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약가 인하는 이익 감소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일터와 보건안보를 함께 뒤흔드는 사안이다. 약가가 10%만 낮아져도 단지 안에서 수백명의 고용이 위협받을 수 있고, 결국 이곳에서 일하는 5000여명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생계가 한꺼번에 흔들리게 된다."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22일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한국제약협동조합 회의실에서 '정부 약가 개편안 관련 노사 현장 기자간담회'를 열고, 현장 근로자와 업계 관계자들의 위기 인식을 공유했다.
이날 간담회가 열린 향남제약단지는 1985년 조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의약품 생산 클러스터다. 36개 제약사 39개 사업장이 입주해 있으며 약 4800명의 전문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노동계와 업계에 따르면 이번 약가제도 개편으로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간 매출 손실은 총 1조2144억원, 기업당 평균 23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영업이익은 평균 51.8%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대기업과 달리 손실을 흡수할 여력이 없는 중소제약사들은 인건비와 고정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 즉각적인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장훈 한국노총 화학노련 의약·화장품분과 의장은 "중소제약사는 제네릭 매출을 기반으로 연구개발과 공장 운영을 동시에 유지해 왔다"며 "약가가 최대 40% 수준으로 인하될 경우 현금흐름이 급격히 악화돼 인건비 절감 외에는 현실적인 대응 수단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영업이익이 절반 이상 줄어들면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투자 축소 역시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는 약가 인하가 시행될 경우 중소제약사의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가 50%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GMP(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 유지와 품질 관리 역량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생산 중단과 품목 정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서정오 한국제약협동조합 전무는 "매출이 10%만 줄어도 당장 500명의 동료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며 "3인 가구 기준으로 보면 1500명이 생계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셈"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제네릭을 통해 확보한 수익은 신약 개발을 위한 R&D 비용이자 GMP 시설 유지를 위한 필수 재원"이라며 "약가를 해외 기준으로 일괄 적용해 40%까지 인하할 경우 평균 4%대 이익률로 버티고 있는 중소·중견 제약사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과거 약가 인하 정책의 부작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이동인 화학노련 의약·화장품분과 사무국장은 "2012년 약가 인하 이후 중소제약사들은 매출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비급여 의약품과 코프로모션 품목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며 "그 결과 국민 의료비 부담이 오히려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1999년과 2012년의 일괄 약가 인하 이후 중소제약사를 중심으로 매출 감소와 R&D 투자 위축, 비급여 의약품 비중 확대라는 구조적 왜곡이 반복됐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고용 불안이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오상준 화학노련 경기남부 의장은 "약가가 깎이면 원가 압박으로 인해 더 저렴한 원료 사용을 고민할 수밖에 없고, 여기에 고용 불안까지 겹치면 의약품 품질 관리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보다 산업계와 노동계, 협회가 함께 참여하는 논의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연홍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이번 개편안은 산업 현장의 구조와 여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일방적인 약가 인하는 장기적으로 연구개발 투자 위축과 산업 경쟁력 저하, 양질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비대위와 노사 단체는 성명을 통해 약가제도 개편안의 전면 재검토와 함께 노사정 협의기구 구성, 고용 유지 의무를 포함한 법·제도적 장치 마련을 정부와 국회에 촉구했다.
이들은 "급격한 약가 인하가 필수의약품과 국산 전문의약품 생산 위축으로 이어질 경우 고가 수입 의약품 의존도가 높아지고, 그 부담은 결국 국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며 "국내 제약산업의 생산 기반과 고용 안정을 위해 정부는 일방적인 약가 인하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