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세계적인 헤지펀드가 KT&G의 지분을 매입하며 경영권참여를 요구해 KT&G 경영권에 비상이 걸렸다.
6일 KT&G에 따르면, 세계적인 기업 사냥꾼인 칼 아이칸이 운영하는 미국계 헤지펀드로서케이먼 아일랜드 소재의 사모투자조합인 ‘아이칸 파트너스 마스터 펀드’가 지난 3일 공시를 통해 KT&G 지분 1070만주 6.59%의 지분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시에서 “KT&G의 경영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지분을 취득했다”고 말했다.
주식 매수 기간은 지난해 9월28일부터 올 1월9일까지다.
칼 아이칸이 KT&G에 대한 경영참여 의사를 밝힌 이유는 대주주가 없고, 자산가치는 9조원에 육박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KT&G의 자산 가치는 공장 부지, 영업권, 자회사인 인삼공사 등을 포함해 8조6000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KT&G는 현재 중소기업은행(지분율 5.85%)이 최대주주로 신고돼 있지만, 사실상 최대주주는 지분 7.14%를 가지고 ‘경영 참여’ 목적을 밝힌 미국계 프랭클린뮤추얼펀드다. 결국 칼 아이칸이 지분 6.59%를 매입함에 따라 KT&G의 1, 2대 주주는 모두 외국계 펀드가 장악하게 된 셈이다.
이들이 만약 연합할 경우 지분율은 13.73%로 껑충 뛰어 올라 KT&G측의 우호지분(기업은행 5.85%, 우리사주 조합 5.78%)인 11%를 육박하게 돼 사실상 KT&G는 ‘적대적 M&A’에 노출되는 상황이다.
◇ 칼 아이칸 “경영권 행사하겠다”
실제 칼 아이칸은 그동안 KT&G에 대해 직간접적인 경영 간섭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번 지분 확보를 통해 경영간섭의 노골화 및 경영권 다툼 시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칼 아이칸측은 이미 지난해 말 KT&G에 대리인을 보내 인삼공사 IPO(Initial Public Offering: 주식공개상장), 유휴부동산 매각, 자사주 소각, 배당확대, 이사선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칼 아이칸은 6일 사외이사 후보로 워렌 G. 리히텐슈타인, 하워드 엠 로버, 스티븐 울로스키 등 3명을 추천하면서 3명의 상임이사와 9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된 KT&G의 경영권 개입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때문에 증권업계는 이번 사태가 제2의 SK-소버린 사태로 확산될지 우려하고 있다.
지난 2003년 3월 소버린자산운용이 SK(주) 주식을 대량 매입, 2대 주주로 올라선 뒤 장기간 경영권 다툼을 벌였던 사태가 재연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증권업계에선 칼 아이칸의 KT&G에 대한 ‘경영권 위협’은 쉽지 않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대증권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는 KT&G 우호지분이 18%에 육박하고 있고,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 9.6%가 우호주주에게 매각될 경우 경영권 위협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제2의 SK-소버린 사태 확산 우려
눈여겨 볼 점은 지분이 외국계 투기자본과 같은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넘어간 KT&G는 이전에도 투기자본에 의한 경영진 교체 협박이 있었다는 대목이다.
영국계 펀드 더칠드런스인베스트먼트(TCI)가 2004년 말 KT&G에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라고 요구했고, 이후 외국계 주주들과 연합해 KT&G의 경영진 교체를 거론하며 압박에 나섰던 것. 당시 TCI는 “KT&G의 매출액에 비교해 인건비의 비중이 너무 높다”며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등 종업원 중심정책에 반대의사를 분명히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KT&G는 현재 경영권 방어를 위해 우호세력 확보에 나서는 등 오는 3월 초로 예정된 주주총회를 앞두고 표대결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단기적 투자차익 증대를 위한 외국계 펀드들의 횡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갈수록 비등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한결같이 투기자본에 의해 KT&G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일들이 ‘투기자본의 천국’이 돼버린 한국사회의 단면을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투기자본센터는 6일 성명을 통해 “이대로 간다면 한국은 말 그대로 투기자본의 천국이 되고야 말 것이고 그 결과 양극화와 빈곤화가 극심해질 것”이라며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규제폐지 지상주의’라는 미몽에서 벗어나, 투기자본의 횡포를 양산하는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는 외자유치만 하면 기업이 선진화하여 경쟁력이 강화되고, 그 과실이 시민들에게 나눠질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되풀이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그 실재가 어떠한지는 대주주가 된 몇몇 투기자본의 투자차익을 위해 사회적 공익을 희생시키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던 지난 몇 년간의 참담한 결과를 보면 분명해 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