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후폭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계엄 사태 직후 국정 혼란이 장기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업계에선 시장 신뢰 회복과 자금 조달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여기에 이번 달 공식 출범 예정이던 국가바이오위원회가 보류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실상 출범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10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국가바이오위원회' 출범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당장 이달 출범 예정이었지만,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중단과 국무위원 총사퇴 가능성으로 정상 출범이 사실상 불가능해져서다.
국가바이오위원회는 바이오 분야의 민·관 협력을 통해 비전과 전략을 모색하고, 바이오 경제 및 바이오 안보 등을 강화해 국가경쟁력을 확보한단 목표로 정책을 논의·결정하는 범부처 민·관 거버넌스다.
그러나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위원장을 맡은 윤 대통령이 사실상 직무 배제됨에 따라, 위원회 역시 정상적인 출범·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정부와 여당이 국정 운영을 조속히 정상화하겠다고 했으나, 계엄 사태 관련 수사와 안보, 경제 등 여러 중차대한 현안들이 밀려 있어 빠른 시일 내에 위원회가 출범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정부 주도의 바이오산업 투자와 지원이 불확실해졌다"며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R&D 예산 확대 등의 정책이 단기간 내에 실행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탄핵 정국 속에 미국발 악재에도 직면하게 됐다. 계엄선포 이후 원달러 환율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의약품 원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제약사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
원·달러 환율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 1444원대까지 폭등한 뒤 여전히 14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환율 변동 폭이 커지면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거나 글로벌 제약사 등에 지불할 비용이 있는 기업의 경우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사용 원료의약품 중 70% 상당은 수입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원료의약품 대부분을 중국과 인도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환율 불안은 곧 원료의약품 수입 비용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즉 환율이 상승하면 곧바로 원료의약품 수입 비용이 늘어나는 구조다.
문제는 당분간 고환율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기업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탄핵소추안 표결 이후에도 국내 정치 불확실성 고조는 불가피할 것이며, 이로 인한 가계의 소비심리 약화, 기업 투자 유보 등은 국내 경기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며 원화 약세에 일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취약한 국내 경기 펀더멘털, 트럼프 집권 2기의 무역 갈등 심화 등을 감안할 때 미 달러의 추세적 약세 전환 전까지 환율은 1400원대에서 쉽사리 내려오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더해 중국의 바이오 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법안인 미국의 '생물보안법'이 2025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서 제외돼 연내 통과가 불발됐다. 그동안 미국의 생물보안법 입법은 우시바이오로직스 등 중국 업체와 경쟁하는 한국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개발(CDMO) 기업에게 수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지난 8일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생물보안법은 NDAA에서 제외됐으며, 독자적인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다. NDAA는 미국 국방부의 예산과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법안으로, 이번 개정안에는 중국의 악의적인 영향력을 억제하려는 여러 조치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생물보안법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 법안은 BGI그룹, MGI테크, 컴플리트제노믹스, 우시앱텍, 우시바이오로직스 등 중국 주요 바이오 기업을 제재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미국 내 중국 바이오 기업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마련된 생물보안법은 초당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특정 기업을 블랙리스트로 지정하는 데 반대하는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반발로 국방수권법에 포함되지 못했다.
중국 업체들과 경쟁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생물보안법 추진 후 수주 문의가 2배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고, 이미 올 들어 누적 수주액이 처음 5조원을 넘기는 반사이익을 누려왔다.
이외에도 투자 유치를 통해 신약 개발을 진행하는 소규모 바이오벤처의 경우 투자 경색이 지속될 경우 신약 개발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가 신뢰도 하락과 정세 불안으로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보다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엄 사태로 환율이 지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임상 등 꾸준한 신약개발이 필요한 만큼 장기적인 대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정치가 불안정한 측면이 환율로 나타나는 것이고, 이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탈출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국이 안정화돼야 환율이 다시 안정세로 돌아서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다시 국내 증시에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특히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자금 마련이 갈수록 힘들어질 것으로 보이며 신약개발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간판만 달고 있는 유령 기업이 늘어나거나 더 심해질 경우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는 바이오텍들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고환율 방어, 원료의약품 수급 차질 등에 대비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