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X세대 '청약 69점'의 절규

중년층, 외환위기·글로벌 금융 위기 극복 20년 후 또 다시 '희생' 강요당해

박선린 기자 기자  2024.09.27 15:08:05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온·오프라인,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사용한 유일한 세대. 사회 초년생부터 IMF 외환위기와 닷컴버블, 글로벌 외환위기 모두를 온몸으로 느끼며 경험한 세대. 이들이 베이비붐 세대와 이전 밀레니얼 세대를 잇는 'X세대'다. 하지만 X세대가 이런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며 차곡차곡 쌓은 소중한 '69점'이 위기에 처했다. 


X세대는 일명 '한강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고도 경제 성장 속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이전 세대와는 달리 IMF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풍요를 동시에 누린 최초 세대로 꼽힌다. 특유 탈권위적·반항적 태도 탓에 사회에서 '신인류'로 취급 받았지만, 동요와 함께 땅바닥 흙으로 집을 만들면서 '내 집 마련' 소망을 키웠다.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作


이후 40여년이라는 세월 안에서 외환위기(1997년)와 글로벌 금융 위기(2008년) 등을 마주한 X세대는 단순 좌절에 그치지 않고, 오직 생존만을 위해 탈권위적·사회 반항적 태도를 버리고 사회에 순응했다. 

"1997년 당시 25살이던 저는 막 사회에 뛰어들었죠. 근데 IMF 외환위기, 카드사태 등으로 한꺼번에 온 집안이 무너졌어요. 그래서인지 현재 MZ보단 우리 또래가 경제적 상황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큰 것 같아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눈앞에서 봤으니까요."

X세대는 사회와의 동행을 결정했지만, 과거 반항적 태도 때문인지 어느 세대와 다르게 '내 집 마련'을 이뤄내기 쉽지 않다. 이들은 청년 시절에는 '아직 차례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작정 기다리면서 청약 제도 변화에 맞춰 가점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정부 당국은 이런 중년층 X세대에게 또 다시 희생할 것으로 강요하고 있다. '저출생 문제 해결'이라는 핑계로 청약가점이 낮은 청년층을 위해 신혼부부·생애최초 등 특별공급을 확대한 것이다. 

실제 한국부동산원 '연령별 청약 당첨자 정보'에 따르면 올해 1~5월 수도권 아파트 청약 당첨자는 총 1만5790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30대 이하는 9339명에 달한다. 이는 전체의 60%에 근접하다는 얘기다. 

X세대인 서울 은평구 무주택자 A씨(1979년생)는 "중년층으로 성장한 우리 또래(X세대)들은 이전 세대와 마찬가지로 내 집 마련을 향한 희망을 놓치지 않고 있다"라며 "이젠 동요(엄마야 누나야) 속 강변은커녕 우리 손에 쥐고 있는 건 나날이 순서가 멀어지고 있는 대기표"라고 하소연했다. 

더군다나 X세대 불만은 최근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펜타스 청약 당첨자 발표 이후 '청약통장 무용론'이 언급될 정도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청약홈에 따르면 올해 1~8월 강남 3구에서 분양한 4개 단지(△래미안 원펜타스 △래미안 레벤투스 △디에이치 방배 △메이플자이)의 주택형별 평균 당첨 가점은 73.1점으로 집계됐다. 

최저 가점과 최고 가점은 각각 71.9점, 75.5점이다. 여기에는 4인 가족 기준 만점인 '69점'이 당첨 커트라인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비상식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강서구민 B씨(1983년생)는 "청약 제도 개선과 무주택자에 대한 대출 규제 완화를 검토하길 바란다"라며 "미래세대도 중요하지만, 성실히 세금을 납부하고 국가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우리 고충도 들어달라"라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청약 제도는 저출생 대응에 맞춰지면서 일정 부문 중장년층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가점 배점 항목은 시대 상황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정층 주거지원만이 아닌 세대구성원을 모두 아우르는 세분화된 정책 혜택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