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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집으로 버티는 노후, 주택연금의 두 얼굴

김주환 기자 기자  2026.01.20 14: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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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서울 외곽 단지에 거주하는 70대 부부 A씨는 매달 120만원의 주택연금을 수령한다. 국민연금만으로는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선택한 제도다. 집을 팔지 않고도 거주를 유지할 수 있고, 종신 수령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택연금은 고령층에게 분명 매력적인 선택지다.

주택연금은 지난 2007년 급속한 고령화와 노후소득 공백 문제를 배경으로 도입됐다. 집은 있지만 현금이 없는 고령층에게 주거 안정과 생활비를 동시에 제공하겠다는 취지였다. 도입 초기 연간 가입자는 수백 명 수준에 그쳤지만, 이후 제도는 빠르게 확산됐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주택연금 누적 가입자 수는 2015년 3만명을 넘어선 뒤 2019년 7만명, 2021년 9만명을 돌파했다. 2023년에는 12만명을 넘어섰다. 제도 도입 16년만에 가입자수는 계속 증가 추세다. 숫자만 놓고 보면 주택연금은 고령사회에 안착한 대표적 정책 수단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증가세를 곧이곧대로 '제도의 성공'으로만 해석해도 될까. 주택연금 가입자 확대는 동시에 우리가 노후를 지탱할 다른 소득 기반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는 현실을 드러낸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노령연금 수급자의 평균 월 수령액은 2023년 기준 60만원대 중반에 머물러 있다. 반면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제시한 노인 단독가구 기준 월 최소생활비는 130만원 안팎이다. 국민연금만으로는 기본적인 생활 유지조차 쉽지 않은 구조다.

퇴직연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상당수가 여전히 일시금으로 수령되면서 노후에 안정적인 소득 흐름을 제공하는 연금 기능은 제한적이다. 이 격차를 메우는 수단으로 주택연금이 선택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입자 증가 추세는 제도의 매력보다는 연금 체계 전반의 한계가 누적된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주택연금 가입자 증가를 '고령층의 합리적 자산 운용 선택'으로만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택연금은 더 이상 여유 자산을 활용한 선택지가 아니라, 국민연금·퇴직연금이 감당하지 못한 노후의 최소선까지 밀려난 뒤 도달하는 최후의 안전망에 가깝다. 가입자가 늘고 있다는 사실은 제도의 매력보다는, 그 이전 단계의 연금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주택연금의 평균 월 수령액이 100만원 안팎에 그친다는 점은, 이 제도가 노후를 풍요롭게 하기보다 연금 공백을 간신히 메우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장치가 주택을 보유해야 작동한다는 점이다. 주택연금은 무주택 고령층이나 저가 주택 보유자에게는 사실상 접근이 어렵다. 주택연금 가입자가 늘어날수록 노후의 자산 격차가 제도적으로 고착화될 가능성도 커진다. '집 있는 노후'와 '집 없는 노후'의 차이가 생활 안정의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다.

주택연금이 떠안고 있는 역할의 무게도 점점 커지고 있다. 가입자가 늘수록 공적 보증 부담 역시 확대된다. 주택연금은 집값 하락 시 일정 부분의 손실을 공공이 떠안는 구조다. 집값이 우상향하던 시기에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주택시장 변동성이 커질수록 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점검은 불가피하다. 주택연금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결국 부동산 시장의 장기 흐름에 대한 전제가 깔려 있는 셈이다.

주택연금 확대는 단순한 복지 수단의 확장이 아니다. 이는 노후 생존의 조건을 연금이 아니라 부동산 보유 여부에 연동시키는 구조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강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주택을 가진 노후는 연금을 담보로 삼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노후는 제도 밖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상속 구조 변화도 간과하기 어렵다. 주택연금 이용 가구가 늘어날수록 주택을 통한 자산 이전은 줄어든다. 이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일 수 있으나, 사회 전체로 보면 자산 축적 경로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집을 물려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집을 담보로 잡히지 않으면 노후를 버티기 어려운 구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주택연금 가입자 수 증가라는 숫자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하나는 제도가 고령층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만큼 다른 노후소득 안전망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택연금이 늘어날수록 이 제도가 대신하고 있는 빈자리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주택연금의 미래를 논할 때 단순 가입 요건 완화나 수령액 조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퇴직연금이 각자의 역할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주택연금 의존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주택연금은 분명 필요한 제도다. 그러나 가입자가 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곧 제도의 건강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집을 담보로 한 노후가 당연한 선택이 되는 사회가 과연 지속 가능한지, 숫자가 늘어날수록 더 냉정하게 질문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