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김유제 시인(62)은 소년 시절부터 문학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난으로 인해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그의 인생은 석재회사 운영과 교통사고로 인한 부도라는 위기를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글을 써왔고, 1991년 보령문인단체에 투고한 글들로 문인의 길을 걷게 됐다.
보령시 미산면 봉성리 출신인 김 시인은 32여 년 동안 석공예가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2000년에는 '문예사조'로 등단해 문인 활동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보령시문인협회 '보령문학' 대상을 차지하며 그동안의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김 시인은 왕성한 마을 활동을 위해 이장이 됐으며, '봉성리 시앤 숲 문화예술학교'를 설립해 마을을 세계 최고의 문학예술 마을로 조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 학교는 주민들이 시를 공부하고 붓글씨를 연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주민들 스스로 예술인으로 거듭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출간된 '봉성리사람들 2집'은 주민 24명이 함께 만들어낸 결실로, 마을의 화합과 농촌의 삶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김 시인은 '봉성리 새소리 작은 도서관'을 설립하고, '시창작교실'을 운영하며 주민들에게 문학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또한 한국문학 최초의 '문학헌장비'를 '한국문학헌정비공원'에 세우는 등 문학의 가치와 역사를 기리고 있다.
이 공원에는 '국제PEN헌장비', '시조헌장비', 그리고 유네스코에 등재되기 위한 노력으로 제작된 '황진이를 찾아서'와 같은 기념비적인 작품들도 포함돼 있다.
김유제 시인은 현재 △한국문협 문학기념물조성위원회 위원장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 △충남문협 충남도지회 충남시인협회 이사 △한국시조협회 이사 △보령문인협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는 '서울역의 봄'과 '아침을 여는 여자'를 출간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봉성리 문화예술마을'은 전국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코로나19 이전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 바 있다. 김 시인은 벼루역사문화를 연구해 성주산에서 '석란광맥'을 발견하고, 보령도자기를 찾아내 보관하는 '도자기 박물관'을 운영하는 등 보령의 문화를 재조명하고 있다.
김유제 시인은 서울 인사동에서 '한국의 벼루전'을 개최했으며, 한국서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물벼루 '석란연'을 희사한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시인의 석공예와 문학의 조화는 봉성리 마을의 또 다른 보물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그는 아내 임미선(59)씨와 소방공무원인 두 아들과 함께 가족과 함께 삶의 새로운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김 시인의 확고한 의지와 열정은 봉성리 마을을 국제화된 문화예술 마을로 변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