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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거수기 전락' 금융지주 사외이사, 빛 바랜 감시 기능

박대연 기자 기자  2025.03.10 14: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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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올해도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금융)의 사외이사 교체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치면서 금융권의 지배구조 문제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사외이사의 역할이 본래 경영진을 견제하고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유임 비율과 회전문 인사로 인해 실질적인 변화는 요원한 상태다.

올해 4대 금융지주의 사외이사 32명 중 23명이 유임됐다. 이는 전체의 72%에 해당하는 수치다. 지난해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KB금융(6명 중 2명 교체), 신한금융(7명 중 2명 교체), 하나금융(5명 중 1명 교체)은 최소한의 변화만 줬다. 반면, 우리금융은 7명 중 4명을 교체하며 내부통제 강화를 내세웠다. 하지만, 금융권 전반으로 보면 여전히 '눈 가리고 아웅'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적임자를 찾기 어렵다"며 인력난을 이유로 들고 있다. 정말 그럴까. 실상은 금융권 내부에서 돌려 쓰는 '회전문 인사'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지적이다. 금융지주 출신, 공직자 출신 인사들이 반복적으로 사외이사 자리를 차지하면서 경영진과의 유착 의혹을 피할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2024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대 금융지주의 이사회에서 논의된 161건의 안건 중 단 한 건도 '반대'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 이는 금융지주 이사회가 내부 논의 없이 안건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국 사외이사들이 감시자 역할을 포기하고, 경영진의 결정에 손을 들어주는 '거수기'로 전락하면서 금융지주 회장의 권한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속적으로 내부통제 강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사외이사 선임 구조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높은 보수를 받는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은 연평균 405시간을 일하며 평균 8043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하루 1.64시간 근무에 220만원이 넘는 급여다. 2025년 기준 최저시급의 140배 정도다. 일부 사외이사는 연봉 1억원을 초과한다.

사외이사는 단순히 금융지주가 법적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명목상의 자리가 아니다. 이들은 금융사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구조는 사외이사가 경영진의 거수기에 불과한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려면 외부 기관의 개입이 필요하다. 사외이사 선임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고, 회전문 인사를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또한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 내부통제 기능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기용돼야 한다.

현재 금융권 사외이사 구조는 '구태의연(舊態依然)' 그 자체다. 과거의 문제점을 반복하면서도 변화를 거부하는 금융권의 모습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금융권이 진정한 개혁을 외면한다면, 언젠가 그 대가는 금융소비자와 시장 전체가 치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