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투자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는 큰 고민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기업공개(IPO)나 합병, 주식양수도거래 등을 통한 인수거래 등 소위 'Exit'을 앞두고 예상치 못하게 창업자의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바로 잔여재산분배 우선권(Liquidation Preference)의 내용 중 청산 간주 (Deemed Liquidation)조항이다.
회사가 투자자와 투자계약을 체결하고 우선주를 발행해 주는 경우, 우선주의 내용으로 투자자가 다른 주주에 대해 우선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이외에도 회사에게 해산사유가 발생해 청산절차를 거치는 경우 남는 잔여재산에 대해 투자자의 지분에 상응하는 우선권을 갖도록 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서 나아가 투자자는 투자계약에는 존립기간 만료 기타 정관으로 정한 사항 등 상법이 정한 회사의 해산사유(상법 제517조) 이외에 위에서 본 Exit 사유 등을 '청산 유사사유' 내지 '청산간주사유'로 규정하고, 이러한 경우에도 투자자의 투자금 및 이에 대한 일정 비율의 이자를 합한 금액을 우선 분배하도록 규정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이른바 청산 간주 내지 준청산잔여재산분배 조항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잘 나가는 정상적인 회사가 해산을 할 리는 없으니 청산 절차로 빚잔치하는 와중에 보장받는 우선권보다는, 실익만 놓고 보면 청산 간주 조항이 투자자에게 보다 실질적인 의미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청산 간주 조항은 국내 상법상 효력이 없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상법의 회사편 규정들은 대부분 강행규정으로, 당사자들이 계약으로 이와 다른 내용을 정하더라도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따라서 상법이 정한 해산사유가 아님에도 Exit 사유를 해산 및 청산이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하여 잔여재산의 우선분배를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아가 규정 형식만을 놓고 보아도 청산 간주 조항은 해석상 문제가 많다.
M&A시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식양수도거래를 보아도 이는 인수인이 창업자 등 '주주'에게 양수도대금을 지급하는 것인데, 잔여재산분배 청구권은 투자자가 '회사'에 대해 가지는 권리이고, 양수도대금을 '회사의 잔여재산'이라고 해석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지적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인지 최근에는 조항의 형식을 아예 투자계약상 이해관계인인 대주주 내지 창업자가 Exit 시 직접 투자자에게 일정 금액을 우선 지급하는 형태로 규정되는 모습도 종종 발견된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잔여재산분배 우선권의 내용이라고 볼 수 없고, 창업자와 투자자 양 당사자간 주주간계약의 내용으로서 반드시 이에 관한 별도의 협상 과정을 거친 합의를 필요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청산 간주 조항은 효력이 없다는 해석에도 불구하고, 실제 M&A를 앞두고는 이 조항이 현실적인 힘을 발휘하는 경우도 목격된다.
창업자, 인수인, 기존 투자자 등 수많은 이해관계인들이 일정한 의사 합치에 이르러도 실제로 성사되기까지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M&A 거래인데, 투자자가 청산 간주 조항을 근거로 일정 금액의 우선 보장을 요구하는 경우 창업자 등이 법률해석만을 내세우며 이에 마냥 반대하기는 어렵고, 결국 투자자의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정리하면 미국 투자계약을 무비판적으로 베껴와 그 법적 효력이 의심되고 분쟁 가능성이 있는 청산 간주 조항은 규정되지 않는 것이 적절하고, Exit 시 이익 배분을 내용으로 하는 변형된 형태의 조항은 투자계약 체결 과정에서 면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강송욱 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 /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