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정육각이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지난 4일 신청했다. 2016년 설립 이래 ICT 기반 축산 커머스의 혁신 주자로 주목받았던 정육각은 이제 '회생 기업'이라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시장에 등장하게 됐다. 한때 신선육류 유통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포부로 시작된 스타트업의 회생절차 개시는 스타트업 투자 및 계약 실무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치고 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에 따르면, 채무자는 사업의 계속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하지 않고서는 변제기에 있는 채무를 변제할 수 없는 경우,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할 수 있다(채무자회생법 제34조 제1항 제1호).
정육각은 △과도한 고정비 지출 △공급망·재고관리 실패 △시리즈C 투자 유치 실패라는 삼중의 어려움 속에서 유동성 위기를 맞이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2022년 무리하게 단행한 초록마을 인수가 구조적 재무 리스크를 심화시켰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결국 스타트업의 전략적 선택이 결과적으로 재무구조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고, 법원을 통한 회생절차라는 길을 선택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정육각·초록마을은 회생채권자 목록과 재산목록을 법원에 제출하고 회생계획안 작성을 본격적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정육각은 영업을 중단했다. 반면, 초록마을의 전국 △오프라인 매장 △온라인몰 △물류센터 등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정육각과 초록마을이 회생절차를 개시했음에도 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의 결정을 받았고, 정육각의 현 대표이사도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법원은 회생절차 개시와 동시에 강제집행과 가압류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려 정육각과 초록마을 양사의 영업 환경을 법적으로 일정 수준 보호했고, 회생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사업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업 계속을 위한 포괄허가 결정을 내렸다. 이에 정육각과 초록마을은 거래업체들에 대한 상거래 대금과 가맹점주에 대한 대금, 직원들에 대한 급여는 정상적으로 지급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정육각과 초록마을이 법원을 통한 회생절차를 능동적 구조조정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회생절차 과정에서 드러난 주요 법적 쟁점. 이 과정에서 주목할만한 법적 쟁점을 일부 꼽자면 다음과 같다.
1. VC 투자계약상 리퀴데이션 프리퍼런스(Liquidation Preference) 조항의 실질적 실효
스타트업 투자계약에서 흔히 포함되는 리퀴데이션 프리퍼런스(Liquidation Preference) 조항은 통상 회사의 청산 또는 매각 시 투자자가 선순위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계약적 권리이다.
정육각과 체결한 투자계약의 경우에도 리퀴데이션 프리퍼런스 조항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육각이 회생절차에 진입함에 따라, 기존 투자자들이 계약서상 확보하고 있었을 위 조항은 사실상 법적 효력을 잃게 됐다.
회생절차 개시와 함께 투자자들의 지위는 일반회생채권자 또는 지분권자로 분류되게 되고, 다른 투자계약서상 권리는 행사가 제한된다. 이는 기존 투자자들의 투자계약상 지위에도 불구하고 회생절차에서는 결국 회생계획안에 포함된 변제 조건에 따라 제한적으로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전환사채(CB) 및 상환전환우선주(RCPS)의 회생채권 또는 지분으로의 분류
정육각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보유한 전환사채, 상환전환우선주 등은 회생절차 내에서 '회생채권' 또는 '지분'으로 분류되게 될 것이다. 전환사채나 상환전환우선주 등은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설계된 투자방법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투자한 채권은 출자전환(채무의 자본으로의 전환)될 수 있고, 지분은 무상감자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회생절차 내에서는 이러한 보호방법이 무력화되고, 기존 투자자들의 투자금 손실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공급업체 및 외주업체의 지위와 채권 회수 가능성
정육각과 초록마을은 전국적으로 분포된 소규모 농가, 도축장, 협력사 등과 계약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들은 정육각에 대한 영업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일반 채권자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일반 회생채권은 후순위로 변제되기 때문에, 그 실질적인 회수율은 극히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최근 회생절차를 거친 티몬의 경우 회생채권 변제율은 단 0.7562%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육각 및 초록마을의 회생절차 개시에 따라 공급업체 또는 외주업체는 납품 중단이나 계약 해지를 검토하고 있을 수 있으며, 이는 두 회사의 영업 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또 다른 리스크가 될 수 있다.
◆ 회생절차, 스타트업의 생존 전략이 될 수 있을까?
회생절차는 '망한 기업의 마지막 수순'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정육각과 초록마을의 회생절차 개시는 스타트업이 회생절차를 단순한 청산 절차가 아닌 능동적 구조조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회생절차를 통해 회사와 경영진은 개별 채권자들로부터의 강제적 법적 압박을 일시적으로 차단할 수 있고, 리퀴데이션 프리퍼런스와 같은 투자계약상 불리한 조항을 무력화할 수 있다. 다만 회생절차가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투자자 및 주요 거래처들과의 관계 악화는 기업의 장기적 생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스타트업에게 회생절차는 결코 '안전한 선택지'는 아니다. 많은 스타트업은 현금흐름 창출력이 약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 유형자산이 아닌 무형자산에 기반한 기업가치를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담보력 부족, 실물자산 미비, 그리고 회생 절차 진입으로 인한 공급망 신뢰 붕괴는 스타트업 회생의 구조적 난점을 더욱 부각시킨다. 스타트업에게 회생절차를 결코 권할 수는 없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생절차는 어려움을 맞이한 스타트업의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 정육각과 초록마을의 회생절차 개시가 투자자는 계약서상의 권리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창업자는 재무구조 개선 없이 확장을 추구하는 전략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시금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정육각과 초록마을의 회생절차가 기업과 투자자, 그리고 거래처들의 균형잡힌 이익을 달성하는 사례가 되기를 기원한다.

장창수 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
前 EY한영회계법인 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