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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페인트 넘어 소재·ESG로" 조광페인트, 오픈이노베이션 성과 발표

항바이러스 도료·전고체 바인더·치매 컬러 팔레트·화학사고 예방 AI…ESG·안전·신사업 방향 제시

김우람 기자 기자  2025.12.04 16: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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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조광페인트(대표 양성아, 004910)가 PoC를 중심에 둔 오픈이노베이션 1년 성적표를 내놨다. 페인트 제조사 이미지를 벗어나 △소재 △ESG △안전 △디지털 전환까지 영역을 넓히겠다는 의지가 행사 전반에 드러났다.


4일 조광페인트는 서울 강남 구글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조광페인트 오픈이노베이션 성과 공유회'를 열었다. 양성아 조광페인트 대표를 비롯한 협업 기업, 지자체·지원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지난해 진행한 PoC 결과와 향후 전략을 나눴다.

행사에 앞서 양성아 대표는 "조광페인트가 공식적으로 오픈이노베이션을 시작한 지 4년이 됐다"며 "오픈이노베이션은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고 검증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기술과 파트너와 함께 갈지 방향이 훨씬 선명해졌다"라며 "지속적인 관심과 도전이 새로운 시장 기회를 찾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 발표에 나선 기업들의 시도가 산업을 어떻게 바꿀지 지켜봐 달라"라며 "조광페인트도 현장에서 나온 결과를 실제 사업과 ESG 활동에 연결하겠다"고 밝혔다.

첫 번째 세션 '기술, 찾아나서다'에서는 소재 중심 PoC 사례가 소개됐다.

윤경호 조광페인트 신사업실 선임은 비즈큐어와의 협업 배경을 먼저 설명했다. 그는 "비즈큐어 핵심 키워드는 '빛'이라고 짚었다. 이어 "자외선이 아닌 가시광선을 이용해 경화하는 원천 기술을 보유했다"며 "친환경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기술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양사는 당초 디스플레이용 투명 점착제 PoC를 진행했다. 가시광 경화형 점착제를 활용해 차세대 디스플레이 공정에 들어갈 소재를 검증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협의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방향을 바꿨다.


윤 선임은 "비즈큐어의 가시광 경화 기술을 조광페인트가 가진 항바이러스 도료 기술과 결합하면 더 큰 시장을 볼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기존 점착제 PoC를 과감히 중단하고 항바이러스 도료 중심의 신규 PoC로 전환했다.

이석주 비즈큐어 대표는 "기존 고분자 합성은 열과 자외선에 의존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라며 "고분자를 만들기에는 편리하지만, 고온 공정과 자외선은 환경과 인체에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비즈큐어는 가시광 영역을 흡수하는 광촉매와 특수 개시제를 조합해 고분자를 합성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회사는 이 기술을 기반으로 디스플레이용 자외선 차단 투명 점착제를 개발했다. 기존 상용 점착제와 비교해 자외선 차단 성능이 뛰어나고, 가시광 투과율은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LG디스플레이 등과 검증을 진행 중이다.

조광페인트와 비즈큐어가 함께 진행 중인 항바이러스 도료 PoC는 1차 실험 단계에서 유의미한 항균·항바이러스 효과를 확인했다. 병원·우체국·은행 등 공공 공간 내 벽·문·손잡이 등 접촉 면에 적용하는 시나리오가 논의되고 있다. 이 대표는 "지속적인 항균 효과와 시공 편의성을 모두 고려한 솔루션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같은 세션에서 소개된 ASET과의 협업은 2차전지 안전과 직결된 내용이다. 조광페인트 관계자는 "ASET과는 '안전'과 '기술 선점'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만났다"고 말했다. 전기차·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이슈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전고체 전해질용 바인더와 공용매를 함께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박석정 ASET 대표는 리튬이온 배터리가 폭발하는 구조부터 짚었다. 그는 "충·방전을 반복하면 일부 리튬이 금속 형태로 변하면서 덴드라이트가 자란다"라며 "이 금속 침이 기존 분리막을 뚫으면 내부 쇼트와 열폭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ASET은 분리막을 세라믹·고분자 복합 전고체 전해질막으로 대체하는 전략을 택했다. 박 대표는 "우리가 개발하는 막을 쓰면 수명을 다한 배터리라도 내부 쇼트에 대한 안전성이 크게 높아진다"며 "수명은 다해도 폭발은 안 하는 배터리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는 새 공용매를 기준으로 한 신규 바인더 조성 개발과 파일럿 양산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광페인트는 "배터리 소재 사업에서 ASET과의 협업을 통해 전고체 전지 시대를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세션 '수요, 찾아오다'에서는 사회적 가치와 색채 전문성을 결합한 프로젝트가 소개됐다.

이수전 조광페인트 팀장은 "조광페인트는 '지구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조광' 슬로건 아래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 중"이라며 "단순 기부보다 조광페인트의 색채 역량을 살린 프로젝트를 고민하던 중, 치매 친화 공간을 연구하는 '이이장'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광페인트 건축 색채팀은 색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건축물 외관·실내 색을 제안하는 조직이다. 최근에는 고령자·색각 이상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컬러 유니버설 디자인(CUD)에 관심을 넓히고 있다.

이 팀장은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치매 어르신이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하도록 돕는 색채 디자인이 중요해졌다. 색을 통해 생활 환경을 조금이라도 더 친화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이번 PoC를 추진한 이유"라고 말했다.

조광페인트·이이장·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는 공동 자문단을 꾸려 치매 당사자를 위한 6종 컬러 팔레트를 개발했다. 후보 색을 추릴 때 치매 어르신 대상 설문, 색 선호·비선호 조사, 색채인지 테스트를 함께 진행했다.

이혜숙 이이장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의 진짜 목표는 치매 어르신이 지역에서 소외되지 않고 커뮤니티 안에서 일상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영국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영국 정원 전시에서 치매 친화 정원과 색채 디자인을 보고 큰 영감을 받았다"라며 "색이 치매 어르신의 불안을 낮추고, 공간 인지를 돕는 장면을 직접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명도반사율(LRV) 개념이 핵심 기준이 됐다. LRV는 색이 가시광선을 얼마나 반사하는지 수치로 나타낸 값이다. 이 대표는 "바닥·벽·문 등 인접한 면의 LRV 차이가 최소 30포인트 이상은 벌어져야 치매 어르신이 경계와 방향을 쉽게 인식하고, 낙상 위험도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실증 대상은 부산 연제구 '부산돌봄' 건물 옥상정원과 실내 '나눔터', 지하 야외 마당이다. 옥상정원은 계절별 식재 색감을 반영해 봄·가을을 떠올리는 녹색·주황·분홍 톤을 활용했다. 정원과 연결된 실내 나눔터는 전기실 출입문 등 위험 요소가 있는 벽면에 색을 집중 적용해 시선을 분산시키도록 설계했다.

지하 야외 마당에서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특성을 고려해 계단 모서리·단차·탱크 설비 주변에 LRV 대비가 높은 색을 배치했다. 어두운 공간에서도 이동 경로를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설계다.

이 대표는 "치매 친화 색채 디자인은 이제 시작 단계"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례를 국내외 학회와 치매 전담 시설에 공유하고, 치매 친화 공간 컬러 가이드라인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마지막 발표는 화학 안전과 인공지능을 결합한 PoC 사례였다. 조광페인트 관계자는 "삼성 불산 누출 사고, 최근 충북 음성 화학사고처럼 대형 화학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며 "조광페인트 역시 다양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제조사로서 사고 발생 이후 대응이 아닌, 사전 예측과 예방 체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앤필그림은 화학사고 예측과 화학물질 데이터 자동화 솔루션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김호현 앤필그림 대표는 대학 교수와 창업자를 겸한다. 그는 화학물질안전원·환경공단 등과 위해성 평가,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전문가다.

김 대표는 "화학사고는 평소에는 체감이 크지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기업 존립을 흔드는 이슈"라며 "조광페인트는 큰 사고 사례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준비할 여유가 있다. 데이터를 쌓고, 예측 모델을 만드는 데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PoC는 두 갈래로 진행됐다. 첫 번째는 공장 기상 정보와 공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화학사고 확산 가능성을 예측하는 플랫폼이다. 김 대표는 "국가 R&D로 개발한 예측 모델 3종을 활용해 조광페인트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델에는 바람 방향·풍속·온도·습도 등 기상 요소와 저장 탱크·배관 조건 등이 반영된다.

그는 "기존 상용 프로그램보다 사업장 맞춤 리스크 분석과 바람장미 기반 확산 시뮬레이션이 세밀한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월에는 조광페인트 음성공장에서 1차 시연을 진행했다. 당시 실제 기상 데이터를 입력해 사고 가정 시 피해 반경 변화를 확인하는 테스트를 수행했다.

두 번째는 원료·제품 MSDS(물질안전보건자료)에서 핵심 정보를 자동 추출하는 시스템이다. 조광페인트는 수천종 원료와 수많은 제품을 생산하는 만큼, MSDS 관리에 상당한 인력과 시간이 투입된다.

김 대표는 "다양한 형식의 MSDS에서 규제 정보·유해성·취급 주의사항 등을 인공지능으로 자동 추출하는 실험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료 MSDS는 추출 성공 비율이 높게 나왔지만, 완제품 MSDS는 서식과 품질 편차가 커 실패 비율이 높았다"며 "결과만으로도 납품사 MSDS 관리 수준을 점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자동 추출 성공률은 70% 이상 수준이다. 앤필그림은 알고리즘 고도화를 통해 80% 중반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내년 1월에는 2차 시연을 계획하고 있다.


조광페인트는 이번 행사를 통해 향후 오픈이노베이션 방향도 제시했다. 서순석 신사업실장은 "지금까지는 신사업실이 유망 기업을 발굴해 내부 부서에 제안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며 "앞으로는 현업 부서가 먼저 문제와 과제를 정의하고, 그에 맞는 파트너를 찾는 수요형 구조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소재 분야 특성상 국내 협력 풀 한계도 언급했다. 서 실장은 "특정 소재 분야에서 글로벌 수준 기술을 확보한 국내 파트너는 아직 많지 않다"며 "미국·일본 등 해외 기업과도 PoC를 추진해 신기술을 빠르게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지역과의 연계 계획도 내놓았다. 그는 "부산을 비롯해 대구·울산·세종·광주·전남·충남 등 지역 테크노파크와 혁신기관들이 오픈이노베이션에 적극적"이라며 "지역 특화 과제를 발굴하고, 조광페인트가 지역 거점 파트너 역할을 하는 구조를 강화하겠다"고 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