낼 수 있는지 등을 먼저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볼 옆에서 아이언을 거꾸로 세워 페이스를 지면에 대고 발로 고정한 채 샤프트 각도를 눈으로 가늠했다.

어드레스를 하지도 않았고, 그 방향으로 샷을 하지도 않았고 반대방향 측면으로 안전한 레이업을 했다. 측정이 아니라 탈출 가능 여부를 판단한 행동이었다.

라운드 종료까지 4홀을 남겨둔 시점, 동반자 한 명이 말했다. "그거 룰 위반이야. TV에서 봤어". 그날의 분위기는 급격히 가라앉았고, 논쟁은 감정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같은 말을 반복했다. "확인해보자".

또다른 동반자는 휴대폰 AI 물어본 답변에 '룰 위반'이라 나왔다고 보여줬다. 서로의 확신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이기느냐의 문제도 아니었다. 무엇이 사실이냐의 문제였다. 

서울로 돌아온 다음 날 나는 대한골프협회(KGA)를 포함해 USGA, R&A, KLPGA에 동일한 사실관계로 공식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답변은 대한골프협회  위원 5인의 명확한 회신이었는데 '아이언(피칭웨지)의 페이스를 지면에 대고 발로 고정한 상태에서 샤프트를 기준으로 앞에 있는 나무를 육안으로 가늠한 행위는 규칙 4.3a 및 10.2b에 위반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또 '해당 방향으로 어드레스 후 샷을 한 경우에도 동일하게 위반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울러 규칙 10.2b에서 말하는 '물체를 지면에 내려놓는 행위는 플레이어가 그 물체와 접촉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며 발로 고정한 아이언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측정과 판단은 다르다. 룰이 금지하는 것은 장비를 이용한 측정이다. 그러나 골퍼에게 허용된 골프클럽을 들고 눈으로 판단하는 행위 자체는 금지되지 않는다.

거리측정기 역시 마찬가지다. 일부 대회에서 허용되는 것은 거리 확인까지이며, 고저차(슬로프)는 여전히 눈으로 판단해야 하는 영역이다. '눈으로 보고, 가능성을 가늠하고, 플레이어 스스로 결정하는 것' 그 과정까지가 골프다. 

이 경험은 골프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AI와 영상 등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사실처럼 빠르게 퍼진다. 어디서 봤는지, 누가 말했다는 말이 확인보다 앞선다. 입증되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하지만 막상 결과가 나오면 또 다른 이유를 찾게 되기도 한다.

그 역시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골프에서조차 사실보다 목소리가 앞선다면 그건 더 이상 골프가 아니다. 

우리는 늘 PGA 룰을 말해왔다. 하지만 그날 깨달았다. 골프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룰을 아느냐가 아니라 룰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라는 것을. 골프는 스코어만 남기지 않는다. 사람을 남긴다. 샷이 아니라 사실 앞에서의 태도로 기억되는 사람. 나 역시 이 일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 것보다 사실을 차분히 확인하는 태도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는 그런 골프를 계속 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