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티몬·위메프의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와 관련해 모기업인 큐텐그룹이 7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금융당국은 700억원이 조달돼도 사태 해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판매자들에 대한 미정산 금액이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큐텐그룹 계열사 내 자금난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큐텐의 지분 3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사모펀드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 28일 금융당국과 유통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큐텐 측에 자금조달 계획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해외 계열사인 '위시'를 통해 5000만달러를 8월 중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전달받았다.
이는 금융당국이 큐텐 측과 면담에서 티몬·위메프 사태와 관련해 모기업이 책임 있는 자세로 수습에 나설 것을 촉구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700억원을 끌어온다고 해도 사태를 수습하기에는 부족할 전망이다. 지난 22일 기준 금융당국이 파악한 미정산 금액은 티몬 1097억원(750사), 위메프 565억원(195사) 수준이다. 이는 지난 5월에 발생한 거래 대금으로 오는 8~9월 중 정산이 예정된 6~7월 거래 대금과 소비자에 대한 환불액까지 고려하면 수천억원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큐텐의 자금 조달 계획 자체의 신뢰성에도 의문이 일고 있다.
지난 27일 권도완 티몬 운영사업본부장은 환불을 받기 위해 서울 강남구 티몬 사옥에 몰려든 소비자들에게 "중국에 큐텐 자금 약 600억원이 있는데, 이를 바로 빼 올 수 없어 대출해 오려고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확인을 요청하는 취재진 질문에는 "들은 적이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고 했다.
이와 관련,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큐텐 측 이야기를) 아예 신뢰할 수 없다"며 "신뢰가 생기려면 진작에 구영배 큐텐 대표가 나타났어야 하는데 나타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큐텐의 핵심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는 구 대표를 사실상 해임하면서 정산 지연 사태를 빚고 있는 큐텐 그룹과 선 긋기에 나섰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글로벌 물류회사 큐익스프레스는 지난 26일 이사회를 열고 싱가포르 본사의 신임 대표이사(CEO)에 마크 리(Mark Lee)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선임했다.
마크 리 대표는 취임 즉시 비상경영체제 돌입을 선언했다.
큐익스프레스는 큐텐 그룹의 핵심 물류 자회사다. 구영배 대표는 큐익스프레스를 나스닥에 상장시키기 위해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등을 무리하게 인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 보유 현금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몸집을 불려 워킹캐피탈(운전자본)을 만들기 위해 큐익스프레스 지분과 맞교환하는 방식을 썼다.
◆소비자·판매자 줄이탈...기업회생절차 전망도
큐익스프레스가 정산 지연 사태에 선을 긋고 나서면서, 결국 사태 해결의 답은 외부에서 자금 수혈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현재 당장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곳으로는 큐텐그룹 주식을 보유한 기업들이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일단 큐텐의 2대 주주인 미국 몬스터 홀딩스가 있다. 몬스터 홀딩스는 미국계 사모 펀드(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앵커에퀴티파트너스가 공동 출자해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으로 티몬의 대주주였다. 큐텐이 2022년 9월 지분 교환 방식으로 티몬을 인수할 때 주식 81.7% 전량을 내주고 큐텐과 큐익스프레스(큐텐 그룹의 물류 자회사) 지분을 확보했다.
또 다른 큐텐 주주인 원더홀딩스도 자금 공급처로 꼽힌다. 위메프 대주주였던 원더홀딩스는 지난해 4월 몬스터 홀딩스처럼 큐텐에 주식을 넘겨주면서 큐텐 지분을 받았다. 이밖에도 2020년 말 큐텐이 발행한 3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인수했던 PEF 운용사 코스톤아시아, 큐텐 주식 일부를 보유한 NXC(넥슨 그룹 지주사)·넥슨코리아 등도 자금을 수혈할 후보자로 꼽힌다.
그러나 소비자와 판매자의 줄이탈로 기업 생존마저 불투명해진 탓에 외부 자금수혈을 기대하기 어렵다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티몬이나 위메프를 포함해 큐텐그룹에 자금수혈을 해 줄 기업이 나타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개인 소비자에 대한 미환불금을 비롯해 판매자 미지급금 등 갈수록 손실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 상황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자체 사업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게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큐텐이 티몬이나 위메프를 인수한 이후에도 해당 사업군에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가 이어졌기 때문에 누적 손실이 드러났고, 덧붙여서 아직 거론되지 못한 잠재 부실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티몬이나 위메프 혹은 모기업인 큐텐그룹이 외부 자금 수혈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1세대 이커머스 기업인 큐텐그룹이 충분히 시장의 변화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나, 시장에 거론되는 것처럼 사업목적이 전자상거래 자체가 아니라 물류기업을 키우는게 목적이었다는 점이 이번 몰락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비춰진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선 티몬·위메프가 자금난에 몰린 기업의 '마지막 선택'인 기업회생절차를 밟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중소 판매자들은 판매대금을 당분간 돌려받을 수 없다. 금융 채권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상거래 채권까지 모두 동결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구 회장이 사재를 털지 않는 한 티몬·위메프의 선택은 파산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 회사가 파산 신청을 하면 피해자 보상은 더욱 어려워진다.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티몬과 위메프에 자산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정산금을 받지 못한 판매자가 선순위 채권자일 가능성이 높아 일반 소비자들은 다른 피해 구제 절차를 통해 환불받아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티메프 소비자 환불에 속도...류광진 "정상화 위해 최선"
한편, 티몬과 위메프에서 소비자 환불에 속도를 내고 있다. 티몬은 지난 28일 오전 현재 600건의 주문을 취소하고 환불 절차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지난 26일부터 이틀간 도서문화상품권 선주문건 2만4600건을 취소 처리했다. 취소액은 KG이니시스 약 26억원, 나이스페이먼츠 약 42억원, KCP와 KICC(한국정보통신) 약 40억원 등 모두 108억원이다.
위메프도 현장과 온라인 접수 양방향으로 이날 오전까지 3500건의 환불 절차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의 협조 요청에 간편결제사들과 PG사들이 이번 주부터 티몬과 위메프 결제 건 취소를 진행할 예정이어서 소비자 환불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지난 26일 여신금융협회가 티몬과 위메프 소비자들의 결제 취소와 환불 지원책을 발표했다. 롯데·BC·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NH농협카드 등 9개 카드사가 티몬과 위메프에서 결제했지만 물품을 받지 못한 소비자에게 직접 취소, 환불을 진행하는 형태다.
먼저, 일시불로 결제한 경우 '신용카드 이용대금 이의제기 절차'에서 결제 취소 신청이 가능하다. 단,
티몬과 위메프에서 정상적으로 결제했으나, 물품이나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는 증빙이 필요하다. 고객들은 각 플랫폼의 마이페이지 내 구매내역을 결제에 사용한 카드사의 고객센터, 홈페이지 또는 모바일 앱에서 신청하면 된다.
또, 할부도 물품이나 서비스를 받지 않았다면 할부계약 철회·항변권을 신청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결제금액이 20만원 이상이고 3개월 이상 분할 납부하기로 한 경우 철회나 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류광진 티몬 대표는 "고객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으며, 공지사항 및 개별 메시지를 활용해 카드결제 취소 방법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며 "소비자들과 파트너들에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소상공인에 긴급자금 '유동성 5600억+α' 지원
소비자 환불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잡으면서 티몬과 위메프에 거액의 정산금을 물린 판매자(셀러) 피해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제때 정산받지 못한 중소상공인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연쇄 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줄도산 현실화 우려가 커지자 경제단체들은 자체적으로 피해 접수를 시작했다.
정부 역시 위메프·티몬 판대금 미정산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소상공인에 총 5600억원 이상의 유동성을 투입한다. 대출·보증 만기도 최대 1년 연장한다.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은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위메프·티몬 사태 관련 관계부처 전담팀(TF) 회의를 주재하고 이 같은 내용의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김 차관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을 통해 2000억원 규모의 긴급경영안정자금을 공급하겠다"며 "신용보증기금 보증을 통해 기업은행이 저리로 대출하는 3000억원의 지원 프로그램도 신설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 기업의 기존 대출·보증 만기를 최대 1년 연장하고 여행사 등에는 600억원 규모의 이차보전을 지원하겠다"며 "종합소득세, 부가세 납부기한을 최대 9개월 연장하고 부가세 환급금액 조기 지급하는 등 세정지원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정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파악된 미정산액 규모는 2100억원 이상으로 집계됐다. 추후 정산기일이 다가오는 거래분을 감안하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 피해방지를 위해 여행사·카드사·전자지급결제대행사(PG사) 등과 긴밀한 협조를 통한 카드결제 취소 등 신속한 환불 처리를 지원하고 이미 구매한 상품권의 경우에는 사용처 및 발행사 협조 아래 소비자가 정상적으로 사용하거나 환불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또한 신속한 피해구제를 위해 금융감독원과 한국소비자원에서 민원접수 전담창구를 운영한다. 다음 달 1일부터 9일까지 여행·숙박·항공권 분야 피해 소비자를 대상으로 집단분쟁조정 신청 접수도 진행한다.
정부는 가용한 자원을 최대한 동원해 피해 최소화에 나설 방침이다. 김 차관은 "이번 사태의 최종적인 책임은 약속한 판매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위메프와 티몬에 있다"면서도 "선량한 소비자와 판매자가 입은 피해를 지켜만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