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잇단 전기차 화재 사고로 차주를 넘어 일반 시민까지 불안에 떠는 모습이다. 일명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한 것. 이에 국내 배터리업계는 안전성 강화에 온 힘을 쏟아붓는 상황이다.
당초 지난 1일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EQE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중국 배터리 제조사 '파라시스 에너지'의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확인, 국내 배터리업계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랐다.
그러나 지난 6일 충남 금산에서 발생한 기아 전기차 EV6 화재에서 국내 업체 SK온이 만든 배터리가 차량에 탑재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배터리 국적에 상관없는 공포감이 커졌다. 물론 두 사고 차량 모두 삼원계(NCM) 배터리가 탑재됐지만, EV6 화재는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EV6 사고에서는 화재 확산 방지 시스템이 어느 정도 효율적으로 작동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화재 확산 방지에 대한 차이점은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같은 계열의 배터리라도 업체 기술력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이 때문에 국내 배터리업계는 안전성에 초점을 맞추고 화재 확산 방지 기술력 고도화에 사활을 거는 상황이다.
우선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모듈에 방화 소재를 적용하고, 발화되더라도 배터리 팩 밖으로 불이 번지는 시간을 늦출 수 있는 소재로 팩을 생산하고 있다. 또 모듈과 팩에 쿨링 시스템을 적용해 열이 전이되는 상황을 차단한다.
프리미엄 제품인 하이니켈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는 설계 최적화를 통해 열 제어 기술을 향상했다. 니켈 함량을 50~60% 수준으로 낮추고 망간 함량을 높인 고전압 미드니켈 NCM(니켈·코발트·망간)의 경우 발열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열 안전성이 30% 이상 높다.
원통형 46시리즈는 올해 말 양산 예정으로, 셀 단계에서 배터리 내부 폭발 에너지를 외부로 빠르게 배출시켜 셀의 저항을 줄이고 연쇄 발화를 방지하는 '디렉셔널 벤팅' 기술을 적용한다.
삼성SDI(006400)는 각형 배터리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각형은 배터리 폼팩터(형태) 중 안전성 측면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 삼성SDI는 셀부터 팩까지 단계별 전문가로 구성된 '열 전파 방지 협의체'를 사내에 구성해 제품군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적용하고 있다. 열 전파를 예측하는 소프트웨어 역시 개발, 고도화하고 있다.
SK온은 분리막을 지그재그 형태로 쌓는 'Z폴딩' 기법을 통해 배터리 셀이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양극과 음극의 접촉 가능성을 차단해 화재 발생 위험을 낮추는 기술을 도입했다. 분리막 사용량이 일반 공정 대비 많지만,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이다.
배터리 제조에 쓰이는 양극활물질의 구조적 안전성을 높이고 배터리 장기 성능을 향상하기 위해 원소배합을 조정하는 복합 도핑 기술도 상용화했다.
이처럼 국내 배터리업계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당장 적용 가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화재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과충전'을 막기 위한 정부·자동차 업체·배터리 제조사의 움직임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즉, 배터리를 100%까지 완충하지 않고 80~90% 정도로 충전하는 것이 화재 예방 핵심 방법이라는 것. 이를 위한 운전자들의 습관 형성도 중요하며, 업체들도 자체적으로 배터리가 과충전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밀도는 떨어지지만 안정성은 뛰어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대안으로 떠오른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삼원계 배터리의 과충전만 막는다면 LFP 배터리보다도 화재 발생률이 적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 교수는 "국내 업체들이 배터리를 값을 손해 보더라도 100% 충전이 아닌 90% 정도만 충전되도록 조정하면 LFP 배터리 이상으로 화재 위험을 막을 수 있다"며 "배터리 제조사나 자동차 업체가 트레이드 오프 포인트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향후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환경 정책은 어쩔 수 없는 방향이고, 2050년 넷 제로(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선 전기차를 제외하고는 대안이 없다"며 전기차 포비아 현상이 확산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12일 전기차 포비아 확산세를 진정시키기 위한 정부 종합대책 수립 작업이 본격화됐다. 정부는 이날 '전기차 및 지하 충전소 화재 안전 관계 부처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 결과를 토대로 정부는 오는 13일 국무조정실장 주재 차관회의를 열어 내달 초 발표할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 기틀을 잡을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