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토요타 가주 레이싱(TOYOTA GAZOO Racing)'이 다시 '가주 레이싱(GAZOO Racing)'으로 돌아간다. 표면적으로 보면 브랜드 명칭 조정에 불과해 보이지만, 이 결정의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이는 단순한 리브랜딩이 아니라 토요타가 모터스포츠를 바라보는 태도 자체를 재정의하는 선언에 가깝다.
"모터스포츠를 통한 더 좋은 차 만들기(Making Ever-Better Cars through Motorsports)."
명칭 변경의 이유는 명확하다. 이 문장은 슬로건이 아니라 토요타가 지난 20년 가까이 되풀이해온 자기반성의 결과물이자 방향성이다.
가주 레이싱의 시작은 성공담이 아니라 뼈아픈 경험이었다. 2007년 당시 토요타자동차 부사장이던 토요다 아키오 회장은 자신의 운전 스승 나루세 히로무와 함께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 레이스에 도전한다. 그러나 이 도전은 회사의 공식 활동조차 아니었다.
TOYOTA라는 이름을 쓸 수 없었던 그들은 팀 가주(Team GAZOO)라는 이름으로 출전했고, 토요다 아키오 역시 모리조(Morizo)라는 가명으로 운전석에 앉아야 했다. 레이스는 완주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트랙 위에서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냉혹했다. 유럽 제조사들은 이미 개발 중인 차량을 레이스 현장에서 시험하고 있었지만, 토요타에는 시험할 스포츠카 자체가 없었다.
"토요타로서는 이런 자동차를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경쟁 차량들에 추월당할 때마다 체감했던 이 감각은, 단순한 패배감이 아니라 기술과 전통이 단절되고 있다는 위기감으로 남았다.
토요타가 모터스포츠를 단순한 경기로 보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스포츠카 개발은 빠른 차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극한 환경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기본기와 기술을 축적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끊기면 기술은 전승되지 않는다.
토요타는 이를 일본 이세 신궁의 식년천궁(Shikinen Sengu)에 빗댄다. 20년마다 신궁을 새로 짓는 이 의식은 건물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짓는 기술과 사람을 잇기 위한 행위다. 스포츠카 제조 역시 마찬가지다. 한 세대가 단절되면, 그 다음은 없다.
이 위기의식 속에서 시작된 프로젝트가 바로 렉서스 LFA였다. 뉘르부르크링을 개발 거점으로 삼고, 수익성 논란 속에서도 500대 한정이라는 조건으로 강행된 이 프로젝트는 토요타가 약 20년 만에 내놓은 첫 정통 스포츠카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LFA 개발이 마무리되던 시점에 나루세 히로무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이대로 가자"라는 승인만을 남긴 채였다. 이 사건은 토요다 아키오에게 모터스포츠와 인재 육성의 의미를 더욱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2015년, 토요타는 사내에 흩어져 있던 △TOYOTA Racing △LEXUS Racing △GAZOO Racing을 통합해 '토요타 가주 레이싱(TOYOTA GAZOO Racing)'이라는 이름을 공식화한다.
이는 2007년 토요타라는 이름을 쓰지 못했던 활동들이 마침내 회사의 간판을 달게 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초기의 뼈아픈 기억은 조직 속에서 점차 희석되기 시작했다. 대기업의 정식 체계 안으로 들어오면서 '왜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은 점점 뒤로 밀려났다.
전환점은 세계 랠리 선수권 대회(World Rally Championship, WRC)였다. 토요타는 WRC 복귀를 계기로 모터스포츠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과거에는 양산차를 만든 뒤 이를 레이스카로 다듬었다면, 이제는 '레이스에서 이길 수 있는 차를 먼저 만들고, 그 차를 양산차로 만든다'는 순서를 택했다.
이 철학의 결정체가 바로 GR 야리스(Yaris)였다. WRC에서의 경험을 그대로 담아낸 이 차는 단순한 고성능 모델이 아니라 토요타가 다시 자사 개발 스포츠카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한 상징이었다. 이후 GR 코롤라(Corolla)로 이어지며, 토요타는 다시 스스로 스포츠카를 만드는 제조사로 복귀한다.
"가주 레이싱은 누구의 이름인가?"
이제 토요타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TOYOTA를 떼어내고 GAZOO Racing으로 돌아간 이번 결정은 모기업의 간판보다 철학과 태도를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선택이다. 이는 규모가 아니라 자세의 문제이며, 조직이 아니라 사람과 경험을 중심에 놓겠다는 선언이다.
가주 레이싱은 WRC와 같은 최상위 모터스포츠뿐 아니라 고객이 직접 참여하는 커스터머 모터스포츠(Customer Motorsports)까지 아우르며 기술과 인재를 동시에 단련하는 구조를 유지한다. 2007년 팀 가주 결성 이후 곧 20주년을 맞이하는 이 조직이 다시 초심을 강조하는 이유다.
토요타는 앞으로도 가주 레이싱이라는 이름 아래 더 좋은 차 만들기와 인재육성을 병행해 나가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여전히 "토요타로서는 이런 차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정면으로 마주했던 그날의 기억이 있다.
이름은 짧아졌지만, 그 이름이 담고 있는 무게는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가주 레이싱으로의 회귀는 토요타가 다시 모터스포츠의 본질을 붙잡았다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