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대형 오픈마켓에 의한 판매대금 유용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오픈마켓을 비롯한 사업자가 PG(전자지급결제대행업자)를 겸영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사업자와 PG 분리, PG 내부의 계정 분리 등 이중의 분리가 이뤄질 때 비로서 결제의 완결성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KCMI)이 발간한 자본시장포커스에서 신보성 선임연구위원은 티몬, 위메프에서 발생한 대규모 판매 정산 지연 사태에 대해 이같이 짚었다.
신 연구위원은 "이번에 문제가 된 티몬·위메프 등은 오픈마켓(open market)에 해당한다. 일반적인 온라인상점은 자신이 보유한 상품을 자신이 만든 별도의 온라인사이트를 통해 판매한다. 반면, 오픈마켓은 다수의 온라인상점을 대신해 대규모 온라인사이트를 개설한다. 그러면 온라인상점들은 이 사이트에 입점해 물건을 판매한다. 오픈마켓은 일종의 온라인장터 제공자인 셈이다. 자신의 사이트를 직접 개설하기 어려운 영세 사업자나 브랜드 파워가 약한 사업자 입장에서, 대형 오픈마켓은 물건을 한층 용이하게 판매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는 이들 오픈마켓이 PG의 역할까지 함께 수행했다는 데 있다. 일반적인 온라인상거래의 경우 결제정보 송수신과 판매대금 정산을 단일 PG가 하는 반면, 오픈마켓의 경우 1차 PG와 2차 PG로 나뉜다. 1차 PG는 결제정보 송수신 및 2차 PG에 대한 판매대금을 정산하고, 2차 PG는 셀러에 대한 판매대금을 정산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즉 일반적인 온라인상거래의 경우 카드사가 판매대금을 1차 PG에 지급하고, 판매대금을 받은 1차 PG는 이 대금을 셀러에게 직접 정산해준다. 반면 오픈마켓은 1차 PG가 2차 PG인 오픈마켓에 대금을 정산해주면, 이 정산 대금을 오픈마켓에서 셀러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1차 PG는 판매대금을 오픈마켓에 그대로 흘려보내는 일종의 도관 역할만 수행하는 것이다.
이같은 구조로 티몬과 위메프는 1차PG로부터 수령한 판매대금을 길게는 70일이 경과한 후에야 셀러에게 지급해왔다.
신 연구위원은 "셀러에 대한 판매대금 정산이 전적으로 오픈마켓의 처분에 맡겨지게 됐다. 그 결과 판매대금 정산기한이 대폭 늘어났다"며 "더 큰 문제는 티메프가 셀러에게 지급돼야 할 판매대금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유용했다는 점이다. PG를 겸하는 티몬과 위메프는 판매대금을 자신의 자금과 한데 섞어 사용함으로써, 응당 셀러에게 가야 할 돈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신 연구위원은 티몬과 위메프가 정산기한을 비정상적으로 늘린 것도 애초 판매대금을 최대한 자유롭게 유용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판매대금을 유용하지 않는다면 굳이 정산기한을 그처럼 늘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티몬과 위메프는 셀러에게 가야 할 정산대금의 일부를 자신의 마케팅 비용으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티몬과 위메프의 모회사인 큐텐이 미국 이커머스 기업인 ‘위시(Wish)’를 인수하는 데도 상당한 규모의 셀러 돈이 유용됐다.
구영배 큐텐 대표는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참석해 지난 2월 인수한 북미·유럽 기반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 '위시'의 인수 대금에 티몬과 위메프 자금을 쓴 사실을 인정했다. 구 대표는 인수 자금이 어디에서 나왔느냐는 질의에 "현금으로 들어간 돈은 4500만(달러)이었고 그 돈에 대해 일시적으로 티몬과 위메프 자금까지 동원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신 연구위원은 오픈마켓을 비롯 사업자가 PG와 같은 지급결제업무를 겸영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연구위워은 "PG와 사업자의 분리를 통해 오픈마켓 등 사업자 자금과 상거래를 위한 지급결제 자금이 혼용될 위험을 차단할 수 있다. 나아가 PG자체에 대한 규제도 강화될 필요가 있다. 즉, PG의 고유계정을 지급결제 계정과 분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PG의 고유계정과 지급결제 계정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PG 자체의 수익 악화 혹은 자금유용 등으로 지급결제는 언제든 확실한 것이 아닌 확률적인 것으로 바뀔 수 있다. 특히 산업자본에 의한 PG 소유가 금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위험은 실제적인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의 재발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사업자와 PG의 분리, PG 내부의 계정분리라는 이중의 분리조치가 필요하다. 이중 분리가 이루어질 경우 논의되는 대안의 하나인 오픈마켓 보유 정산대금에 대한 지급보증보험 가입 조치는 불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신 연구위원은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 중 하나인 판매대금의 정산기한 단축, 감독강화는 부차적 이슈라고 판단했다.
신 연구위원은 "지급결제의 완결성 확보라는 점에서 볼 때, 정산기한 단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정산기한 단축으로 판매대금 유용 가능성이 낮아질 수는 있지만 완전히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러나 이중의 분리가 이루어진다면, 추가적인 규제 없이도 정산기한 단축은 저절로 달성될 개연성이 크다. 상거래를 위한 결제자금이 완전히 분리돼 오픈마켓과 같은 사업자 혹은 PG가 유용할 수 없다면, 정산대금 지급을 미룰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오픈마켓에 대한 건전성 규제와 사후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현재 PG를 겸하는 오픈마켓은 금융위원회의 등록 대상이다. 허가업자가 아닌 등록업자인 만큼 이들에 대한 규제강도는 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PG를 겸하는 오픈마켓도 허가대상으로 전환하는 한편, 진입요건을 강화하고 심지어 은행 등 주요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적기시정조치를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시되고 있다.
이에 대해 신 연구위원은 "이는 문제의 핵심을 비켜간 것"이라며 "금융당국은 금융업에 전문화된 규제 및 감독기구다. 따라서 오픈마켓과 같은 비금융업의 경우, 지식과 정보 면에서 금융당국은 해당 관할 부처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또, PG를 겸영한다는 이유로 오픈마켓과 같은 비금융업자를 금융당국이 규제하고 감독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금융당국은 오픈마켓의 PG겸영 금지를 통해 결제자금의 안전성을 확보하는데 주력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오픈마켓을 비롯한 비금융업자가 금융당국의 규제 및 감독 대상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신 연구위원은 "금융회사건 비금융회사건,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혹은 하이브리드건, 어떤 사업자라도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자금의 보관 및 결제기능을 수행한다면 이는 금융기능으로 규제돼야 한다. 그리고 규제를 위한 원칙은 철저한 분리다. 이러한 원칙에 입각할 때, 이번에 문제가 된 티몬과 위메프는 물론, 배달앱, 숙박앱 등 어떠한 형태로든 고객의 결제자금을 보관, 관리하는 업자라면 이 자금을 회사자금으로부터 엄격히 격리시켜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상품권을 발행하는 사업자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마지막으로 신 연구위원은 "오픈마켓을 비롯한 유통업자는 본업인 유통부문의 혁신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고객의 결제자금을 활용해 자신의 이익과 성장을 꾀함으로써 결제시장의 작동을 방해하는 것은 결코 혁신일 수 없다. 혁신 역시 시장이 작동하는데 필수적인 최소한의 인프라가 지켜지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혁신으로 포장된 사익추구 행위로 인해 시장의 근간이 훼손될 위험은 없는지 보다 냉철하게 살필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