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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호러가 된 보금자리

박선린 기자 기자  2025.08.12 0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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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조용히 좀 해주세요. 그 입을 찢어버리기 전에"

보기만 해도 섬뜩해지는 이 협박성 멘트는 올해 6월 개봉한 공포영화 '노이즈' 속 대사다. 

어느 날부터 아파트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 모두가 피해자지만, 서로 가해자라고 지목하며 분노 속에 잠식돼 얽히고 설킨다. 

영화는 극장가 박스오피스 2~3위에 오르며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흥행에도 성공했다. 현실과 맞닿은 배경에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기상천외한 존재가 적절히 어우러진 점이 관객의 호응을 이끈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그런가하면, 지난달 18일 공개된 넷플릭스 신작 '84㎡' 역시 층간소음을 소재로 다뤘다. '영끌'을 통해 이른바 '국민평형'이라 불리는 84㎡ 아파트에 입성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현실밀착형 스릴러다.

영화는 어렵게 아파트에 입성한 인물들이 기대했던 평온과는 달리, 층간소음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끝없는 갈등에 휘말리는 과정을 그린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심리적 충돌은 어느새 일상이 돼가며, 묵직한 불안감을 안긴다.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현재. 안식을 느껴야 할 '보금자리'가 호러장르가 되고 있다.

실제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단순한 이웃 간의 다툼을 넘어, 강력범죄로까지 이어지며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가소음정보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층간소음과 관련된 5대 강력범죄(살인, 살인미수, 상해, 특수협박, 폭행)의 발생 건수는 2016년 11건에서 2021년 110건으로 급격히 증가해, 약 10배 가까운 상승폭을 보였다.

"피차 종일 집인데 머리통 깨지기 전에 서로 조심 좀 하자"

이 살벌한 말은 영화 속 대사가 아니다. 현실이다. 2021년 11월 아파트 같은 라인의 전 세대 출입문과 엘리베이터에 위협적인 내용의 층간소음 경고문을 붙인 혐의로 기소된 사례다.

14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봉천동 화염방사기 사건, 뜨거운 식용유를 냄비에 담아 이웃에게 부은 이른바 '기름 테러' 등도 모두 층간소음에서 비롯된 충격적인 사례들이다.

'살인 미수', '흉기 난동', '침입 후 협박' 등 끔찍한 범죄들 역시 그 원인을 층간소음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제 "시끄러워 죽겠다"는 항의가 어느새 살인 예고로 이어지는 시대가 된 셈이다.

이러한 층간소음 문제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2022년부터 '바닥충격음 성능검사제도'를 도입,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건설사들도 다양한 저감 기술을 도입하고, 관련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물산(028260)과 현대건설(000720)은 각각 '래미안 고요안랩'과 'H 사일런트 랩'이라는 층간소음 전문 연구소를 설립해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대우건설(047040)은 '스마트 3중 바닥 구조', 롯데건설은 '노이즈캔슬링' 원리를 적용한 '능동형 진동 제어' 기술을 개발 중이다. GS건설(006360)은 LX하우시스(108670)와 협력해 관련 기술을 공동 연구하고 있다.

다만 대부분의 층간소음 갈등은 2022년 이전에 준공된 단지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기존 아파트에도 적용할 수 있는 층간소음 저감 기술의 개발 필요성은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우선시돼야 할 것은, 서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비록 '판타지'처럼 느껴질지라도, 우리의 보금자리 속 갈등이 '동화'나 '힐링 드라마'처럼 따뜻하게 마무리되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