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다시 한 번 방향을 묻는 시점에 들어섰다. 시장은 더 이상 빠르게 커지지 않고, 전동화 전환 역시 당초 기대했던 속도를 잃고 있다. 성장과 전환이라는 두 축이 동시에 흔들리는 상황에서,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향후 산업 지형을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이런 진단은 16일 서울 서초동 자동차회관에서 열린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신년 세미나에서 보다 구체적인 수치와 구조적 분석으로 제시됐다.
'2026년 글로벌 자동차시장 전망'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HMG경영연구원 양진수 모빌리티산업연구실장(상무)은 글로벌 수요 둔화와 전동화 전환 지체가 겹치며 레거시 완성차 업체들의 전략적 딜레마가 한층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글로벌 수요
HMG경영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자동차시장은 외형상 성장했다. 미국과 서유럽 등 선진시장의 회복세는 둔화됐지만, 중국의 이구환신 소비촉진 정책과 인도의 소비 여건 개선이 이를 상쇄하며 글로벌 수요는 8776만대, 전년 대비 3.6% 증가를 기록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2026년 전망치는 8793만대로, 증가율은 0.2%에 불과하다. 일부 지역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시장의 둔화가 전체 시장의 발목을 잡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글로벌 수요가 더 이상 '확장 국면'이 아닌 '유지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의미다.
지역별 전망을 보면 이런 구조는 더욱 선명해진다. 미국은 1593만대(-2.3%)로 감소가 예상되며, 서유럽은 1514만대(+1.5%)로 제한적인 반등에 그칠 전망이다. 중국은 2447만대(+0.5%)로 사실상 정체 국면에 들어서고, 인도(482만대, +5.6%)와 아세안(319만대, +3.8%)이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보이지만 글로벌 판도를 뒤집기에는 규모의 한계가 분명하다. 국내 시장 역시 164만대(-0.6%)로 소폭 감소가 예상됐다.
미국 시장의 경우 점진적인 금리 인하와 자동차 대출이자 세액 공제 등 긍정 요인이 존재하지만, 관세 부과에 따른 차량가격 및 보험료 상승이 이를 상쇄할 것으로 분석됐다. 그 결과 미국 자동차시장은 2023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1500만대 수준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중국도 소비 진작 정책은 유지되겠지만, 높은 청년 실업률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과 신에너지차(NEV) 취득세 감면 혜택 축소가 맞물리며 상승 여력을 제한할 것으로 전망됐다.
◆전동화 시장 '속도 조절' 국면
전동차(BEV+PHEV, HEV 제외) 시장 역시 같은 흐름을 보인다. 2025년 글로벌 전동차 시장은 2143만대로 전년 대비 24.0% 성장했다. 그러나 이는 중국과 일부 신흥시장의 누적 성장 효과가 반영된 결과에 가깝다.
2026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미국과 중국에서의 성장 동력 약화 그리고 전년도의 고성장에 따른 기저효과로 인해 전동차 시장 증가율은 10.1% 수준으로 둔화되며, 시장 규모는 2359만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은 IRA(Inflation Reduction Act) 정책 변화로 전기차 세제혜택이 축소되고 연비 규제가 완화되면서, 완성차 업체들이 전동화 전략을 재조정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이로 인해 미국 전동차 시장은 153만대(-0.8%)로 오히려 감소할 가능성이 제시됐다.
서유럽은 상대적으로 다른 그림이다. 배출가스 규제 강화와 주요 국가들의 구매보조금·세제혜택이 유지되는 가운데 폭스바겐과 르노 등 기존 완성차 업체, 현지 생산을 확대하는 중국 업체들의 신차 공세가 맞물리며 481만대(+18.5%) 성장이 예상됐다.
중국은 전동차 최대 시장이라는 지위를 유지하지만, BEV 성장세가 크게 둔화되며 PHEV와 EREV의 증가가 이를 일부 상쇄하는 구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중국 전동차 시장은 1398만대(+5.9%)**로 제한적인 성장에 머물 전망이다.
◆레거시 완성차 업체의 딜레마
양진수 실장은 이런 수요, 전동화 전망을 종합해 2026년 자동차 산업의 핵심 키워드로 '레거시 완성차 업체들의 전략적 딜레마 심화'를 제시했다. 시장은 더 이상 빠르게 커지지 않는데, 미래를 위한 투자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익성 압박의 요인은 복합적이다. 중국 업체들의 글로벌 진출 가속화, SDV(Software Defined Vehicle) 및 전동화 전환을 위한 막대한 투자,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로 인한 가격 경쟁 심화에 더해 최근에는 미국의 관세 부과와 보호무역 강화라는 외부 변수까지 겹쳤다. 이는 단기적 부진을 넘어 구조적 복합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HEV 시장의 재부상도 새로운 경쟁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본 업체들은 기존 HEV 기술 우위를 더욱 강화하고 있고, 유럽 업체들 역시 전동화 속도를 조절하며 HEV 라인업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기차 중심이었던 중국 업체들까지 기술 이전 등을 통해 HEV 시장에 본격 진입하면서 경쟁 강도는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미래 기술 투자에 대한 압박도 만만치 않다. 로보택시 시장이 기술 검증 단계를 넘어 상업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미국 빅테크 기업들과의 기술 격차가 기존 완성차 업체들에게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신규 시장 진입의 문제를 넘어, 기존 차량 판매 구조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로 지목됐다.
스마트카 기술 확산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고급 차종의 차별화 요소였던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중국 업체들을 중심으로 저가 모델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테슬라의 보급형 모델 출시와 자율주행 서비스 확대가 맞물리며, 소프트웨어 대응 속도 자체가 생존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6년, 선택의 문제로 압축
이번 세미나가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2026년 자동차시장은 성장 국면도, 전환 가속 국면도 아니다. 제한된 성장 속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미룰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국면이다. 단기 수익성 방어와 장기 미래 투자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끌고 가야 하는 레거시 완성차 업체들에게, 2026년은 전략의 우선순위가 그대로 성적표로 돌아오는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수요가 시장을 키워주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자동차 산업의 다음 장은 선택의 질이 결과를 가르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