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2025년 금융권의 '꼬리 자르기'를 막기 위해 도입된 책무구조도가 시행 1년을 맞았지만, 책임은 여전히 아래로 향하고 있다. 내부통제 강화 기조가 이어졌지만, 금융사고는 이를 비웃듯 반복되고 있다.
◆책무구조도 도입 1년, 꼬리 자르기 여전
금융당국이 지난 1월3일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리는 '책무구조도'를 본격 시행한 지 1년가량이 지났다.
과거 금융권에서는 대형 사고가 발생해도 임원이나 대표이사 대신 실무자가 책임을 지는 사례가 빈번했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꼬리 자르기' 관행을 막고, 사고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책무구조도를 도입했다.
책무구조도는 현행법에 근거가 마련돼 있다.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의무인 셈이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약칭 금융사지배구조법)'에 따르면 금융회사 대표이사는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임원의 직책별로 책무를 배분한 문서, 이른바 책무구조도를 마련해야 한다. 또 내부통제 등의 전반적 집행과 운영에 대한 책임자로서 총괄적인 관리 조치를 실효성 있게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책무구조도는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각 임원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한 문서다.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하려는 제도의 취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같은 제도가 도입된 지 약 1년이 지났음에도 꼬리 자르기 관행은 형태만 바꾼 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책무구조도를 도입한 금융지주·은행 40개사의 내부통제 실태를 점검한 결과, 대다수 금융회사는 대표이사가 총괄 관리의무를 소관 임원에게 위임한 뒤 이행 결과를 보고받는 형태로 운영됐다.
특히 일부 회사에서는 대표이사의 총괄 관리 의무 중 하나인 '임원에 대한 점검'조차 임원에게 위임해 '셀프 점검'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책임이 해당 임원에게 전가될 소지가 있는 회사도 있었다"며 "대표이사가 총괄 관리의무의 일부 항목을 임원의 책무기술서에 기재하는 방식으로 위임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실효성 있는 책무구조도 기반의 내부통제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금감원은 점검 결과 확인된 보안 필요 사항을 설명회 등을 통해 업계에 안내하겠다"고 강조했다.
◆내부통제 또 뚫렸다…진화한 금융사고
내부통제 강화라는 구호 속에 금융권의 2025년이 시작됐지만, 은행권 금융사고는 올해도 반복됐다.
공시를 취합한 결과, 올해 국내 4대(신한·국민·하나·우리) 은행에서 발생한 10억원 이상의 금융사고는 총 21건이다. 사고 금액은 약 925억원에 달한다.
2025년 금융사고 금액이 가장 큰 곳은 약 536억원을 기록한 하나은행이다. 4대 은행 전체 사고 금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반면 우리은행이 공시한 금융사고는 0건이다.
단순히 사고 금액이나 건수의 차이를 넘어, 올해 발생한 금융사고는 은행권에 새로운 과제를 남겼다. 금융사고의 질적 변화가 뚜렷하게 관측되고 있어서다.
올해 은행권 금융사고의 가장 큰 특징은 수법의 '지능화'와 '외부 공모'로 요약된다. 과거 금융사고는 내부 직원의 단순 횡령에 그쳤다면, 2025년은 외부인과 결탁하거나 정교하게 위조된 서류를 통해 대출을 일으키는 사기형 배임이 급증했다.
브로커가 개입해 담보 가치를 부풀리거나, 허위 부동산 계약서를 제출해 거액의 대출을 받아 가로채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문제는 이러한 유형의 범죄가 기존의 감시 시스템으로 적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23일 드러난 29억6440만원 규모의 금융사고 역시 은행 자체 감사 시스템이 아닌 수사기관의 통보를 통해서야 뒤늦게 인지됐다. 이미 사고 발생 후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는 시중은행에서 공들여 구축한 내부통제 시스템이 무력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현행 심사 단계의 검증 시스템에 심각한 구멍이 뚫려 있음을 시사한다.
◆금융지주 회장단 인선...변화 대신 '안정'
이같은 내부통제 허점에도 금융지주사들의 연말 인사 키워드는 변화보다 안정이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조직을 흔들기보다는 검증된 리더십을 통해 위험 관리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곳은 하나금융지주(086790)다. 하나금융은 지난 3월 서울 명동 사옥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함영주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안을 의결했다. 이로써 함 회장은 오는 2028년 3월까지 하나금융을 더 이끌게 됐다.
함 회장의 연임 배경에는 역대급 실적이 꼽힌다. 함 회장 취임 첫해였던 지난 2022년 하나금융지주는 순이익 3조5706억원의 실정을 거뒀다. 이후 매년 역대 최대 순이익을 경신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3분기 누적 순이익 3조4334억원을 기록하며 사실상 '4조 클럽'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러한 실적에 하나금융 최대주주인 국민연금 역시 함 회장 연임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반기에는 신한금융지주(055550)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신한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2월4일 진옥동 회장을 차기 회장 단독 후보로 추천했다. 진 회장 역시 재임 기간 성과를 인정받아 연임이 결정됐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역대 최대인 4조4502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올해에는 세 분기 만에 이미 지난해 실적을 넘어선 4조4609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나아가 핵심 계열사인 신한은행은 지난해 '리딩뱅크' 자리를 탈환한 상태다.
마지막 퍼즐은 우리금융지주(316140)가 맞췄다. 우리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는 지난 29일 차기 회장 후보로 임종룡 현 회장을 단독 추천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금융권 경영승계 과정에 대해 "가만 놔두니까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긴다"고 지적한 이후 나온 첫 연임 사례다.
이번 연임은 임 회장이 증권·보험사를 인수해 종합금융그룹 체제를 완성한 데다, 실적 면에서도 성장을 이끈 점이 주효했다. 아울러 우리은행은 4대 은행 중 유일하게 올해 공시 대상(10억원 이상) 금융사고 '0건'을 기록했다. 그룹 실적과 함께 건전성 관리 제고를 이뤄낸 점이 임추위원 7명의 전원일치 찬성을 이끌었다.
이로써 국내 4대 금융지주는 기존 체제로 2026년을 맞이하게 됐다. 다만 정부가 공개적으로 경영승계 과정에 경고장을 보낸 만큼, 2기 체제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