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윤석열 대통령 파면 선고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됐지만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영향에 원·달러 환율이 다시 오르고 있다. 고환율 여파로 금융지주의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에 금융권에서는 리스크 관리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7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27.9원 오른 1462.0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장 초반엔 147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앞서 지난 4일엔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파면 선고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며 원·달러 환율은 1430원대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미국의 관세 정책 강화로 글로벌 무역 긴장이 고조되면서 환율은 다시 상승세로 전환됐다.
이에 주요 은행들은 오는 9일 미국의 상호관세 발효를 앞두고 건전성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환율 변동은 금융지주의 핵심 건전성 지표인 보통주자본비율(CET1)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CET1은 위험가중자산(RWA) 대비 보통주자본 비율을 뜻한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금융사가 보유한 외화 대출 등의 원화 환산 가치가 상승하면서 RWA이 증가해 CET1이 하락하는 구조다.
금융지주들은 CET1을 기반으로 밸류업 계획을 이행하고 있어 고환율이 지속된다면 주주환원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에게 최소 12% 이상의 CET1 비율을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각 금융지주의 CET1 비율은 △KB금융 13.53% △하나금융 13.22% △신한금융 13.06%로 나타났다. 반면 △우리금융 12.13% △농협금융 12.44%로 13%에 미치지 못했다.
환율이 10원 오를 때 CET1 비율은 평균 0.007~0.008%p(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은행들의 자본 여력과 배당 기조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수준이다.
고환율 리스크에 대비해 KB국민은행은 외환 익스포저(위험노출액) 확대를 억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외화대출이나 장외파생상품 증가를 통제해 BIS 비율 방어에 나선 모습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외화대출이나 장외파생상품이 과도하게 늘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점검하고 있다"며 "리스크 최소화를 위한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고액 자산 고객 관리를 위해 S&T센터와 투자솔루션부에서 매일 제공하는 환율 시황 전망·정보를 게시하고 PB팀장들이 고객에게 관련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환율 변동에 취약한 중소 수출입 기업에 대해 신용장 만기 연장 지원, 일시적 결제 자금 부족 시 여신 지원, 세무·회계·외환·법률·마케팅 컨설팅 지원 등 다양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환율 상승이 자본비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중소 수출입 기업에게 자금지원, 컨설팅 등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은행도 고객의 외환 및 수출입 거래에서 발생하는 외환 포지션을 중립화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 환율 급등과 대외 외화 유출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외화 유동성 부족으로 환율이 재차 급등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대비 중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고객 거래 기반의 외환포지션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다"며 "극단적인 외화 유출 가능성까지 고려해 외화유동성 확보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환율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전행 위기대응협의회'를 중심으로 비상대책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유관 부서 간 협의를 통해 환율 수준별 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실제 환율 변동 흐름에 따라 단계적으로 대응 중이다.
또한 외환 여신 전반에 대해 보수적인 운용 기조를 유지하고 우량여신 중심의 대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미사용 한도는 선별적으로 감축해 자산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환율 수준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수준별로 파생상품 등 환율 민감 자산에 대한 관리 강도를 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NH농협은행은 환율 급등으로 외화예금 해지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해외여행 수요 감소에 따른 환전 거래 위축 가능성도 주시 중이다. 이에 따라 개인 고객 대상 외환 사업 전략의 재정비에 나섰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외화예금 해지 증가와 환전 수요 감소에 대비해 개인 고객 중심 외환상품 포트폴리오를 재정비 중"이라며 "환차익에 대한 대응도 고객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당국 개입 경계선으로 여겨지는 1500원선을 뚫고 지속 상승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박상현 아이엠투자증권 연구원은 "대내외 악재가 여전히 상존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상회하거나 장기적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은 낮다"며 "미국의 상호관세 정책이 한국에 특별히 불리하지 않다면, 환율 상승 폭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정치적 리스크 해소로 원화 강세 압력이 확대되면,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 매수세가 유입돼 환율이 1440원대 이하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