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고] 칸트와 AI의 만남…도식과 심상

김상현 창원지방검찰청 진주지청장

강경우 기자 기자  2024.12.23 14:56:34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장미꽃의 향기가 좋은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장미꽃이 아름답다고 할 때는 개인적 취향을 넘어서는 보편성의 요구가 담겨져 있다. 

물체에 불과한 장미꽃으로부터 어떻게 아름답다는 느낌이 도출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장미꽃의 형상 자체로부터는 아름다움의 느낌이 나타나지 않는다. 내 마음 속에 있던 아름다움의 느낌이 장미꽃을 보고 일깨워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아름다움의 느낌은 나의 마음속에 잠재돼 있다가 장미꽃에 투영되어 나타나는 것이지, 장미꽃에서부터 아름다움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어떤 물체를 보고 장미꽃에 해당한다고 판별하는 것은 어떨까? 장미꽃이라고 인식하는 것도 내 마음 속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닐까? 칸트에 따르면 장미꽃이라고 인식도 사람의 마음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한다. 

다만 아름다움의 느낌과 다른 점은 눈으로 장미라는 물체를 관찰하고 그려내는 형태도 인식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칸트는 건축가가 설계도에 따라 집을 짓듯이, 사람의 경험적 지식도 마음속에 내장된 설계도에 따라 축적되는 것으로 봤다. 즉 사람은 경험 이전에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공통의 인식시스템에 따라 각자 다른 경험적 인식을 쌓아간다고 한다. 

칸트는 시각·청각 등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인 자료를 시간이라는 형식에 맞춰 종합한 후 개념적, 추상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인식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눈으로 장미를 관찰해서 그 모습을 포착해내는 작용이 직관이다. △장미꽃의 길이·너비 등 구체적인 특색을 쪼개거나 모으는 작용이 종합이다. △물체들 사이 여러 가지 특성을 구분하고 통합해서 공통점을 찾아 장미꽃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작용이 개념화이다. 

결국 인식은 직관과 개념이 결합된 작용이다. 칸트는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고,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고 한다.

컴퓨터는 입력 데이터를 0과 1로 환원되는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한 후 프로그램에 따라 논리적, 체계적으로 처리한다. 칸트가 파악한 사람의 인식활동도 데이터의 정량화와 정량화된 정보의 처리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칸트의 인식 설계도에 따르면 "사람이 오감으로 지각하거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는 표상(데이터)들은 시간이라는 직관의 형식에 맞추어져 수량화 되고, 범주라는 지성(개념)의 형식에 맞추어져 논리적, 체계적으로 통합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컴퓨터 시스템의 기본 구조는 칸트의 인식 설계도와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컴퓨터는 정보의 산출·저장·검색·처리 등 사람의 지적 활동의 많은 부분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칸트 인식론의 독창성은 직관과 개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하는데 있다. 아이들에게 장미꽃의 실물이나 그림을 보여주고 장미라고 가르쳐주면 많은 사례를 보지 않더라도 금방 학습해서 장미를 판별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장미의 종류는 다양하고, 닮은 꽃도 많아서 장미꽃 식별 문제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이들에게 장미를 그려보라고 하면 제각기 다르게 그리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은 어떻게 장미를 인식하고, 식별할 수 있을까? 칸트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감성의 작용인 직관과 지성의 작용인 개념은 성격이 전혀 달라 섞일 수 없는데, 상상력이 둘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상상력이란, 시간상으로 펼쳐져 있는 감각자료를 종합해주는 능력이다. 상상력의 작용은 ‘'종합(synthesis)'과 '도식(圖式, scheme)'으로 나누어진다.

종합은 다양한 것들을 모아 결합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종류의 꽃에서 장미꽃이라는 개념(공통점)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제각각의 꽃이 가지는 구체적인 특색들을 쪼개거나 모으거나 그 특색들의 위치를 바꾸어 새로 조합하는 등의 종합이 필요하다. 

종합을 통해 장미꽃이라는 개념에 대응하는 어떤 꽃의 형태를 일반적으로 그려내는 도식이 만들어진다. 상상력에 의한 종합의 결과물이 도식이다. 머릿속에서 장미의 구체적인 형상들을 점점 추상화하여 마지막에는 뼈대만 남긴다. 

이 뼈대가 장미의 특성을 모아 공통점을 추출해 일반화한 도식이다. 도식에서는 형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으나, 개념에서는 형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관념만 남는다. 

이렇게 장미꽃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고 나면 그다음 어떤 물체를 보고 장미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한다. '꽃의 잎은 어긋나고 깃 모양이면 장미다'라는 등의 추상적인 장미의 개념만으로는 각양각색의 구체적인 형상이 장미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수 없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다. 공통적인 형상인 장미의 뼈대가 도식으로 머릿속에서 그려져 있어야만 장미를 판별해낼 수 있다. 개념과 규칙을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어떤 꽃을 보고 장미라고 잘 판단할 수 있는 것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장미라는 개념에 대응되는 도식이 상상력으로 머릿속에 또렷하게 그려져 있어야 장미에 해당한다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칸트는 판단력을 타고난 자질로 보며 규칙 교육으로 주입될 수 없고, 실례나 실무를 통해 숙달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또한 상상력을 사람 마음의 깊은 곳에 숨겨진 기술로서 그 참 기량을 명백히 정시하기 힘들다고 한다. 

장미꽃이라는 개념에 들어맞는 도식이 단번에 그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시행착오와 반복학습, 숙달과 연마를 밞으면서 도식을 수정해 가는 과정을 통해 판단력의 정확도가 높아진다. 

개념의 핵심적인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할 줄 아는 사람이 통상 복잡한 사례의 판단도 잘한다. 어렵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효율적으로 도식화를 잘해야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방식은 '규칙 기반 또는 지식 기반(rule based or knowledge based)'과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으로 나눌 수 있다. 

규칙 기반 방식은 언어와 논리로 알고리즘을 미리 짜 입력하는 방식을 취한다. 지식을 프로그램 안에 심어 놓고, 논리 추론 시스템이 지식을 가지고 작동한다. 

기계학습은 문제풀이 방법인 프로그램을 미리 컴퓨터에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스스로 그 방법을 찾도록 한다. 학습을 통해 데이터에 있는 패턴을 찾아 문제풀이 방법을 만들어낸다. 

컴퓨터의 기계학습과 도식에 기반을 둔 사람의 판단(도식 기반 판단)을 비교할 때 △데이터의 특성을 모으는 것은 종합 △문제풀이 방식을 찾아가는 것은 도식화 △학습은 판단의 반복에 대응한다. 

나는 "기계학습으로 도식 기반 판단에 대응하는 문제풀이 방식을 찾아냄으로써, 상상력의 마음속 깊이 숨겨진 기술과 판단력의 천부의 재능이 수학적으로 객관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만들어낸 도식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듯이, 기계학습 과정에서 찾아낸 문제풀이 방법이 어떤 것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것은 수학방정식(equational)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통계와 확률' 등의 수학을 활용하되, 기계적 계산 (computational, 프로그래밍)의 방식으로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찾아낸 답이 100%라고 보장되지도 않는다. 완벽한 답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 풀 수 있는 문제가 훨씬 많아진다. 학습을 통해 오답률을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판단력을 강화한다. 

학습한 함수가 틀린 답을 낼 확률을 수학적으로 분석하여 원하는 수준에서 '도식의 정확도를 관리'하면 된다. 

판단력의 품질은 타고난 재능과 숙달의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성능 좋은 알고리즘과 학습에 필요한 많은 양의 데이터 확보와 충분한 학습시간 할애가 기계학습의 성공을 좌우하듯이. 

형상과 개념을 합치시키는 형상들의 공통적 척도인 도식은 상상력과 판단력에 의해 그려지기 때문에, 그것을 규칙 기반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하기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논리 정연하게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상상력과 판단력의 힘으로 즉 도식 기반 판단으로 일상적인 일들이나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잘 해결하면서 살아간다. 

이러한 도식을 끌어내는 상상력의 마음속 깊이 숨겨진 기술과 판단력의 타고난 재능 뒤에서는 지성의 체계적 통일작용이 숨어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지성의 논리성, 규칙성을 정보처리로 정량화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에 나아가 기계학습은 도식의 배후에 숨어 있는 지성의 규칙성을 포착할 줄 안다. 

그래서 기계학습이 도식을 포착하는 것은 사람의 인식을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외부 사물을 감지하는 작용인 직관도 마음의 작용의 일종이므로 결국 인식은 사람의 마음이 만드는 작용이다. 사람의 마음 밖에 어떤 사물의 실체가 존재하나, 사람의 마음을 떠나 그 존재를 인식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람은 인식의 한계를 가진 유한한 존재이다. 

또한 사람은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며 이를 넘어서려는 마음을 가진 초월적 존재이다. 이때의 마음은 인식의 한계 내에 있지 않다. 칸트는 자유를 유한성 극복의 주춧돌로 삼는다. 

칸트의 초월적 세계는 의지를 실천하는 실천이성의 세계이다. 자유를 원동력으로 유한성의 범위를 확대하는, 즉 초월하는 세계이다. 사람은 자율적 의지를 통해 단순한 욕구적, 사회적 존재라는 테두리를 넘어서서 자신의 본래적 자아를 발견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아름다움의 느낌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이 느낌도 사람의 유한성을 초월하는 것에서부터 온다.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경우 그 속에는 적어도 어떤 형식적인 조화, 즉 합목적적인 질서가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미적 체험에서는 직관의 대상한테서 오는 질료적인 감각이 아니라 그 대상의 형식이 즐거움을 일으키는 근거가 된다. 미적 영역의 보편성은 객관적 개념이 아니라 형식적인 합목적성에 근거한다. 

미적 영역에서 상상력은 지성의 지시에 따라 도식을 산출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한다. 상상력과 지성은 자유롭게 유희하고 스스로 증강해가며 영혼에 생기를 준다. 

그 표현의 방식이 음악이든, 회화든, 언어든, 예술가는 빠르게 지나가는 상상력의 유희를 포착하여, 규칙들의 강제 없이 전달되는 하나의 개념 속에 통합한다. 

이 개념은 지성의 개념이 아니라 초감성적인 이념, 즉 미감적 이념 또는 공통감이다.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유희의 마음 상태가 개념이 아닌 감각에 실려 보편적으로 전달된다. 

그러면 두 가지 초월적 이념인 자유, 본래적 자아 등의 이성적 이념과 미감적 이념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이성적 이념은 그에 적합한 어떤 직관도 가지지 않는 개념이며, 미감적 이념은 그에 적합한 어떤 개념도 가지지 않는 직관이다. 

칸트는 자신의 마음을 경탄과 외경으로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이 그것이다. 

칸트가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볼 때, 이 광경은 칸트의 마음속에 있는 자유와 도덕법칙, 인격성이라는 이성의 이념을 일깨운다. 이렇게 아름다움은 유한한 직관의 세계와 초월적인 이념의 세계를 이어준다. 

직관에 의해 받아들여진 현상들은 상상력에 의해 쪼개지거나 합쳐져 시간이라는 마음속에 있는 분류 장치에 따라 정리되고, 지성의 체계적 통일작용에 의해 개념으로 만들어진다. 이때 직관에서 개념으로 바로 건너갈 수는 없어 그사이를 도식이 이어준다. 도식은 상상력이 그리지만 그 배후에는 지성의 통일작용이 있다. 

지성의 지시에 따라 상상력이 그리는 도식은 무미건조하다. 반면에 상상력과 지성이 자유롭게 즐기며 그리는 심상(心象)은 살아 움직이는 리듬이다. 그 리듬은 형식적 합목적성이라는 비어 있는 일체감을 표현한다. 

또한 그 리듬은 미감적 이념 또는 공통감을 표현한다. 마음속의 생동감은 정신 또는 영혼에 힘을 불어넣어 공통감의 리듬으로, 현상세계의 한계를 초월하는 통합으로 나간다.

도식과 마찬가지로 심상(心象)도 상상력이 그리지만, 심상을 그리는 배후에는 마음속의 생동감이 있다. 형식적 합목적성과 공통감은 마음속에서 주관적 심상으로 나타날 뿐이고, 객관적 도식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감각들이 통일될 때 느껴지는 리듬을 기계학습의 통계와 확률로 계산해 낼 수 있을지는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 AI가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단계에 이르면,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을 흉내 내는 것을 넘어 마음속의 공통감이 만들어내는 심상을 포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상현 창원지방검찰청 진주지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