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코스피와 코스닥이 사상 최고치 랠리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차전지 업종만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단기적 수요 둔화, 정책 리스크, 원자재 가격 하락, 글로벌 경쟁 심화에 이어 최근에는 국가 주요 기관 화재 원인 논란까지 겹치며 투자심리는 더욱 위축됐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9월1일~10월1일) 'KRX 이차전지 TOP10' 지수는 2740.83에서 2720.80으로 0.7% 하락했다. 같은 기간 'KRX 전기차 TOP15' 지수도 1.5% 떨어졌다. 주요 이차전지·전기차 지수가 나란히 마이너스를 기록한 셈이다.
다만 지난 2일에는 옵션만기일 현·선물 차익거래 청산 영향으로 LG에너지솔루션이 시간외 매매에서 13% 급등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 수급 왜곡에 따른 변동으로, 추세 판단에는 지난 1일까지의 흐름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코스피와 코스닥은 같은 기간 각각 12.9%, 8.8% 오르며 나란히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반도체 지수는 무려 29.9% 급등하며 랠리를 이끌었다. 상승장 속에서 이차전지만 홀로 뒷걸음친 모습이다.
이같은 업황 부진의 핵심 배경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전기차 세액공제 종료다. 지난달 말까지 제공되던 7500달러 보조금이 사라지면서, 미국 내 전기차 소비자 부담은 15%가량 늘었다. 시장에서는 올해 3분기 선수요 이후 4분기부터는 판매량이 급격히 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일시적으로 정체되는 이른바 '전기차 캐즘(Chasm)'도 겹쳤다.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판매 목표를 줄이고, 하이브리드 물량을 늘리면서 전기차 수요의 '숨 고르기'가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이차전지 핵심 원자재인 리튬 가격은 최근 2년 사이 절반 넘게 떨어졌다. 지난 2023년 1kg당 155위안에 거래되던 가격은 현재 70위안대까지 밀렸다. 리튬 가격 급락은 양극재·음극재 업체들의 수익성을 직접 압박했다. 실제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포스코퓨처엠 등 주요 소재주 주가가 한 달 사이 6~12% 하락했다.
최근 불거진 배터리 안전성 논란은 투자자 신뢰를 흔드는 새로운 변수다. 지난달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전산실 화재가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가 인프라를 마비시킨 사고로까지 확대됐다.
화재 직후 LG에너지솔루션 주가는 장중 내내 매도세에 시달리며 단기 급락했다. 업계 전반에 대한 불신이 번지면서 이차전지 섹터 전반의 투자심리도 크게 위축됐다. 반대로 데이터센터 냉각·소화설비, 전력 백업장치 등 안전 인프라 관련주는 강세를 보였다.
수급 측면에서도 불안정하다. 포스코퓨처엠의 지난달 공매도 비중은 25%를 넘겼고, 엘앤에프는 최대 15%까지, 에코프로는 6% 안팎까지 치솟았다. 개인들은 이들 종목을 적극 매수했지만, 공매도 세력이 동시에 포지션을 확대하며 '격전지'로 떠올랐다. 외국인 자금은 반도체로 쏠렸다. 지난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만 3조원 넘게 유입됐지만, 이차전지주는 소외됐다.
올해 상반기 글로벌 시장점유율에서 중국은 39%를 기록해 한국(38%)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중국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독점과 공급망 장악을 바탕으로 제조원가를 한국보다 30~40% 저렴하게 유지한다.
반면 한국 기업은 고가 삼원계 위주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유럽 완성차 업체들도 LFP 채택을 늘리면서, 한국 배터리의 입지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재무 구조 부담도 확대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4조원대 유상증자와 영구채 발행을 진행했고, 삼성SDI와 포스코퓨처엠도 1조원 이상 규모의 자금조달에 나섰다. 중소 소재업체들은 대부분 차입 의존으로 자금을 마련하고 있어, 신용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IRA 종료와 원가 부담 등으로 주가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보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 확대와 글로벌 시장 재편 속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반등 여지가 있다고 진단한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IRA 종료 이후 4분기 미국 전기차 수요가 급격히 위축될 것"이라며 "내년 1분기 이후 실적 눈높이 조정이 마무리돼야 주가 회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안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IRA 보조금 폐지 이후 4분기부터는 미국 내 전기차 수요가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며 "3분기 실적 발표 이후에는 가동률 하락과 원가 부담이 겹치면서 부진한 흐름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 재편 과정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다시 부각될 수 있다"며 "특히 데이터센터용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 확대가 구조적 성장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