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한국 경제가 과거 일본처럼 장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민간부채 급증, 급속한 고령화, 성장전략의 한계 등 구조적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잃어버린 30년'을 그대로 답습할 수 있다는 경고다.
한은은 5일 'BOK 이슈노트: 일본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작성자는 장태윤 한은 조사국 물가동향팀 과장과 김남주 구조분석팀 팀장, 손윤석 대구경북본부 대구경북경제조사팀 과장 등 3명이다.
보고서는 한국 경제는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 직전과 유사한 구조적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 2023년 기준 한국의 민간부채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07.4%로 나타났다. 일본 버블기 최고치였던 1994년(214.2%) 수준에 육박한 것이다. 특히 생산성이 낮은 부동산 부문으로 과도한 자금이 집중되면서 자원 배분 왜곡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구구조도 문제다. 일본은 지난 1996년부터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며 노동 투입이 줄었고, 디플레이션과 생산성 정체가 겹쳐 장기침체가 고착화됐다. 우리나라 역시 2017년부터 생산연령인구가 줄기 시작했고,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빠르다. 이에 따라 잠재성장률 기여도는 2000년대 초반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된 상황이다.
한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유휴 인력의 생산참여를 늘리고, 외국인 노동력을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력단절 여성, 은퇴자,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혁신지향적 교육투자도 병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기존 산업 전략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요구했다. 일본은 수직계열화와 선진국 중심의 수출 전략을 고수하다 경쟁력을 잃었고, 디지털 전환 지연으로 생산성 향상에도 실패했다.
한은은 "우리도 첨단산업 육성과 고부가가치 서비스 수출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삼아야 한다"며 "반도체·AI 인재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관련 규제를 과감히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정·통화정책에 주는 시사점도 크다. 일본은 경기침체와 고령화가 겹치면서 정부부채 비율이 GDP 대비 240%까지 치솟았다. 반면 한국의 2023년 정부부채 비율은 50.7%로 비교적 양호하지만, 고령화로 인한 지출 압박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속가능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한은은 "경기 대응을 위한 적자재정 이후에는 흑자재정으로의 전환을 통해 재정 여력을 복원해야 한다"며 "통화정책은 어디까지나 경기 대응 수단이며, 경제체질 개선은 구조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보고서 말미에서 장태윤 한은 조사국 물가동향팀 과장은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운명이 아닌 선택의 결과"라며 "노후화된 경제 구조를 혁신하고, 창조적으로 파괴해야 한국 경제가 다시 활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