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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도 내 얼굴만 보면 한숨만…”

[설특집] 구정이 반갑지 않은 사람들 <하>

최봉석 기자 기자  2006.01.27 16: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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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정점식(39)씨에게 이번 설날은 해고자 신분으로 맞는 두 번째 설이다. 지난해나 올해나 ‘해고자’라는 표현하기 껄끄러운 사실 때문에 명절 자체가 힘들기는 마찬가지지만, 얼마 전 중노위에서 열린 ‘부당해고 구제신청’에서 ‘해고’ 판정을 받은 까닭에 서글픈 생각이 들어 마음이 시려온다.

   
“그때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더 힘드네요, 솔직히.”

그는 요즘 들어 더욱 바빠졌다. 생계는 더욱 어려워졌고 ‘결국’ 먹고 살아야 하는 까닭에 복직투쟁을 전개하면서도 일자리까지 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잘 돌아가는 그런 회사에 정식으로 취업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아르바이트라도 해야죠.”

그가 입사하고 싶은 회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해고했던 GS칼텍스. 그가 27일 설핏 설을 맞이하는 느낌에 대한 얘기 보따리를 털어놨다.

여수가 고향인 정씨가 GS칼텍스 여수공장 운영부에 입사한 것은 지난 92년. 최선을 다해서 일했다. 그런데 2004년 12월23일에 해고됐다. 그해 여름 GS칼텍스 노조는 지역사회 환원기금 조성, 비정규직 차별철폐, 신규인원 충원을 통한 주5일제 실시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였다. 그는 당시 노조 법규국장이었다.

노조는 불과 17일만에 파업을 접었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배부른 임금투쟁’이라며 비난의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었다.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은 언론을 통해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대기업 노조가 돈을 더 달라고 파업하네요”라는 목소리만 신문과 방송을 온통 지배했다. GS칼텍스는 조합원들이 복귀하고 몇 달 뒤인 12월, 노조 간부 23명을 해고시켰다. 정씨도 해고자 명단에 들어갔다.

정당한 노조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졸지에 해고자가 돼 버린 그는 그래서 해고된 노동자들의 모임인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해복투)’에 들어가 복직투쟁을 전개해왔다. 매일 7시20분까지 여수공장 정문 앞으로 출근했다. 복직에 대한 바람을 피켓팅 시위를 통해 출근하는 동료들에게 알려냈다. 이 자리에는 ‘해고자가족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내도 종종 함께했다.

정씨가 여수에서 지역 노동사회단체들과 연대해 복직투쟁을 전개하고 있을 때 아내는 대법원과 청와대 그리고 중앙노동위원회 앞에서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1인 시위를 전개했다. 그런 생활이 꼬박 2년이다. 그동안 퇴직금을 포함해 벌어놓은 돈은 다 써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설에 본가를 찾아간다는 게 참 그래요. 부모님을 찾아뵐 낯도 없어요. 솔직히 안가고 싶지요. 부모님도 제 얼굴만 보면 한숨부터 쉬기만 하고….”

“그래도 가야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가긴 가아죠”라고 말했다. “같은 여수에 살고 있으니까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아내와 아이들하고 인사만 드리고 오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부모님들이 손자 손녀들은 보고 싶어하니까.”

딸 두 명에 아들 한 명의 아버지이기도 한 정씨는 요즘 또 다른 고민에 빠져있다. 당장 노숙자 신세가 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정씨 가족은 현재 회사가 제공하고 있는 사택에서 살고 있는데 중노위의 판결에서 ‘해고’ 판정을 받자 사측이 곧바로 “사택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집을 비워줘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그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는 날보다 여수시 석창사거리 근처에 자리잡은 5평 남짓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다. 이 곳은 해고자들의 사무실이다.

그는 해고자 14명과 최근 전남 화순으로 수련회를 다녀왔다고 했다. 이 곳에서 원직복직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자고 각오했단다.

이런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나날 속에서도 GS칼텍스 노동조합 직무대행 집행부가 최근 ‘해고자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해고자들의 복직문제와 신분보장기금 등에 대해 사측과 구체적으로 논의에 들어가 정씨에게 그나마 위안을 주고 있다.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새해에는 원직복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당하게 해고된 것이니까요. 이게 안된다면 최소한 신분보장기금이라도 노동조합에서 지급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정점식씨의 복직투쟁은 설 연휴 첫날인 28일로 400일째가 된다.