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목포출신 김원이 의원이 12·3 내란 당시 상황에서 “쪽팔리게는 살지 말자”라는 생각에 속옷을 챙긴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며 “잘 살아라 나는 간다라는 미묘한 생각을 남기고 국회로 향했다”라는 당시 최악의 상황을 회상해 심금을 울리고 있다.
김 의원은 12·3 내란 상황을 집에서 티브이를 통해서 알게 되고 “이게 현실인가”라는 비현실적인 끔찍한 생각과 함께 “잡히면 두들겨 맞아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복잡한 상황에서도 “잡혀도 국회에서 잡혀 죽자”라는 본능으로 긴급하게 국회로 향했던 기억을 회상했다.
최근 언론에서 방연 된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김 의원은 12·3 내란의 악몽과 같은 당시 상황을 기억하면서 현장에서 의원들과 보좌관들이 마주해야 했던 기억을 역사로 돌리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국민들이 느껴야 했을 두려움과 국가적 위기에 대한 대처에서도 7급 수행비서 출신에서 4급 행정관을 거쳐 정무수석 비서관까지 거치면서 다듬은 실무와 경험의 능력을 발휘하는 과정이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기대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특히 당시 격렬한 상황에서도 10년 이상의 경험을 지닌 보좌관을 모아 대처하는 침착한 상황을 두고는 그가 과거에 경험한 경력이 큰 역할을 이뤄냈다는 극찬이 이어진다.
이 상황에서 자신의 의원실 보좌관이 “총 맞으면 산재처리 됩니까?”라는 외침이 흘러나와 당시의 긴박한 현장 분위와 함께 목이 찢어지는 외침이 그날의 기록으로 돌아왔다.
김 의원은 “그날 국회에서 용기를 내주신 의원들과 현장에서 함께해 주신 시민들을 포함한 국민 여러분에게 너무 많은 감사함을 전한다”라며 용감한 국민들에게 깊이 고개 숙여 새로운 다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