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은행 문턱이 너무 높아요. 담보도 부족한데 요즘엔 신용으로도 대출이 어렵습니다."
서울에서 제조업을 운영하는 A대표(49)는 최근 시중은행을 찾았다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경영 자금이 필요해 대출을 문의했지만 "신규 대출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대기업들은 사정이 다르다. 최근 시중은행들은 기업 대출을 확대하고 있지만, 그 방향이 '대기업 중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기업들은 갈수록 좁아지는 금융 접근성에 자금난이 심화되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825조7228억원으로 전년 동기 770조1450억원 대비 7.2% 증가했다.
기업대출이 모든 기업에 공평하게 돌아간 것은 아니다. 대기업 대출은 163조996억원으로 전년 대비 17.4% 늘어난 반면, 중소기업대출은 662조6232억원으로 전년 대비 5% 증가하는데 그쳤다.
특히 신용이나 담보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상품인 기술신용대출(TCB)은 159조2071억원으로 전년 대비 7.07% 감소했다. 중소·벤처기업들이 금융권의 지원을 받기 더욱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이처럼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연체율 상승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75%로 전년 동기 0.61% 대비 0.14%p(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2년 전(0.34%)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높아진 수치다.
또한 건설업을 중심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심화하면서 중소 건설사들의 대출 상환 부담이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금융권 관계자는 "중소기업 대출은 연체율 상승과 경기 둔화 리스크가 커 은행 입장에서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부실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대한 신규 대출은 더욱 보수적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도 은행들의 대출 쏠림 현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소기업 대출 위축이 장기화될 경우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은행들이 특정 기업군에만 대출을 집중하지 않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권고 수준에 그쳐 실질적인 대출 증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2월19일 열린 '기업금융 상황점검회의'에서 "은행들이 대출 자금을 특정 기업군에만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이 원활하도록 다양한 지원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최근 간담회에서 "실물경제 부실이 금융권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기업부채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할 것"이라며 "중소기업 대출이 위축되지 않도록 면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금융당국이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강조하고 있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리스크 관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대출 확대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의 권고만으로는 이러한 기조를 바꾸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중소기업들도 은행들의 대출 심사가 강화되면서 자금 조달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어 보다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은행들이 대기업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자금을 공급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보증 확대나 금리 인센티브 제공 등의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현재 중소기업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자금 조달 문제인데, 은행들이 리스크를 이유로 지나치게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문제"라며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의 보증 한도를 확대하고, 중소기업 전용 대출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등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