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응도(裴應道: 한국생산성본부 부회장)
한국재벌 형성의 사적 고찰
1.재벌형성 이전
한국의 민족자본의 생태를 과거와 현재에 긍하여 고찰함은 한국재벌형성의 과정을 분석함에 도움이 될
것이다.
8.15 해방 전의 통계에 의하면 그 당시의 한국내의 모든 산업자본이 그 성격상 본질의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표면화된 자본의 대부분이 일본인들의 소유였고, 그 중 불과 3%만이 한국인의 소유였다는 사실로 보아 그 당시의 한국인재벌이나 대자본가가 없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
그 다음에 소위 한국인의 민족자본은 거개가 토지자본이었다고 하나 토지자본의 분포상태는 해방 전인 1942년 말 현재의 통계로는 소위 한인지주라고 지칭되는 사람이 394만 명에 그 소유토지는 404만 정보에 불과했고 일인(日人)의 지주는 12만 명에 그 소유토지가 42만 정보였다.
이 통계를 통하여 보아도 한국인의 자본의 유일한 근거지였던 토지소유면에서도 그 평균소유면적이 평균 1정보에 불과한데 반하여 일인지주의 평균소유면적은 일인당 1.5정보 평균이 되는 셈이다.
이 실정으로 보아 해방 당시의 한인의 민족자본은 ‘무(無)’에 가깝고, 따라서 한인재벌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전제를 놓고 오늘의 몇몇 재벌의 형성과정을 고찰함이 현실에 가까울 것이며 그 기원점을 해방 후에 두고 다시 그 실질적 기점을 6.25동란 이후에 두고 보는 것이 실제에 부합될 것이다.
2.재벌형성의 기초
해방 후 민족산업의 자주적 시동의 바탕이 전기한 바 약간의 민족산업자본과 토지자본에서 이루어졌다고 보기에는 해방 후의 제 실정이 그것을 수긍시키지 않는다.
즉 토지개혁으로 인한 지주재벌의 몰락과 6.25동란에 의한 파괴가 약간의 구태의연한 산업시설을 말살해 버렸기 까닭이다.
그러면 오늘날의 기형적이면서도 다소의 국가경제성장과 그 성장과정에서 급작히 형성된 몇몇 재벌의 발전모체는 일인소유재산과 해방 후 현재까지 이루어진 외원(外援)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부인할 자 없을 것이다.
이 전제를 좀 더 압축하여 고찰하면 일인 소유였던 귀속재산은 군정부와 한국정부의 관리단계를 거쳐서 민유화하였고, 그 시설재산이 매우 노후하였다는 사실과 6.25동란으로 태반이 파괴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란 이후 경제활동에 크게 역할치 못하였음이 사실인 것이요,
다음에 우리나라가 지니고 있는 천연자원인 광산과 수산과 농업이 오늘 현재로 보아 가장 후진적이며 투자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고, 셋째로 우리 국가자본의 중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휴노동력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질적으로도 경제발전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가경제의 발전이 정상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상의 사실은 우리의 국민경제발전에 있어 우리가 지출할 수 있는 민족자본과 천연자원과 풍부한 노동력이 오늘의 경제성장에 올바른 참여를 못하였다는 사실은 다음에 말하고자 하는 무상원조로 이루어진 28억달러의 외원에 의하여 성장했고 재벌의 형성도 이 외원의 운영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입증할 것이다.
3.재벌형성 과정
한국의 경제재건과 군사원조를 중심으로 한 외원과 이에 수반한 국내경제시책이 여하히 이루어 졌으며 투자, 생산, 소비, 분배, 재투자, 재생산이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경제의 성장형태의 오늘의 결과부터 말하면 한국의 경제성장은 넉시가 일반후진국경제성장과정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첫째로 불균형성장을 하였고 둘째로 성장진로가 수요면에서 발견되며 소위 빈곤의 악순환을 타개하지 못하고 있으며 셋째로 그 성장이 상호지원적인 동시적성장이 못되고 부분적 성장을 이룩했다.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 원인을 살펴보면 본고 서두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민족자본의 실태가 한국인 경영자 3,665명은 거의 소규모공장의 주인이었고 총산업자금 3%밖에 갖지 못한 터이었으므로 자가투자의 여지가 없었고 이 점에 관한 토지형태나 비율은 논의 대상이 안 된다.
다음에 자본조성의 유일의 길인 자본축적은 국민소득 수준의 자율성으로 인하여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사실을 입증하는 예로는「네이산보고서」에서 1949년 4월부터 1950년 3월에 이르는 1년간의 한국 국민소득은 1인당 70달러이며 그 중 국민생산소득이 67달러이고 나머지 3달러는 외원에 의한 소득이라고 지적되어 있다.
다음에 이 70달러의 소득중에서 소비지출이 64달러이고 투자저축을 6달러로 계상하고 있다.
1957년의 국민총지출은
1만6,791억이고 민간투자 1,571억, 정부투자 1,154억 합계 2,725억으로서 국민총지출의 16% 정도의 투자로서 일인당
1만2,658원이므로 총투자는 1만2,605달러(달러 1000원으로 하여) 순민간투자는 7.3달러 밖에 안되었다고 한다.
1950년의 투자 6달러과 1957년의 7.3달러의 차이가 1.3달러의 증대를 보인 듯도 하나 모두가산출에 있어 추산부분이 있는 까닭에 평균하여 7달러로 계상한다 하더라도 한국의 실정이 전쟁에 대한 불안감과 경제적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는 잉여소득의 5% 이상이 비저축성퇴장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겠다.
이 상태를 외국의 연간민간투자에 비교하여 보면 미국이 302달러, 영국이 95달러, 일본이 36달러, 필립핀이 12.6달러로 되어 있으므로 한국의 민간투자능력과 그 저소득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은 국내의 유일한 가용자원인 노동력활용이 경제성장에 있어 불완전하였다는 입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