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제 비밀 레시피는 청포도 소주와 오렌지 망고 주스를 1대3 비율로 섞는 것입니다."
지난 19일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에 위치한 창고형 매장 S&R Circuit점에서 만난 에리카(Erika, 27세)가 전한 소주 칵테일 레시피다. 그는 다가오는 주말 가족들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에 소주를 준비한다며 웃었다. 소주와의 첫 만남을 묻는 질문에 에리카는 "2021년 삼겹살과 함께 소주를 처음 맛봤다"며 "그 이후 일주일에 3일, 약 6병의 소주를 즐긴다"고 답했다.
필리핀 현지인들은 각기 다른 취향을 담아 자신만의 소주 레시피를 완성하며 소주를 즐기고 있었다. 이들의 소주에 대한 인식은 한국과 사뭇 달랐다.
필리핀 주류 시장은 저도주인 맥주와 고도주인 진, 럼으로 주로 나뉘지만, 소주처럼 중간 도수의 술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이들은 소주를 간단히 저녁에 마시기 좋은, 부담 없이 즐기기 좋은 술로 인식하고 있었다.
에리카는 "소주의 질감과 맛, 가격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선택"이라며 "'참이슬 오리지널'은 주로 샷으로 즐기고, 과일소주는 다른 주스와 함께 섞어 가족 모두가 기호에 맞게 즐긴다"고 말했다.
같은 매장에서 만난 얼윈(Erwin, 44세)은 "바텐더로 일했던 술집에도 '참이슬'이 있었다"며 "특히 빨간색 뚜껑 제품(참이슬 오리지널)의 깔끔한 마무리가 가장 마음에 든다. 최근에는 다양한 종류가 생기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소주를 즐기는 이유에 대해 "혼합하기 쉽고 칵테일 베이스로 활용도가 높다"며 "돼지고기와 과일과 함께 마시는 걸 선호한다"고 자신의 취향을 공유했다.
현지 한식당 '삼겹살라맛(Samgyupsalamat)'에서 만난 필리핀 아이돌 GY도 자신만의 소주 칵테일 레시피를 공개했다. GY 멤버 갭(Gab, 22세)은 "요구르트와 소주를 섞거나, 필리핀 사과맛 음료 'C2', 스포츠 음료 '게토레이'와도 잘 어울린다"며 "주로 세븐일레븐 편의점이나 한인 마트에서 박스 단위로 사서 친구나 가족들과 기념일에 마신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지 대형마트 '퓨어골드'에서는 요구르트와 소주가 나란히 진열돼 눈길을 끌었다.
필리핀의 독특한 음주 문화인 '팀플라도(Timplado)'는 주류에 다양한 음료를 섞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믹솔로지(Mixology)를 반영한다. 하이트진로(000080)는 이러한 현지 문화를 고려해 과일소주 라인업을 선보이며 필리핀 시장에 적합한 제품을 제공하고 있다.
소주를 처음 접한 경로에 대해서는 대다수 필리핀 현지인이 K-콘텐츠(드라마, 영화, 음악 등)를 꼽았다.
필리핀 한식당에서 삼겹살과 소주를 즐기던 랄리(Lalli, 29세)는 "K-드라마를 즐겨 보면서 자연스럽게 소주를 접하게 됐다"며 "드라마 속 술자리 장면들이 궁금증을 자아내 소주를 시도하게 됐다. 특히 '프레쉬' 소주를 선호하며, 대형마트를 한 달에 4~5회 방문해 구매한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퓨어골드에서 만난 마리 필 레예스(Marie Phil Reyes, 42세) 하이트진로 필리핀법인 MD는 "필리핀 내 K-드라마와 K-POP의 영향력이 크다"며 "한국 드라마를 통해 삼겹살과 소주 문화를 접한 소비자가 늘었고, 실제 경험 후 만족도가 높아지며 자연스러운 소비 확대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최근 아이유 등 K-POP 아티스트의 인지도 역시 높아 한류를 기반으로 한 소주 확산 효과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지 소비자 안드레아(Andrea, 21세)도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한국 드라마를 즐기다 소주를 알게 됐다"며 "드라마에서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많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주 1~2회 한 병씩 구매해 즐기는데, 필리핀 술에 비해 숙취가 덜하고 깔끔하며, 가격도 위스키 대비 저렴해 부담 없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소주는 한류 문화와 필리핀 현지의 라이프스타일이 만나 새로운 음주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양한 음료와 섞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팀플라도' 문화는 소주가 현지인들에게 친근하고 부담 없는 술로 자리 잡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류 콘텐츠의 인기까지 힘입어 필리핀에서 소주의 인기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소주는 이제 단순한 '한국 술'을 넘어, 문화 교류의 작은 다리로서 현지인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