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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정의선 회장의 10일, 현대차그룹의 다음 10년

중국·미국·인도 방문…기술·공급망·생산 동시에 점검 새해 첫 행보

노병우 기자 기자  2026.01.14 10: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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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26년 새해 벽두 선택한 첫 일정은 △중국 △미국 △인도였다. 이동거리만 놓고 봐도 숨 가쁜 일정이지만, 이 동선은 현대차그룹의 전략 지형을 그대로 반영한 선택에 가깝다. 

공급망과 에너지, 기술 표준 그리고 생산과 시장. 글로벌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핵심 변수들이 모여 있는 세 나라를 짧은 기간 안에 모두 직접 확인했다는 점에서 이번 행보는 상징성이 분명하다.

이번 일정은 광폭 경영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하기에는 다소 단순하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왜 지금 이 세 나라였는가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장기화되고, 전기차와 AI를 둘러싼 산업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은 선택을 미룰 수 없는 국면에 들어섰다. 

정의선 회장의 10일은 단순한 현장방문이 아니라 현대차그룹이 어디에 자원을 배치하고 어떤 리스크를 감내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점검 과정으로 읽힌다.

중국과 미국, 인도는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닌다. 중국은 여전히 글로벌 전기차와 배터리, 수소 산업의 핵심 공급망이 집중된 지역이다. 미국은 AI와 반도체, 로보틱스를 중심으로 미래 기술 표준을 주도하는 곳이다. 인도는 세계 최대 인구를 기반으로 한 성장 시장이자, 중국 이후 가장 현실적인 글로벌 생산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이 이 세 나라를 연이어 찾았다는 사실은, 현대차그룹이 더 이상 특정 지역이나 단일 전략에 의존하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기술은 미국, 공급망은 중국, 성장은 인도라는 분산된 전략 구조를 직접 점검하고 재정렬하려는 의지가 이번 일정의 출발점이었다.

◆중국, 협력의 실익을 계산하다

먼저 정의선 회장의 중국 방문은 낙관도 비관도 아닌, 현실적인 판단에 가깝다. 중국은 여전히 지정학적 리스크와 정책 불확실성이 큰 시장이지만, 전기차와 배터리, 수소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특히 배터리와 원자재, 수소 인프라를 포함한 에너지 산업 전반에서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전략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포럼 참석을 계기로 정의선 회장은 세계 최대 배터리 기업 CATL, 중국 국영 에너지 기업 시노펙, 기아의 합작 파트너인 위에다그룹 최고경영진과 연이어 만났다. 이 만남의 핵심은 확대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협력 가능성이다.

그 중에서도 수소 분야 논의는 의미가 크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수소전기차 시장에서 사실상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중국 광저우에 구축한 HTWO 거점을 통해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현지 생산하고 있다. 

최근 중국이 녹색수소를 전략 산업으로 본격 육성하는 흐름 속에서 현대차그룹은 중국을 단순한 판매 시장이 아니라 수소 기술을 실증하고 사업 모델을 검증할 수 있는 무대로 보고 있다.

전기차 전략 역시 과거와는 결이 다르다. 현대차는 중국 전용 전기차 모델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라인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기아 역시 EV 중심 전략을 병행한다. 무리한 판매 확대보다 현지 시장에 맞춘 제품과 기술 협력 중심 전략으로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방문은 중국 전략의 재정렬을 상징한다.

◆미국, 모빌리티 생태계 한 축으로

미국 일정은 현대차그룹의 미래 전략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 정의선 회장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를 직접 참관하며 △AI △로보틱스 △모빌리티 기술의 흐름을 점검했다.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 퀄컴 경영진 등 글로벌 빅테크 리더들과의 면담이 이어졌다. 이 만남은 단순한 협력 논의라기보다, AI 기술 경쟁에서 완성차 기업이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탐색에 가깝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공개와 모빌리티 로봇 모베드의 CES 최고혁신상 수상은 현대차그룹의 로보틱스 전략이 실험 단계를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특히 딥마인드와의 협력은 로봇을 자동화 설비가 아닌 지능을 갖춘 물리적 존재, 즉 피지컬 AI로 진화시키겠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한다.

엔비디아와의 협력도 같은 맥락이다. 대규모 GPU 공급 계약과 AI 기술센터 논의는 자율주행과 제조 AI, 로보틱스를 아우르는 장기 협력을 전제로 한다. 현대차그룹은 이 과정에서 기술을 구매하는 기업이 아니라 AI 기반 모빌리티 생태계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인도, 숫자 넘어 '다음 30년' 준비

이번 일정의 마지막은 인도다. 정의선 회장은 첸나이, 아난타푸르, 푸네에 위치한 현대차·기아 공장을 직접 찾아 생산과 판매, 중장기 전략을 점검했다. 인도는 이제 현대차그룹에게 신흥 시장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성장 축 중 하나다.

1996년 진출 이후 30년 동안 현대차그룹은 인도에서 약 20%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며 현지에서 강한 브랜드 신뢰를 구축했다. 여기에 GM으로부터 인수한 푸네공장이 본격 가동되면서, 인도 내 생산능력은 연간 150만대 규모(첸나이공장 82만4000대, 아난타푸르공장 43만1000대 등)로 확대된다.

푸네공장은 현대차그룹의 인도 전략을 상징한다. 소형 SUV 베뉴를 시작으로 인도를 글로벌 소형 SUV 생산 거점이자 수출 허브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은 인도를 단순한 소비 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제조 기지로 격상시키겠다는 선택을 의미한다.

정의선 회장이 강조한 '홈브랜드 전략'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 품질과 서비스, 현지 맞춤형 제품 그리고 사회공헌까지 포함한 신뢰 구축 없이는 인도 시장에서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는 판단이다. 임직원과 가족들을 직접 격려한 행보는 인도 전략이 단기 실적이 아닌 장기적 정착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정의선 회장의 10일은 세 나라를 잇는 이동이 아니라 하나의 전략을 입체적으로 점검한 과정이었다. 중국에서는 공급망과 에너지 협력의 실익을 계산했고, 미국에서는 AI와 로보틱스 중심의 미래 기술 경쟁 구도를 확인했으며, 인도에서는 생산과 시장의 지속가능성을 재확인했다.

이 세 축은 분리된 선택이 아니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기술 △공급망 △생산이라는 세 변수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은 세 요소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정의선 회장의 새해 첫 행보는 그 복잡한 방정식을 직접 풀어보려는 시도였다.

이제 남은 질문은 실행이다. 이번 점검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차량과 공장, 기술과 시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로 얼마나 빠르게 이어질 것인가. 2026년의 시작, 현대차그룹은 이미 그 답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